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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부다페스트

  전날부터 질척거리며 내리던 겨울비는 끊임없이 온종일 내렸다. 프라하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약 5시간을 달려 비를 맞으며 한 밤중에 호텔에 도착했다. 장거리 여행이라 너무 피곤해서 눕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새벽 2시경에 깨었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10시쯤 일터...  우리나라라면 벌써 퇴역한 지 오래되었을 리모컨도 없는 14인치 한국산 대우 TV를 손가락으로 터치하며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보았으나, 별 재미가 없어 이내 심드렁해지고 말았다. 

 

  옛날 북방에서 중국을 괴롭히던 흉노족이 중국의 등쌀에 유럽으로 쫓겨 세운 나라가 헝가리라는 것과 신라의 경주 김씨가 흉노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온 터라 근거가 박약하여 정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흉노족이 훈(Hun)족이라 믿고 싶을 만큼 친숙하게 느껴진다. 또한 그들의 언어의 구조도 우리와 비슷한 우랄 알타이어족이라는 것도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들의 외모와 생활양식이 동양인과 완전히 다른, 유럽인의 모습이고 보면, 정설로 믿을 수 있는 학설이라기보다 그저 재미로 듣고 흘려버리는 이야기로 치부해야 할 것 같다.

 

  부다페스트는 부도 지구와 페슈트 지역을 합쳐 부르는 도시이다. 다뉴브강(또는 도나우 강) 양 언덕에 걸쳐 있으며, 헝가리의 정치·행정·산업·상업의 중심지이다. BC 3000년 이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오늘날 헝가리 인구의 약 1/5이 살고 있다. 1873년 페슈트(다뉴브강 좌측)·부도(다뉴브강 우측)·오부도(옛 부도, 부도의 북쪽)의 마을들이 합병되면서 부다페스트라 했다. 도시의 규모는 외곽의 여러 공업지대까지 포함할 정도로 커졌다. 페슈트가 평탄하고 단조로운 평야에 있는 반면 부도 구릉의 사면에 세워진 부도는 다뉴브강 서안 아래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 도시의 대부분은 농경지대와 넓은 산림지역으로 되어 있다. 라듐 성분이 함유된 광천들이 오랫동안 의료용으로 개발되어왔다. 기후는 거친 대륙성 기후와 온화한 서유럽 기후가 교차되는 곳으로 연강수량은 600㎚정도이다.

 

  부다페스트의 인근 지역에서는 농사를 거의 짓지 않으며, 부다페스트 경제에 있어서 공업의 비중은 제조업의 분산으로 약화되었다. 그러나 중공업과 섬유제품·기구·통신장비·전자제품 등의 제조는 여전히 활발하며, 서비스 및 행정 부문도 성장해왔다. 헝가리의 수송 및 통신 서비스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도나우 강 유역에 있는 지방에는 선박 대리점들이 있다. 도심 재개발과 외곽지대로의 산업체 이주로 인구가 도심에서 외곽지대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전후 재건산업으로 보다 현대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으나 부도의 성곽 언덕 지구에 있는 복구된 부도 성(城)과 모티오슈 교회(13세기), 페슈트 도심의 시청 건물(1735), 페슈트의 북쪽으로 강을 따라 있는 국회의사당(1904) 등 많은 역사적인 건축물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인 인민민주주의 가로는 페슈트 도심에서 북동쪽에 있는 시 공원까지 뻗어 있다. 이 가로변의 주목할 만한 건물로는 국립 오페라 극장(1635 설립)과 미술 박물관이 있다. 

 

  부다페스트에는 지하철 및 전차 연결망이 넓게 뻗어 있다. 부도는 여러 개의 교량과 하나의 철도 터널로 페슈트와 연결되어 있다. 다뉴브 위원회 위원용의 체펠 자유항이 있는 다뉴브강과 대륙횡단 도로 및 철도 등을 통해 국제 수송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16㎞ 떨어진 곳에 페리헤디 국제공항이 있다. 면적 525㎢, 인구 1,708,000(2004 추계)<다음 백과사전>

 

  호텔방, 3성급 호텔이라는데... 14인치 한국산 대우 TV, TV 선 접속 단자가 찌그러져서 벽에 붙은 안테나선 단자에 연결해도 쉽게 떨어지곤 했다. 망가진 실내 소파를 들어내고 억지로 끼워 맞추고서야 겨우 시청할 수 있었다. 프라하 호텔에서는 덩치 큰 브라운관 TV가 켜지지도 않고 골동품처럼 한자리 차지하고 있던데... 동유럽의 경제상태를 대변하는 건 아닌지... 독일과 오스트리아 호텔들은 시설도 좋았고, TV는 한국산 LG나 삼성제품으로 모두 LED TV였다.

 

  아침 기상하자마자 커튼을 제치고 창밖을 바라보니 여전히 비가 질척거리고 있었다.

 

  조반 후, 부다페스트 시내가 한 눈 아래 내려다 보이는 겔레르트 언덕에 올랐다. 언덕에는 전쟁의 총탄 자국이 뚜렷이 남아있는 요새(감옥과 고문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고도 한다.)가 우뚝 서 있었다. 이 언덕은 요새를 빙 둘러싸고 있는 도로를 산책하며 부다페스트 시가를 조망할 수 있는 공원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불어 카메라가 젖을까 조심스러웠다. 우산을 쓴 왼팔로 카메라를 받치며 사진을 찍었는데, 아무래도 카메라 무게가 부담스러웠다.

 

  벽면에 부다페스트의 변천사를 게시하여 이해를 돕고 있었다.

 

  언덕 끝 지점에는 높은 탑 위에 월계수 잎을 받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하늘을 향해 서있다. 이 여신상은 2차 세계대전 후 독일군을 물리친 소련군이 전승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여신이 바라보는 곳은 모스크바라고 한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부다페스트, 왼쪽의 왕궁과 강변의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왼편에 부다 지역, 강 건너 오른쪽에 페스트 지역이다. 요새를 끼고 언덕을 오르며 자유의 여신상 오른쪽으로 돌면서 풍경들을 감상했다.

 

  왼쪽이 왕궁, 다뉴브 강 건너 돔 지붕 건물이 국회의사당

 

  왕궁과 어부의 요새가 있는 마챠시 성당.

 

사진 가운데, 두 개의 첨탑 뒤에 돔이 솟아 있는 건물은 성 이슈트반 성당

 

  다뉴브 강과 국회의사당, 세치니 다리

 

  겔레르트 언덕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마챠시 성당으로 이동하며, 커다란 사자 석상이 버티고 있는, 고풍스러운 세치니 다리를 지났다.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을 잇는 최초의 현수교라고 한다.

 

  어부의 요새,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에 지었다고 한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이란다.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들을 다뉴브 강의 어부들이 이 요새에서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단다.

 

  마챠시 성당, 어부의 요새 안에 있는 성당으로 13세기에 건축된 고딕 양식의 건물로 부다 지구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헝가리 왕의 대관식이 열리던 곳이고 현재도 미사를 진행한다. 주말에는 관현악, 합창단이 함께 장엄한 미사가 열린다.

 

  마챠시 성당을 에워싸고 있는 요새의 석벽과 일곱 개의 뾰족탑

 

  요새에서 내다본 국회의사당

 

 

성당 맞은편 건물, 무척이나 고풍스럽다.

 

  부다 왕궁의 전설의 독수리 투룰상, 머리는 용이고 몸통은 독수리, 양 발로 칼을 잡고 있다.

 

  왕궁의 측면, 현재는 미술관

 

  왕궁 맞은 편의 대통령 집무실, 내각책임제로 대통령은 외교를 맡는다. 그렇다고 경비병도 하나 없는 것이 지나치게 홀대받는 느낌이었다.

 

  왕궁과 대통령 집무실 원경, 왼쪽의 노란색 건물은 베토벤이 살았던 집이란다. 한 때 베토벤이 이 집에 살며 가정교사를 했는데, 그가 가르치던 첫째 딸과 사랑하게 됐더란다. 그런데, 그녀가 병으로 요절하자, 그녀를 위하여 곡을 지었다. 그 곡이 그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왕궁 언덕 아래 뒷동네

 

  왕궁이 있는 언덕과 성채

 

  다뉴브 강에서 유람선을 타며 바라본 왕궁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겔레르트 언덕

 

  왕궁 전면

 

  세치니 다리

 

  어부의 요새

 

  왕궁과 대통령 집무실

 

  마치니 성당과 어부의 요새

 

  국회의사당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영웅광장

 

  거리 풍경, 빗속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인

 

  상점 안의 걸어놓은 헝가리 수예 작품, 화려한 문양이 왠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성 이슈트반 성당, 성당의 탑이 96m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데, 96은 헝가리 건국 해인 896을 의미한단다.

 

  성당 앞의 크리스마스 마켓

 

  성당 내부 

 

  도나우는 ‘글루미 선데이’의 아픔을 알까… ‘우울한 선율’ 흐르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왕궁의 언덕’ 오르면 도시 전경 한눈에… 야경 황홀한 세체니는 유럽 최고의 다리  <입력 2014-11-20 02:54 수정 2014-11-20 11:42  국민일보>

 

  “당신을 잃느니 당신의 반쪽이라도 갖겠소.”

  두 남자가 한 여자를 가운데 두고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대사다. 1999년에 발표된 롤프 슈벨 감독의 ‘글루미 선데이’는 사랑은 소유해야 한다는 통념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공유 사랑’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 그리고 여주인공 일로나의 통쾌한 복수를 그리고 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글루미 선데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혼을 파고드는 감미롭고 애잔한 선율의 ‘글루미 선데이’는 헝가리 천재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1935년 실연의 아픔을 담아 작곡했다. 레코드 발매 8주 만에 우울증 환자 190여 명이 이 음악을 듣고 자살했고, 이듬해에는 이 음악을 연주하던 단원 모두가 자살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세레스도 결국 자기가 만든 이 음악을 들으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다.

  ‘글루미 선데이’의 우울한 사연과 애잔한 선율 탓이었다. 체코 프라하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첫발을 디뎠을 때는 기차역에서의 이별이 아쉬워 진한 포옹을 한 연인과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괜스레 울적했다. 유대인 55만 명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가스로 학살당한 사건도 떠올랐다. 뜬금없이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기억해냈다. 하지만 이런 우울한 감정은 아르누보, 바로크, 네오클래식 양식의 건축물 사이로 노란색 트램이 달리는 번화한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감탄사와 함께 사라졌다.

  ‘도나우 강의 진주’ 또는 ‘작은 파리’로 불리는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발전한 ‘부더’와 ‘페슈트’가 19세기 후반에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다. 왕이 살았던 부더에는 왕궁을 비롯해 중후하고 우아한 매력을 뽐내는 건축물이 많다. 상인의 활동 무대였던 페슈트는 경제 거점답게 젊음과 활기로 넘친다. 특히 파리, 프라하와 함께 유럽 3대 야경으로 꼽힌다. 명성에 걸맞게 부다페스트는 밤마다 화려한 빛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부다페스트 여행은 왕궁을 비롯해 마차시 교회, 어부의 요새 등이 밀집한 도나우 강 서쪽 ‘왕궁의 언덕’에서 시작된다. 13세기에 건축된 왕궁은 헝가리 역사의 상처가 묻어나는 곳이다. 왕궁은 몽골군의 습격으로 파괴된 후 15세기에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또 파괴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20세기 초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폐허와 상처로 얼룩진 왕궁은 50년에 이르는 공산주의 통치 아래서 웅장한 건물 대부분이 파손되는 고초를 겪었다. 지금은 헝가리 국립 갤러리,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 세체니 도서관 등으로 이용된다. 왕궁 광장 앞에 위치한 흰색 건물은 헝가리의 대통령궁이다. 총검으로 무장한 근위병의 절도 있는 교대식이 눈길을 끈다.

  왕궁 광장에는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 아르파드를 낳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새 ‘투룰’ 조각상이 있다. 이 광장은 부다페스트 도심을 흐르는 도나우강과 세체니 다리,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의회 건물로 꼽히는 국회의사당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독일군을 물리치고 세운 ‘자유의 여신상’이 모스크바 쪽을 바라보는 왕궁 남쪽의 겔레르트 언덕은 왕궁과 도우나 강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왕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왕궁에서 마차시 교회로 가는 넓은 골목은 기념품 가게를 비롯해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 같은 고풍스러운 건물과 야외 카페가 눈길을 끈다. 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답게 건물 외벽에는 여기저기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베토벤이 작곡한 ‘엘리제를 위하여’의 여주인공이 살았다는 옛 왕궁 극장에서는 맑은 음색의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화려한 색상의 모자이크 지붕이 아름다운 마차시 교회는 헝가리 왕으로 즉위한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대관식이 거행된 유서 깊은 곳이다. 교향시의 창시자인 리스트는 이날을 위해 ‘헝가리 대관 미사곡’을 작곡해 마차시 교회에서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교회 정면에서 보면 좌우의 탑 높이가 달라 균형이 잡히지 않는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세밀하게 채색된 기둥과 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차시 교회와 붙어 있는 어부의 요새는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는 건축물이다. 마차시 교회를 설계한 슐레크가 1902년에 완공했다. 헝가리풍의 고깔 지붕을 얹은 7개의 탑과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회랑이 이채롭다. 어부의 요새라는 명칭은 옛날 이 언덕의 시장을 지켰던 어부 조합에서 유래됐다. 어부의 요새도 도나우 강 건너편 페슈트 지역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전망대. 요새 한쪽에서 늙은 집시가 연주하는 ‘글루미 선데이’의 애잔한 선율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부다페스트에서 세체니 다리를 건너보지 못하면 헝가리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 왕궁의 언덕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만나는 세체니 다리는 길이 375m, 너비 16m로 커다란 돌사자가 다리의 네 귀퉁이를 지키고 있다.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히는 세체니 다리는 주탑에 가설된 쇠 로프가 자전거 체인처럼 생겼다고 해서 세체니(사슬)로 불린다.

  부다페스트의 낭만 중 으뜸은 해질녘에 유람선을 타고 만나는 부다페스트의 야경이다. 비거도 광장 앞에서 유람선을 타고 석양에 붉게 물든 도나우 강을 오르내리면 왕궁을 비롯해 마치니 교회, 어부의 요새, 국회의사당 등이 색색의 불을 밝힌다. 특히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세체니 다리의 야경은 황홀할 정도.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 여주인공 일로나가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에르제베트 다리의 야경도 세체니 다리 못지않다.

  독일 남서부에서 발원해 10개국을 거쳐 흑해로 흘러드는 도나우 강의 길이는 2850㎞. 영어로 다뉴브, 독일어로 도나우, 헝가리어로 두나, 체코어로 두나이로 불리는 유럽의 젖줄은 ‘도나우의 장미’로 불리는 부다페스트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라도 하듯 가장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부다페스트(헝가리)=글·사진 박강섭 관광 전문기자 kspark@kmib.co.kr>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김춘수

 

 다뉴브강(江)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瞬間),

 바숴진 네 두부(頭部)는 소스라쳐 삼십보(三十步) 상공(上空)으로 튀었다.

 두부(頭部)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鋪道)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靈魂)은

 감시(監視)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江)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강(江)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슈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旋律)일까,

 음악(音樂)에도 없고 세계지도(世界地圖)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漢江)의 모래사장(沙場)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쥐고

 왜 열세 살 난 한국(韓國)의 소녀(少女)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까,

 죽어 갔을까, 악마(惡魔)는 등 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열세 살 난 한국(韓國)의 소녀(少女)는

 잡히는 것 아무것도 없는

 두 손을 허공(虛空)에 저으며 죽어 갔을까,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네가 한 행동(行動)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漢江)에서의 소녀(少女)의 죽음도

 동포(同胞)의 가슴에는 짙은 빛깔의 아픔으로 젖어든다.

 기억(記憶)의 분(憤)한 강(江) 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同胞)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英雄)들은 쓰러지고 두 달의 항쟁(抗爭) 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銃) 뿌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人類)의 양심(良心)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弱)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前) 세 번이나 부인(否認)한 지금,

 다뉴브강(江)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겨울

 가로수(街路樹)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黃昏)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同胞)의 치욕(恥辱)에서 역(逆)으로 싹튼 것일까,

 싹은 비정(非情)의 수목(樹木)들에서보다

 치욕(恥辱)의 푸른 멍으로부터

 자유(自由)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人間)의 비굴(卑屈) 속에 생생한 이마아쥬로 움트며 위협(威脅)하고

 한밤에 불면(不眠)의 염염(炎炎)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1945년 2차 대전 후 나치의 편을 들었던 헝가리는 소련군에 의해서 점령당한 후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였다. 이에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 1956년 부다페스트에서 폭동이 일어나 공산당원을 비롯하여 중고등학생들까지 20여만 명이 무장을 하여 소련군에게 대항하였다. 소련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서 15만 명의 군대를 부다페스트로 파견하여, 후에 있을 프라하의 봄보다 더욱 잔학하게 이를 진압하였다. 누구든지 반항하는 사람들은 살해하여, 도로엔 시체가 널리게 되었으며, 반소련 인사들은 모두 소련으로 끌고 갔다. 그 뒤, 소련이 붕괴된 후 헝가리는 1989년 7일 혁명으로 공산당을 퇴진시키고, 공산 위성국가 중에서 제일 먼저 자유민주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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