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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城

남한산성

  작년에 유네스코 기념 세계문화재로 등록된 남한산성. 1636년 병자호란의 치욕이 깃든 산성이다.

 

  1597년 왜란이 끝난 후 그 교훈을 새기지도 못한 채, 40년 후 만주족의 침략에 변변히 대응도 하지 못하고 이 남한산성에 숨어 항거하다가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그 후 274년 후인 1910년에 왜적에게 나라를 송두리째 뺏기고 식민지로 36년을 보내게 되었다.  지금의 국내 정치판도 왜란 당시나 호란, 한일합병 당대보다 좋을 것은 하나도 없을 성싶다. 정치판에서 그들만의 이전투구에서 민심은 안중에 없고 눈앞의 부정한 재물에만 탐욕스러우니, 정부의 꼬라지가 볼성사납기 그지없다. 윗물부터 맑아야 한다는 옛말도 그저 옛말로만 전하나 싶다.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 아마도 우리 한국인의 유전자에 정의는 없고 현실의 탐욕만 가득한지도 모르겠다는 자포자기의 심정마저 갖게 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정치인들이나 법조인, 언론인들이 제발 바르게 살며 염치라도 잊지 말고 살기를 간절히 염원할 뿐이다. 

 

  답답한 마음으로 산성 동문부터 보려고 갔다가 보수중이라 허탕치고 말았다. 게다가 산성행궁은 월요일이라 휴무여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하는 수없이 북문부터 남문까지 산성을 따라 걷기로 했다. 화창한 날이어서 등산객들이 많았다. 맑은 날이었지만 희뿌여서 시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가파른 능선 따라 성벽을 쌓았기 때문에 오르고 내리는 경사가 있었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이라 걷기에  좋았다.

 

  남한산성 북문. 성 안쪽으로 차량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도로가 포장되어 있었다.

 

밖에서 바라본 성문. 북문의 정식 이름은 전승문(全勝門)이었다. 문이름처럼 현실에서 승리의 문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성밖의 길은 가파르고 험했다.

 

 북문부터 능선을 따라 오르는 성벽

 

능선을 따라 오르는 성안 계단길

 

연주봉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본 성벽

 

연주봉 옹성 암문

 

암문 밖, 북문으로 뻗은 성벽

 

연주봉 옹성, 남한산성에는 이런 옹성이 네 개가 더 있다.

 

옹성의 끝지점의 성채. 북쪽성벽의 동태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다.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북쪽방향 잠실부근

 

동쪽방향으로 하남시와 한강이 조망되었다.

 

암문으로 뻗어있는 옹성과 멀리 동쪽으로 뻗쳐있는 북쪽의 성벽이 한눈에 보였다. 

 

서문인 우익문(右翼門),

 

성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방향

 

밖에서 바라본 성문

 

서문 아래의 수어장대. 산성의 지휘소이다.

 

 남문으로 넘어가며 돌아본 서쪽성벽과 영춘정

 

남문으로 내려가는 성벽

 

남한산성의 정문 격인 남문. 정식 명칭은 지화문(至和門)- 옛날엔 이 문으로 차량들이 통행했었다. 지금은 사람들만 걸어 다닐 수 있다. 가까운 곳에 터널을 뚫어 차량들을 통행시키고 있다.

 

성남시에서 산성으로 들어가는 방향

 

남문의 안쪽

 

산성의 중심부인 만남의 장소로 내려가는 길가에 세워진 비석군(群). 치욕의 한이 서린 세월의 무상감이 흐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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