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山寺

안성 석남사

  안성에서 진천으로 넘어가는 차령산맥 줄기의 배티 고갯길 직전, 깊은 골짜기 속의 아담한 사찰이었다. 배티는 국도에서 오른쪽 샛길로 일 차선의 좁은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면 서운산 오르는 길목의 작은 사찰을 만나게 되는데 이 절이 바로 석남사였다. 당초에 석남사를 알고 찾은 것이 아니라 안성에서 진천으로 가다가 길가에 서있는 천년사찰이라는 안내판을 보고는 가던 길을 멈추고 샛길로 접어들어 방문한 곳이었다. 석남사 아래 작은 공터에는 등산객들의 승용차들이 몇 자리를 남겨두었다. 

 

  석남사는 통일신라시대인 680년(문무왕 20)에 담화 또는 석선이 창건하였단다. 876년(문성왕 18) 염거가 중수하고, 고려 때에는 광종(光宗)의 왕사였던 혜거 국사가 중창하여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숭유억불 정책의 하나로, 전국에 있는 사찰들을 통폐합할 때 안성군을 대표하는 자복 사찰로 선정될 만큼 전국적인 명찰이었으며, 세조가 친필 교지를 내려 승려들의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으나 효종 때(재위 1649∼1659) 석왕사의 해원이 중수하여 사세를 확장했으며, 1732년(영조 8)에 다시 중수했다. 문화재로는 석남사 대웅전(경기 유형문화재 108)을 비롯하여 석남사 영산전(보물 823), 석남사 마애여래입상(경기 유형문화재 109) 등이 있다.

 

  산세로 볼 때 수백 명이 머물렀다는 것은 과장인 것 같았고 아늑한 서운산 산자락에 의지하여 동남향으로 앉았다. 2층 다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가 영주 부석사와 비슷했으나,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앞산이 너무 크고 장대하여 앞을 막아 답답한 느낌이었다.  남서방향으로 서운산을 넘어가면 남사당 패거리였던 바우덕이 묘소와 그 근처의 청룡사쯤으로 짐작되었다. 등산객들과 내방객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바깥 세계와 무관하게도 영산전에서 정좌하신 스님의 독경소리가 낭랑하게 경내에 울려 퍼졌다.   

 

 석남사 경내로 들어가는 2층 다락문

 

다락문을 통과한 후의 석남사 전경

 

 

영산전 안에서 스님이 독경하는 소리가 너무나 듣기에 좋았다.

 

 영산전 위의 대웅전 

 

 

 

대웅전에서 차도로 우회해서 내려오는 길의 영산전, 화성의 용주사처럼 부모은중경탑이 있었다.

 

다락문 앞으로 내려와서 다시 올려다본 석남사 전경

'山寺'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사에서의 커피공양, 죽산 국사암의 궁예 미륵  (2) 2012.11.13
미륵불의 용화세상, 죽산 쌍미륵사  (0) 2012.11.11
용인 와우정사  (0) 2012.09.14
능가산 내소사  (2) 2012.08.05
계룡산 산신당, 신원사  (0) 2012.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