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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미륵불의 용화세상, 죽산 쌍미륵사

  올해 단풍은 유난히 색깔이 곱고 길다.

  도심에서 만나는 가로수들도 한 해를 화려한 잎새들로 마무리하고 있다. 햇빛 좋은 토요일 가까운 산사를 찾았다. 여름에 갔었던 안성 죽산의 쌍미륵사. 그곳에서 궁예왕이 세웠다는 두 미륵불을 만났다. 미륵불들은 화려하게 형형 색색을 내뿜는 가을 산에 둘러싸여 오늘도 변함없이 사바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예로부터 안성 죽산은 미륵 마을이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그만큼,  이 지역은 한반도의 중원에서 세력다툼에 시달렸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죽산 곳곳에 미륵불이 산재해 있다는데, 한 번쯤은 그 미륵만을 찾는 나들이를 해보고 싶다.

 

  1980년대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의 열풍 속에 억압받던 백성들의 희망처였다는 화순의 운주사를 갔던 적이 있었다. 산 등성이에 벌려놓은 칠성 바위를 지나 누워있는 미륵부처님을 보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봉건왕조의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 속에 신음하던 백성들은 내세불인 미륵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리라 염원하며, 누워있는 미륵불이 일어나 극락정토 같은 그들의 세상이 오기를 빌었다. 누워있는 와불은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일어나기 어려울 텐데, 그들은 그 육중한 와불이 벌떡 일어서기를 빌고 빌었다.

 

  백정으로 억압받던 세상을 벗어나고 싶어 의적이 되었던 임꺽정이나, 양반의 집에서 도망나간 계집종의 아들로 태어나, 광대 장충의 양자로 살면서 천대받던 장길산이 폭정 속에 어찌할 수 없어 관에 맞서 싸우며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했을 때,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도 미륵부처님이었다.

 

  미륵부처님은 도솔천에서 설법을 하시지만 미래에 중생들을 제도하실 미래부처님으로 56억 7천만 년 후에 화림원 용화수 아래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때 성불하지 못한 중생들을 3회의 설법으로 성불시킨다고 한다. 신라의 왕자로 태어나 왕권쟁탈전의 희생자였던 궁예가 이곳에 미륵을 세우고 자신의 희망을 다지며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여 고통 없고 번뇌가 없는 용화세계를 건설하여 도솔천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곳이 바로 여기라고 한다.  한 눈을 실명한 채 서라벌에서 겨우 생명을 부지하여 궁녀 등에 업혀 왔던 궁예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칠장사에 유년시절을 보냈었다. 조선시대 임꺽정이 그의 가치관을 정립했던 곳도 바로 칠장사였으니, 의적으로 몸부림쳤던 임꺽정의 활동도 결코 우연하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도들은 한결같이 세상의 종말 끝에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고 구원해 주실 예수님과 같은 구세주, 메시아의 강림을 기다린다. 불교에서도 억압 속에 고통받는 민중들이 미래부처님이신 미륵불의 발현을 애타게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나약한 의지는 현세에서 추앙하고 나를 의탁하는 절대자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불교도 기독교도 현생의 열악한 삶을 구원하여 살아생전의 유토피아를 구원해 줄 구세주를 고대하고 있으니, 죽어서 간다는 극락정토나 천당보다는 살아생전에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이상 세계가 더욱 절실하겠다. 하기사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던가. 

 

 쌍미륵사의 미륵님은 한 분은 악귀를 물리치신 늠름한 항마상의 미륵님, 왼 편의 다소 가녀린 미륵님은 즐거움과 행복을 구현하신 환희상의 여 미륵님의 모습이라고 하니, 가을빛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에 둘러싸인 이곳이야말로 자연의 성찬을 즐기는 오늘의 용화세상이 아닐는지...

 

  가을의 풍요로움을 한 몸으로 받으면서 흐느적흐느적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여유롭고 한가롭던 한낮의 쌍미륵사가 마치 오늘의 용화세계가 구현된 곳 같다면 지나친 나의 상상일까.             

 

 

조계종과 달리 법상종 총본산인 쌍미륵사의 부처님 모신 곳은 래세불의 세계인 용화전이다. 

 

 

 

 

 

 

 

 

쌍미륵사는 규모가 작고 아담해도 대한불교 법상종의 총본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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