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山寺

산사에서의 커피공양, 죽산 국사암의 궁예 미륵

  쌍미륵사에서 내려오며 바로 좌회전하여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맞은편에서 차라도 나오면 그야말로 낭패였을 것이다. 그 산길을 구불구불 지나 국사암 바로 아래에선 30도 이상 가파른 시멘트 길을 박차며 암자에 올랐다. 막바지 오르막길에선 경사가 급해 자동차가 뒤로 뒤집어질 것 같았다.  나는 두 번째 방문이라 큰 감동은 없었으나, 가을빛이 무르익어 풍광이 아름다웠다.  때마침 작업복을 입은 스님이 설풍기를 등에 지고 바람으로 낙엽들을 치우고 있었다. 싸리비로 낙엽들을 쓸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날려 버리니, 문명의 이기가 이곳 암자까지 들어와 스님의 노고를 덜고 있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

 

  경내를 두루 돌아 관람을 마친 뒤,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낙엽을 날리던 스님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바쁘지 않으면,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셨다.  많은 절들을 방문했지만, 스님에게서 차 대접받는 것이 처음이라 흔쾌히 발길을 돌려 암자 아래 살림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응접실엔 고가구와 커다란 화분 안에 연꽃을 놓고 유리로 덮은 차 탁자가 있어서 운치를 더해 주었다. 창밖으로는 깊은 가을이 낙엽을 떨구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스님이 내오신 커피를 마셨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전통차였다면 그 분위기에 흠뻑 젖었을 텐데, 일회용 종이컵에 담긴 커피 믹스는 격에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으나, 홀로 사는 스님이 주시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스님의 이야기인즉,  70년대 궁예 미륵 등 3위의 석불뿐,  폐허였던 암자를 스님이 오늘의 국사암으로 일구었단다.  그런데, 지금 현재, 교통이 불편하여 암자에 함께 동고동락하던 공양주도 절을 떠나, 스님 혼자 이 절을 가꾸며 사노라고 하였다.  낙엽도 자연인데, 왜 바람에 날려버리냐고 물었더니, 미끄러워 낙상방지 차원에서 치운단다.  겨울의 눈도 이 강력한 설풍기로 날려 버린단다. 하기사 가파른 산길을 스님 혼자 가래로 눈을 치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강력한 바람으로 눈을 날려 치우기에 설풍기란다. 군 시절 겨울에 연병장 눈 치우며 세 번의 겨울을 혹독하게 보냈었는데...      

 

  스님은 사람이 그리워서인지,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쉬러 오라셨다. 빈 방도 내어준다니, 스님의 친절은 참으로 놀라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친절도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손사래 치며 극구 사양했는데, 일행 중 조경에 관심 많아 조경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서 부장이 다음에 한 번 봉사차 방문하여, 수목전정 등 조경을 해드린다고 약속했다.  

 

  깊어가는 가을에, 가을의 정취를 한껏 맛보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스님의 커피공양까지 받고 나서, 스님이 쥐어주는 내년도 달력을 들고 국사암을 떠났다.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배고픈 줄 모르고, 마음까지 넉넉해졌던 국사암이었다.  

 

 

 

가운데가 궁예미륵

 

 

 

 

 

 

'山寺'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위 인각사(麟角寺)-삼국유사의 산실  (0) 2013.01.11
서산 간월암  (4) 2012.12.02
미륵불의 용화세상, 죽산 쌍미륵사  (0) 2012.11.11
안성 석남사  (2) 2012.09.24
용인 와우정사  (0) 201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