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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배티성지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에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아래 위치한 배티성지(聖地)는 많은 순교자의 정신을 기리고 기도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동네어귀에 배나무가 많아 배나무고개, 즉 이치(梨峙)라는 말이 생겨났고 이것이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조선 영조 때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백곡을 지나다 이 마을 노인 이순곤이 이끄는 주민에게 패한 뒤 다시 안성 쪽으로 향하다가 오명항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하였다는 데서 '패치'라 불리다가 '배티'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배티(梨峙)는 신유박해(1801년)로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이어지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골짜기로, 1830년을 전후로 교우촌(비밀신앙공동체)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866년 즈음에는 교우촌이 15곳에 이르렀던 곳이다. 또 조선교구 최초의 신학교가 있던 마을이고,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였던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의 사목 중심지로 교리서인 <천주가사>가 탄생되었던 곳이었다. 또 배티와 그 주변으로는 27여 기에 이르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

 

  1976년 9월 성지로 개발된 배티성지에는 1996년 6월 완공된 성당(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성당)과 성당에서 야외제대까지 연결된 청동으로 만든 십자가의 길, 야외제대 및 성모상, 최초의 조선교구 신학교와 최양업 신부의 성당 및 사제관으로 사용되던 초가집을 재현한 건물, 양업영성관 및 수련관, 무명순교자 6인 묘역 및 14인 묘역, 최양업 신부 동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출처: 두산백과 

 

 

  성당 안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이 매우 아름다웠으나, 입구에 적힌 촬영금지 푯말을 보고 촬영을 포기했다.  각지에서 성지순례온 가톨릭 신자들이 많은 듯했으나 미사가 성당 위 야외제대에서 진행되는 관계로 비교적 한산했다. 성당을 우회하여 언덕에 순례의 길이 있었으나, 시간이 없어 참례하진 않았다.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신앙심이 얼마나 깊으면 증명할 수 없는 사후세계를 담보로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까. 정말로 대단한 신앙심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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