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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해미순교성지

  해미읍성 축제에 갔다가 사람들이 많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읍성 안에는 다른 볼거리보다 먹거리 장터가 대부분이었다. 야외공연장엔 국악한마당축제가 준비 중이었는데, 빗방울이 흩뿌려 행사장이 어수선해졌다. 날씨가 궂고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오려고 해미IC로 가려는데 읍성밖 교통 통제 때문에 방향을 잃고 돌다가 들린 곳이 해미순교성지였다. 

  이곳은 1935년 서산성당 신부 범바로의 조사와 발굴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985년 해미 순교지 성역화를 위하여 해미성당을 설립하고, 2001년 이후부터 해미성당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성역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해미순교성지는 1866년(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이후 1882년(고종 19) 사이에 진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순교한 곳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읍성 서문 밖 돌다리에서 자리개질 등으로 처형했는데, 숫자가 너무 많자 해미천에 큰 구덩이를 파고 모두 생매장했다고 전한다. 그때, 죽음을 앞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하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해미순교성지에는 신자들을 묶어 물속 둠벙에 빠뜨려 생매장 시켰던 진둠벙, 해미천 옆에 생매장당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는 '해미순교탑',  무명순교자의 묘, 유해발굴지에 조성된 노천성당, 서문 밖 순교지에 있었던 자리개돌이 있다.


  우리나라 천주교인들의 대표적인 순교 성지라 2014년 8월 17일 프란체스코 교황 한국방문 때, 이곳을 방문하여 아시아 주교들과 만남을 가졌었다.

 

  날이 잔뜩 흐리고 비까지 흩뿌려 쓸쓸한 분위기였다.




위층 대성당.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얼굴이 미소 띤 순교자의 모습이다.



2014년 세운 시복 기념비


해미순교기념관



기념관 내부 들머리




순교당시 재현 조형물








순교자들을 기리는 제단


 여숫골, 생매장터로 알려진 순교 장소로, 1935년의 발굴을 통하여 유골과 유물이 확인된 곳이다.  뒤로 원형의 노천성당과 무명 순교자들을 기리는 추모탑이 보인다.



자리개 돌, 자리개질 처형이란 볏단을 두손으로 잡고 털듯이 내려쳐 죽이는 방법이다. 해미읍성 서문 밖에 있던 것을 이곳에 옮겨 놓았다.





 손발을 묶어 물 속에 생매장 시켰던 진둠벙




해미읍성 안 관아인 호서좌영





성당 안 명화 몇 점



읍성 안에 있는 회화나무에 매달아 처형하는 그림


읍성 서문밖 돌위에서 자리개질로 처형하는 그림


진둠벙에 생매장형


흙구덩이에 생매장형



 돌아온 탕자( Parable of the Prodigal Son). 렘브란트.  루카 복음서 15장 11-32절에 나오는 예수의 이야기.


  어느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 중 작은아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아마도 후에 받을 유산)을 요구하자 아버지는 허락했고, 그 재산을 받아 챙긴 아들은 집을 떠나 방탕하게 생활했다다. 그런 생활을 계속 하다보니 그의 돈은 금세 바닥이 났고 결국 돼지치기를 하며 돼지가 먹다 남긴 것까지 먹어야 할 신세가 되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는 죄스러운 마음에 아버지의 하인이 되기를 자청했더니 오히려 아버지는 아들의 고백을 다 듣기도 전에 그를 반갑게 환영하며 가장 좋은 옷과 장신구를 주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이에 대해 동생이 집을 떠나있던 동안 집에서 아버지를 위해 일했던 형은 집에 돌아오던 길에 이 잔치가 무슨 일인지 하인에게 전해들은 후 불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에 아버지에게 가서 따지니 아버지는 대답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대부분 회개의 중요성과 죄 지은 사람에게도 내려지는 하느님의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을 강조하는 이야기이다. 보통 이렇게 이 이야기를 '죄를 지었으나 회개한 자(동생)'에 중점을 두고 해석한다. 그러나 가끔 가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이 집을 떠나 방황하다 돌아온 동생'과 '그저 의무감에 집을 지키다가 회개한 동생이 찾아오니 이에 불만을 표하는 형'을 대비, 죄인을 영접하고 그들을 반갑게 맞아들이는 예수를 비판하는 바리사이들을 형에 비유해 꾸짖는 내용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기도하는 성모(The Virjin in Prayer) 사쏘페라토(1609~1685) 이탈리아


  성모 마리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기에 중요한 분으로 공경받지만, 반면에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성모님만을 주제로 한 성화는 드물었었다. 

  이렇듯 성모님은 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고, 그런 성모님과 함께 하는 것은 곧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쏘페라토는 신자들이 성모님과 함께 기도중에 그분의 아들을 만날 수 있도록 성모님이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

  성모님이 아들을 잃고 슬퍼하셨을 때, 실제로는 나이드신 모습이었겠지만 사쏘페라토는 젊고 아름다운 성모님을 그렸다. 아래로 내리 뜬 눈은 어두운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흰 베일과 풍성하게 흘러내리는 푸른 쇼올, 진분홍의 옷색깔 등은 거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르첼리노의 기적(The Miracle of Marcelino) 호세마리아 산체스 시르바의 전기적 소설 "마르첼리노, 빵과 술"에 등장하는 주인공 어린이 마르첼리노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


  전후 황폐한 스페인 산촌 한 수도원에 한 남자 아기가 버려진다. 아이를 길러본 경험이 없는 12명의 수사들은 갓난애를 키워줄 가정을 찾지 못하자, 수도원에서 그 아이를 키우게 된다. 5년후, 귀여운 어린이가 된 마르첼리노는 누구나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를 그리워한다. 마르첼리노는 다락방에 있는 커다란 십자가에 못박혀 괴로워하는 아저씨를 보고 빵을 가져다 주는데, 그 때마다 예수님은 그 빵을 드신다. 다락방 출입이 잦아진 마르첼리노는 주방 수사 몰래 훔친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께 가져다 드리고, 예수님은 마르첼리노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다. 마르첼리노는 엄마가 보고싶다고 하자, 예수님은 잠을 자야한다며 어린 마르첼리노를 품에 안고 재운다. 그때, 수사들이 이 기적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감격해한다. 잠시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마르첼리노는 하늘의 엄마를 보기 위해 잠든 상태로 천국으로 떠나며 죽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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