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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군산 기행

  모처럼 친구들과의 여행인데, 여행지 선정이 마땅치 않았다. 설악산, 양양, 주문진, 강릉, 동해와 삼척 방면은 많이도 돌아다녔다. 삼척엔 친구가 오랫동안 살기도 했었고... 색다른 풍경이 좋을 것 같아 서해안 여행을 제안했다.  나야  많이 다녀봤지만 서해안 경험이 별로 없을 친구들에겐 새로운 경험이라 싶었다. 그런 까닭에 서해안을 타고 내려가 군산 진포해양공원에 들렀었다. 거기서 숙박지를 수소문했더니 군산시청 부근이 모텔촌이라고 안내해 주었었다. 모텔에서 여장을 풀고 근처 정육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인산인해였다. 고깃값이 싸고 푸짐한 건 물론이고, 기본 반찬차림에 소 생간까지 내주는 넉넉한 인심을 보였다. 셋이서 고기 한 근과 소주로 저녁을 먹고 방바닥이 절절 끓는 모텔에서 따뜻하게 하룻밤 숙박했다.   

  작년에 연륙되었다는 선유도에 가기 위해 군산에 들렀던 것인데, 군산시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경암동 철길마을과 이성당 빵집, 국내 유일하다는 일본식 사찰 동국사로 경로를 정했다. 유명하다는 짬뽕집은 점심만 한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경로를 설정했는데,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활용했는데 그것도 경암동 철길마을 부근에서 헛돌아 결국 주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경암동 철길은 현재 사용되지 않은 철로로 큰 도로가 바로 이웃이었다. 그 동안 큰길로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몰랐다는 것이 애석했다. 수년 전까지는 하루에 두 번씩 골목을 관통하는 철길로 기차가 왕래했었단다. 그 흔적이 관광명소가 되어 많은 방문객들을 부른다. 사진으로 많이 봐왔던 곳이었는데 막상 바라보니 기차가 사라졌다는 선입관 때문인지 생동감이 떨어졌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자잘한 추억 중심의 가게들이 철길 좌우편에 도열해 있었다. 아련하게 6-70년대 향수가 묻어나는데, 그 골목에는 60년대부터 80년대 아니 현대까지의 잡동사니 풍물들이 마구 뒤엉켜 있었다. 나에겐 어린 시절 철로 위를 걸어 다니던 기억 저편의 아련한 추억들을 끄집어내 주었다. 

 

 

 

 

 

 

 

 

 

 

  우리나라 5대 빵집 중에 하나라는 이성당. 진포해양공원 근처에 있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엊저녁에 들렸을 텐데...  빵집 안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이집에 제일 유명하다는 것이 단팥빵이래서 단팥빵과 단팥크림빵 야채빵들을 샀다.  뜻밖에 이 빵들은 선유도에서 훌륭한 점심이 되었다. 단팥빵은 크기가 좀 크고 단팥소가 듬뿍 들어 있었다. 개당 1300원. 개인적 취향으론 야채빵이 제일 맛있었다. 

 

 

 

 

 

 

 일본식 사찰 동국사도 이성당 남쪽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주차장도 널찍해서 여유로웠다. 일제의 한반도 수탈전초기지였던 군산시. 일제가 만든 근대도시답게 일본에서나 볼 수 있는 절이 도심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방 이후에도 허물어 새로 짓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런데, 아쉽게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경내 한구석에서 크레인을 동원한 건축공사가 한창이어서 풍경이 다소 산만했다.  종무소 왼쪽으론 한옥 건물을 지어 배치했는데, 생뚱맞다고 할 정도로 조화롭지 않아 보였다. 차라리 왜식 건물을 지어 통일성을 보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시멘트 문기둥에 '此門不門"이란 목판이 걸려 있다. ‘이 문은 문이 아니다’는 뜻으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이란 뜻이란다.

 

 

 

 

 

군산시에서 세운 평화의 소녀상, 그 뒤에는 일본 불교인들의 감사문(참회와 사죄의 글)을 적은 기념물이 서있었다. 시민들이 맨발의 소녀를 위해 발 주변에 핫팩을 놓았다.

 

 

소녀상 옆의 일본식 범종, 일본인들은 이 범종을 왜 높게 매달았을까. 범종의 소리는 땅바닥에 묻은 공명통을 통해 울려나야 제멋일 텐데... 이곳은 종 아래 공명통으로 항아리를 묻긴 했다.

 

 이절의 대웅전은 역시나 유감스럽게도 동쪽 일본을 향해 있었다. 해방 이후, 이름을 왜 하필 '동국사'라 지었을까?  아무래도 왜국을 연상케 한다.

 

  법당안도 일본식이었다. 바닥 전체가 마루인 우리와 달리 신을 신고 들어가 신발을 벗고 마루 위에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마루 끝자락엔 의자들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법당 안이 우리 전통 사찰보다 화려해 보였다.

 

 

 

법당인 대웅전과 스님들이 거처하는 집인 요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뜰앞 나무 앞 석좌에 올려진 돌인형 둘, 우리나라 것인지 일본 것인지 헷갈렸다. 왜색풍이 짙긴 하지만... 

 

  향적원 - 한옥으로 지은 ㄱ 자 건물, 스님들의 거주공간이라고도 하고 식당이라고도 한다. 차라리 왜식 건물로 지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군산은 참으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많은 도시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김제평야를 비롯해서 이 일대에서 생산한 쌀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계획도시로 만들었던 도시이기에 아직도 일제의 잔존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는 교육적 가치가 있다곤 하지만,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독일사람들과는 달리 과거의 과오를 반성할 줄 모르고 적반하장 격으로 우리를 헐뜯는 일본 위정자들의 작태를 보자면, 군산시도 이제는 과거를 뛰어넘을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도시계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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