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포항 이웃에 있는 부안 영상테마파크는 한 마디로 을씨년스러웠다. 잔뜩 흐린 날씨에다 색 바래 너덜너덜한 단청무늬 벽지를, 쌀쌀한 바람들이 들추어 바람난 처자의 치맛자락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풍상에 나부끼는 단청벽지들과 부서져나간 세트장 모서리들의 상처들이 오늘날 우리나라 어지러운 정치판 모양 같았다. 이곳은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듯, 색 바랜 호기심도 새로운 볼거리도 없이 그저 쇠락해 빛이 바래가는 세트장일 뿐이었다.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영화 속의 몇몇 장면들을 상상하며 들어섰는데, 한 때의 부귀영화도 일장춘몽인 듯... 망국의 왕조처럼 서서히 망가져가는 세트장의 겨울풍경을 그저 말없이 휑하니 둘러보곤 멋쩍게 나왔다. 글쎄 요즘에도 이곳에서 영화촬영을 하는지 모르겠다.
격포항에 숙소를 정하고 인근 활어센터에서 저녁을 먹었다. 활어집 주인을 잘 만나서 모처럼 서해안의 해산물들을 골고루 맛보며 친구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활어집 5만원짜리 저녁상, 나중에 올라온 회는 배불러서 다 먹지도 못했다. 매운탕까지 기본이고, 공깃밥은 별도로 외부 식당에서 배달해 주었다.
예전에 이곳 격포항에서 백합죽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숙소 부근의 식당에서 아침 메뉴로 주문했다. 만원 짜리 백합죽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친구들에게 조금 미안했다. 이제는 격포항 식당마다 백합죽 메뉴가 들어 있어서 일반화되었다. 일반화된 탓에 특별한 맛을 잃으면 그만큼 가치도 사라지는 것인데... 상당히 아쉬웠다.
백합죽 조반 후, 채석강으로 나갔다. 만조로 해변의 기묘한 기암괴석들은 볼 수 없었다. 퇴적층의 전형을 보는 듯, 아름다움보다는 그 이름이 더 유명한 형세다. 해변에 들어갈 수 없어 방파제 위를 한참 걸었다.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밀려들어 시야가 좋지 않았다.
격포항 아침
채석강
만조인 듯, 물이 차서 해변의 기암괴석들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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