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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올림픽의 성지 올림피아

  델피의 험준한 산에서 내려오자 햇살이 쨍하게 내비쳤다.  버스는 이오니아 해 코린토스만의 아름다운 해안을 끼고 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바다와 올리브 밭, 그 사이 시이에 빨간 지중해식 주택들이 바다를 향해 앉아있는 풍경들이었다. 그리스는 우리나라보다 국토는 넓지만 인구는 1000만여 명이란다. 그중 절반은 아테네에 모여 살기 때문에 그 이외 지역은 밀도가 현저하게 낮아 한가하다고 한다. 지방도로나 고속도로에도 차량통행이 복잡하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앞차를 무리하게 추월하려 하지 않았다. 화물트럭이 앞길에서 답답하게 서행을 해도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여유 있게 뒤따라 갔다. 아마도 그리스식 생활습관인지도 모르겠다. 가이드에 의하면 수년 전 그리스 경제위기는 정부의 복지지출 때문이 아니라 올림픽을 치르면서 끌어 쓴 외채 탓이란다. 빚을 빌려 외채를 갚는 악순환 때문에 디폴트 위기가 왔고, 유럽 연합으로부터 퇴출 위기까지 맞았는데, 유럽이란 말의 어원도 그리스 크레타 여왕 에우로페에서 유래했다니, 그리스를 뺀 유럽연합은 알맹이 빠진 껍데기라도 과언이 아니겠다. 현재 좋은 회사 다니는 직장인 월급이 1000 유러 정도라면 그 경제적 어려움은 짐작할만하다. 

 

  에우로페(그리스어: Ευρωπη)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으로 대륙 유럽의 이름과 위성 유로파의 이름은 그녀에게서 따온 것이다. 에우로페는 페니키아인이며 이오의 후손이다. 이오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전설적인 요정으로 제우스가 아내 헤라의 질투를 피하기 위해 그녀를 암소로 변하게 하였다. 에우로페는 티레의 페니키아 왕 아게노르와 여왕 텔레파사의 딸이었다. 

  하루는 제우스가 꽃을 따러 나온 에우로페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제우스는 하얗고 멋진 황소로 변해서 그녀를 등에 업고 바다를 건너 크레타로 납치해서 정을 통했다. 에우로페는 크레타 여왕이 되어 제우스와 사이에서 세 아들을 낳았는데 미노스, 라다만티스, 사르페돈이다. 에우로페 이름은 그리스 고대 지리학자들이 대륙의 이름으로 사용하면서 그 대륙은 유럽이 되었다. 

 

  올림피아로 가는 도중 그리스 노래들을 들었다. 내가 좋아했던 나나 무스꾸리도 그리스 사람이었다. 새삼 내 무지에 놀랐다. 70년대 윤형주 송창식이 불렀던 '하얀 손수건'을 무스꾸리 원곡으로 들었다. 즐겨 들었던 조수미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는 그리스에서 유명한 혁명가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라 한다. 이 노래는 그리스 반체제 작곡가 겸 가수 미키스 데오도라스키가 작곡했고 아그네스 발차, 마리아 투리가 이어 불렀다. 노래의 배경은 나치에 저항한 젊은 레지스탕스를 위해 만들었는데, 카테리니로 떠나 돌아올 줄 모르는 젊은 혁명가를 기다리는 여인의 심경이 담겨있단다. 데오도리스키는 1967년 군사쿠데타 정권에 철저히 탄압받아, 그의 음악은 그리스 전역에 연주가 금지되었다. 그는 군사재판으로 투옥되었고, 세계적 음악가들인 레너스 번스타인, 해리 벨라폰테 등이 그의 구명운동을 전개했다. 1976년 석방된 데오도리키스는 프랑스로 망명을 떠났다. 그리스 군사정권은 1973년 전복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들어섰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1972년 유신독재가 시작되며 너무 가혹해서 암울했던 시절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 시절 사상범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으나, 몇 년 살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생각났다. 갓 결혼하여 유복자를 임신했다던 그 친구 아내는 어디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의 아들이 태어났다면 지금은 마흔 살이 넘은 장년이 되었을텐데...  가난한 농가에서 오직 장남만을 바라고 대학에 보냈으나 자식을 감옥에 보내고, 몇 잔 막걸리에 눈가가 눈물로 짓무르었던 친구의 아버지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그리스 전통악기인 부추키의 애절한 선율에 맞춰 흐르는 아그네스 발차의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가 이리도 독하게 슬픈 노래인 줄은 정말 몰랐었다. 

 

  버스는 코린토스 만을 잇는 리온 안티리온 다리를 건너 파트라스에 입성했다. 햇살은 저물어 가고 우리는 해안가에 위치한 성 안드레아스 성당에 들어가서 교회 안에 모셔진 그분의 유골을 보았다. 사도 안드레아는 베드로의 동생으로 예수의 첫 번째 사도이고, 스코틀랜드와 러시아의 수호성인이다. 그의 작은 손가락 뼈와 두개골의 일부, 그가 순교할 때 못 박혔던 X자 십자가 잔해가 성당 안에 모셔져 있다. 안드레아의 두개골 유해는 1964년 9월 교황 바오로 6세 지시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가져왔다. 사도 안드레아 십자가는 부르고뉴 공작이 이끈 십자군 병사들이 빼앗아 마르세유 성 빅토르 성당에 안장됐던 것을 1980년 1월 19일 반환받았다. 우리는 은제 보관함 윗부분의 작은 창으로 성 안드레아스 두개골 유골을 볼 수 있었다. 2000여 년 전 유골을 본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예수님의 사도였던 성 안드레아님의 유골을 보았으니,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한 것만큼이나 영광스러운 성은이었다.

 

  해안도로로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어둠이 깔린 뒤에야, 올림피아 스타디움 가까운 호텔에 들어갔다. 저녁 식사후 여유가 있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잠자리에 빠져 들었다. 

 

  코린토스 만을 잇는 리온 안티리온 다리

 

  성 안드레아스 대성당, 사도 안드레아는 베드로 동생으로 본디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 예수가 어부인 성 베드로, 제베대오 두 아들인 야고보, 요한과 함께 안드레아에게 "나를 따르라. 너희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겠다"라고 말씀하자,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제자가 되었다. 안드레아는 그리스 북부 지방의 에피루스(Epirus) 등지에서 선교하였다. 70년경 로마 황제 네로의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로 마케도니아 이남 지역인 파트라스에서 체포되어 총독에게 심문을 받고 X자 형태의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안드레아는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로 X자형 십자가를 선택한 이유는 그리스어로 X는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글자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이틀 동안 안드레아는 계속해서 군중들을 향해 설교를 하였으며, 이를 보다 못한 군중이 안드레아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한 집행관에게 안드레아를 십자가에서 내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집정관이 그들의 요청에 따라 군사들에게 시켜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였다. 안드레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오자 갑자기 하늘에서 한 줄기의 빛이 내려와 그를 비추었다. 빛은 한동안 그를 감쌌으며 하늘로 다시 올라간 순간 안드레아는 숨을 거두었다.

 

  이후 안드레아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폴에 있다가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의 지시에 따라 그리스 파트라로 옮겨졌다. 그 후 1208년에 이탈리아의 아말피에 있는 성 안드레아 성당로 옮겨졌고, 15세기에는 그의 두개골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옮겨졌다. 그러다가 1964년 9월 교황 바오로 6세가 그리스 정교회와 화해를 하고 친교를 나누기 위해 그의 유해를 다시 파트라스로 보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 안드레아 사도가 매달렸던 십자가 조각들이 x자 상자 틀에 담겨 있다. 

 

  유골함

 

  바티칸에 있는 성 안드레아 상(자료사진)

 

  석양은 해안길 가로수 너머로 지고 있었다.

 

  올림피아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진 여신상 

 

  올림피아로 건너가는 다리

 

  매표소

 

  올림피아 입구와 안내문

 

  올림피아로 내려가는 길

 

 중앙 도로 오른편에 있는 체육 훈련장(patrestra) 기둥

 

  제우스 신상을 만들었다는 페이디아스 공방

 

  공방안

 

  공방 다음 방인 바실리카 교회 유적

 

  제우스 신전

 

  신전 앞에 있는 니케 여신상 안내문과 좌대

 

  제우스 신전 안내문

 

  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성화가 채화되는 헤라 신전

 

  왼쪽의 헤라 여신전과 가운데가 22개의 조각상이 있던 님파이온 유적(선수들에게 물을 공급하던 급수대)

 

  올림피아 스타디움으로 들어가는 입구

 

  올림피아 스타디움 안내문

 

  스타디움 본부석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를 기리는 기념 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