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국경에서 홍역을 치르고 캄캄한 밤에 호텔로 돌아왔다. 어둡고 좁은 산골길이라서인지 버스기사는 몇 번을 되돌려 길을 찾았다. 캄캄한 밤이라서 여장을 풀 새도 없이 잠 속에 빠져 들었다. 새벽에 깨어 뒤치닥거리다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니, 창밖에 동이 트고 있었다. 창밖엔 높고 험한 알프스 산봉우리들 한 구석부터 햇살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먼지 하나 없는 청정한 대자연 속이었다. 밖에 나와보니, 호텔은 호수 곁에 있었다. 밤중에 도착한 터라 주변경관을 볼 수 없던 탓이었다. 아침 일찍 낚시대를 들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 그를 따라가다가,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길이 나지 않은 푸른 초원 위에 아침이슬이 신발 위로 떨어져 흘렀으나, 개의치 않았다. 초원 끝, 숲가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사람도 있었다. 행여 그들의 잠을 깨울까 조심스레 그 곁을 돌아 호수를 돌아 호텔로 돌아왔다. 


  내 어렸을 때 우리 동네 공기가 이랬었다. 이마가 찡하도록 맑은 햇살과 이른 아침 푸른 들에서 뿜어내는 공기는 이슬을 머금어 신선하고 촉촉했다. 십리나 더 떨어진 읍내 중학교 가는 논두렁길은 웃자란 잡초에 이슬방울들이 머루알처럼 매달려서 일찍 등교를 서두는 우리 중학생 녀석들의 운동화는 언제나 흠뻑 젖었다. 아침이면 동네 중학생들이 모두(몇 명되지도 않았지만) 논두렁 입구에 모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행렬의 순서를 정했다. 꼴찌한 친구가 맨 앞에서 이슬을 털며 가는 것이었는데, 그 친구 신발은 이슬에 흠뻑 젖어 질퍽이며 거품까지 뽀글뽀글 뱉아냈다. 논두렁길을 벗어나서 큰 길로 나가면, 이젠 흙먼지가 젖은 운동화에 들어붙어 꾸정물까지 찔끔거리면서 학교까지 갔다. 뒤따라 가는 친구는 그에 비해 상당히 뽀숭뽀숭한 상태로 등교했음은 당연지사였겠다. 그런데, 운동화 적시기 싫어서 매일 우리보다 늦게 나오는 옆집 친구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 녀석은 우리에게 내내 똥뙤놈이라 놀림을 당하며, 따돌리기까지 했지만...   알프스 초원 위 이슬은 내 어린 시절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침이슬과 함께 맑고 깨끗한 대자연이 주는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마도 힐링이란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높은 알프스의 산과 울창한 숲, 그리고 푸른 초원, 이들에서 이름난 명승지보다도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림보다 더 맑고 푸른 알프스의 아침풍경이었다.     


 진저리를 치게 했던 슬로베니아 입국심사소


  목가적인 슬로베니아 농촌



  아침 해뜰 무렵, 호텔 창밖 알프스 풍경


  호텔 Alma


  뒤에 보이는 뾰족산은 해발 2132m로 줄리앙 알프스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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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한운택 2019.09.30 21:07

    먼지하나없는 상쾌한 풍경이 놀랍습니다.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