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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의 城

계백 장군의 오천 결사대, 최후의 보루 황산성

   "백제의 옛터전에 계백의 정기 맑고 관창의 어린 넋이 지하에 혼연하니 웅장한 황산벌에... " 옛 시절 논산 훈련소에서 황산 각개전투 교장으로 훈련받으러 이동하면서 불렀던 군가들이 떠오른다. 그때 각개전투 훈련장에서  '황산전투가 벌어진 황산벌은 어디일까'했던 궁금증이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얼마 전 탑정호 부근에 있는 백제군사박물관과 계백장군의 묘를 보았을 때도 백제군이 진을 치고 마지막 결전을 벌였다는 황산벌에 대한 궁금함은 풀리지 않았다. 백제군사박물관에 세워진 황산루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세운 하나의 장식물에 불과했다. 그래서 찾아본 곳이 황산성이었다. 

  몇몇 블로거 분들이 황산성 탐방 사진들을 포스팅해서, 그들을 참고로 했다. 내비게이션에 연산향교를 입력하고, 향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핸드폰을 꺼내 지도에서 도보로 황산성에 접근하는 길을 찾았으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네이버나 카카오 지도조차 황산성을 오기하고 있어서 찾을 수 없었다. 근처에 황산성 안내도나 이정표도 없었다. 출발 전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 논산시에서 금년에 황산성을 복원할 계획을 세웠다는 동영상도 있던데, 근처에 안내문 하나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향교 주차장에서 할 수 없이 차를 되돌려 나오다 길을 잘못 들어 끊겨 있는 막다른 길까지 갔다. 난감하던 차에 민가의 동네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손가락으로 황산성 방향을 가리켜 주었다. 좁은 길에서 차를 어렵게 돌려 마을길을 통해 갔으나 올라가는 산길이 너무 좁아, 혜림선원 근처 주택 공터에 차를 두고 내려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연산 향교 위 야산의 단풍, 황산성에 올라서야 안 일이지만, 이곳에서 황산성은 지척에 있었다. 황산성에서 연산향교가 내려다 보였으니까...

 

  전원주택 옆 공터에 미안한 마음으로 잠시 차를 두고 내렸다.

 

  주차한 공터 바로 앞에 있는 혜림선원, 선원 아래 오른쪽으로 주차장이 있었다. 다만 선원으로 가는 길이 좁고 길 가장자리 시멘트 포장이 깨져 돌을 모아 임시로 메꿨는데 위험해 보였다. 선원 위 주택에서 길이 끝난 줄 알고 왼쪽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갔으나 언덕 위에는 선산으로 묘지만 조성되어 있을 뿐이었다. 되돌아 나와 속는 셈 치면서 혜림 선원 방향으로 직진했더니 산성으로 가는 임도가 있었다.

 

  선원 위 '행복이 가득한 집', 갖가지 조형물들이 이채롭다.  소망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행복이 가득한 집' 뒤에서 황산성으로 올라가는 산길 

 

  산 아래 암자, 스님에게 길을 물어 암자 계단을 통과해서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보니 암자 왼쪽으로 우회하여 오르는 좁은 임도가 있었다. 

 

  암자 위의 임도

 

  황산성 아래 음수대, 비로소 이정표와 안내판이 보였다. 이곳에서 성 입구까지 150m.

 

  황산성 안내 표지판, 사진에 마름모꼴 성곽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였다. 안내문 앞이 황산성 주차장이다. 이곳까지 차를 타고 오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이곳까지 도로가 넓혀지고 산성 주변이 복원되면 쓸모 있을 듯하다. 이런 소중한 유적지를 방치하는 논산시 행정이 안타깝다. 황산성 관리와 보수가 탑정호 출렁다리 건설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일 텐데, 아쉬움이 크다. 

 

 드디어 눈앞에 보이는 황산성의 성벽

 

  황산성 입구로 산성에서 제일 낮은 곳이 남문이 있던 자리다. 백제 5000 결사대의 전투 출발점쯤 되겠다. 아랫마을이 관동리인데, 본래 관창리였단다. 신라 화랑 관창이 전사한 곳이라 한다.  

 

  성 위에 오르자마자 황산성 표지석이 있었다.

 

  논산시에서 나름 남쪽에 석축을 쌓고, 토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엉성하게나마 그물을 깔아 놓았다. 돈 좀 더 써서 성의를 보였으면 좋으련만, 눈앞에 보이는 곳에만 화려하게 예산을 집행하는 전시행정이 그저 안타깝다.

 

  산성의 성곽 흔적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 올라갔다. 오른쪽으로 도는 편이 훨씬 수월했을 텐데...

 

  무너져 흔적만 있는 산성의 성벽엔 잡초와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중간쯤 오르자 성벽 옆으로 멀리 들판 건너 산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르는 길이 거칠고 험해졌다.

 

  서편 성벽에서 보이는 상월면 들판(황산벌)과 산봉우리들. 계백장군과 백제의 5000 결사대들은 이 들판을 바라보며 죽음을 생각하며 결전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성 위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쉼터, 이곳에 지휘할 수 있는 장대(將臺)라도 서있어야 제 격일 것을...  지금은 등산로 중간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을 넘어가면 계룡산 국사봉이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북동쪽의 계룡산 능선

 

  성곽의 북쪽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뒤돌아 본 황산성 정상

 

  무너진 북쪽 성곽의 흔적

 

  왼쪽의 성곽을 끼고 내려가는 길

 

  동쪽으로 휘어지는 코너에서 올려다 본 성벽의 흔적

 

  동남쪽으로 성 아래 있는 정자. 내 소견으론 정자가 있을 자리는 아닌 것 같다.

 

  숲 사이로 남쪽 성곽이 보였다.

 

  동쪽 성곽길

 

  처음 올라왔던 남쪽 성벽과 남문지

 

  남문지 바로 위에 있는 옛 우물터

 

  성 안의 오솔길을 걸어 내려갔다.

 

  성 아래에서 올려다 본 황산성의 오른쪽 성벽,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않아 옛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올라왔던 황산성 아래 있는 암자. 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임도를 따라 내려왔다.

 

  황산성 위치와 찾아가는 길

 

  산성 안에는 잡목이 크고 많아 전망은 좋지 않았다. 계백장군의 결사대가 최후의 항전을 위해 주둔했던 곳인지, 화랑 관창이 관동리에서 전사했는지도 철저히 고증되어야 하겠고, 방치하고 있는 현재의 상태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활산벌은 먼 삼국시대 백제군의 마지막 항전지이기도 하지만, 후삼국 때 왕건이 후백제 견훤의 아들 신검을 물리치고 후삼국을 통일한 곳도 이곳 연산벌 황산이라 하니 역사적 유래가 깊은 곳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그곳에 개태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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