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안개 때문에 불투명했던 시야가 한낮이 되면서 화창한 날씨로 바뀌었다. 오랜만에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을 보는 날이었다. 모처럼 어린 시절 죽마고우들과 나들이를 함께 했다. 세월은 지났지만, 말투나 성격은 변함없어 희희낙락 떠들다 보면 지나간 세월들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문득문득 집안 얘기들이 스쳐 지나갈 때는 수십 년의 세월들이 번갯불처럼, 주름진 시간들을 현실로 돌려주었다. 만나면 그저 유쾌하게 떠들며, 한 잔 술에 과거의 추억들을 떠올리고, 우리 곁에 머물렀던 시간의 파편들을 퍼즐 조각 맞추듯 재구성하는 일들이 그저 즐겁기만 했다. 간혹 우리 곁을 떠나간 친구와 흰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또 다른 친구들을 볼 때면,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 퍽이나 길게 생각되었다.
한낮의 햇볕은 정말로 따가웠다. 태풍이 지나갔음에도 소양호의 푸른 물은 갈수기처럼 말라있었다. 산천은 의구하다는 말도 옛말이다. 갈 때마다 주변환경이 바뀌어 초행자처럼 어리둥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양호 나루터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배후령 터널이 개통되어 육로로 찾아가는 청평사는 가까워졌지만, 뱃놀이 삼아 소양호를 가로질러 올라가는 청평사가 훨씬 운치가 있다. 출발하기 전에 유람선 선장님이 가이드처럼 소양호와 청평사를 소개했다. 해발 수심 180여 미터라는 소양호와 청평사에 얽힌 공주와 상사뱀 이야기들로 호기심을 북돋우웠다. 철없던 시절, 청평사는 주춧돌 남은 절터에 작은 절집 몇 개로 명맥을 유지하던 절이였는데...
소양댐 나루터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 10여분 달린다.
청평사 올라가는 계곡
청평사 가는 골짜기에 세워둔 전설 속의 당나라 태종의 딸 평양공주와 상사뱀 조각, 골짜기에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에 저절로 청량감이 느껴졌다.
탕태종의 딸, 평양 공주를 짝사랑하던 청년이 죽임을 당하자 상사뱀이 되어 공주의 몸에 휘감기어 살았단다.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도 뱀을 떼어낼 수 없었던 공주는 방랑 끝에 청평사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구송 폭포 아래 작은 굴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목욕재계하고 스님의 가사를 지어 올렸는데, 그 덕으로 상사뱀은 속세의 연에서 풀려 해탈하게 되었단다. 공주가 이 사실을 당태종에게 알리자 당태종은 청평사를 고쳐 짓고 탑을 세웠단다.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난 곳을 회전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구송 폭포, 큰 비가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수량이 많아 썩 볼만했다. 아홉 개의 소리를 낸다고 해서 구성 폭포라고도 한단다.
청평사 회전문, 뒷산은 오봉산
대웅전 좌측으로 극락보전과 산신각
후측면에서 본 경운루
좌측면에서의 경운루
측면에서 본 회전문과 경운루
스님들의 선원과 병풍처럼 둘러선 오봉산
돌아오는 뱃길
전생의 나는 무엇이었을까? 전생의 업으로 인간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인데... 윤회란 돌고 도는 것으로 내가 살아생전에 지은 업의 댓가로 후생에 다시 태어나는데 무엇으로 태어날지 모를 일이다. 알면서, 또는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부끄러운 잘못을 저질렀을까. 또 얼마나 당당하게 나 자신을 비호해 왔을까. 조용히 침잠하여 내 자신을 돌이켜 본다. 윤회설이 참이든 상상의 산물이든 부끄럽지 않게 하루들을 살아갈 일이다. 청평사 회전문을 나서며 내가 쌓아온 업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삼성 VLUU WB-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