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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서동요 주인공으로 믿고 싶은 익산 쌍릉

 밤새 눈이 하얗게 내렸다. 하늘이 맑아 밖에 나왔더니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그늘진 곳엔 잔설이 얼어붙어 미끄러웠다. 산에는 오르지 못할 것 같아 익산 쌍릉으로 향했다. 예전에 두어 번 갔었으나, 그 후 발굴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동안 변화된 모습이 궁금했었다.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있어서 예전과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설화 속 동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의 이야기가 새삼 신비롭게 느껴졌다. 흰 눈이 덮인 능을 바라보며 잠시 전설 속의 시간으로 들어가 내 멋대로 상상에 빠져 보았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얼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  혈기왕성한 백제 청년은 신라의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서라벌로 달려갔다. 그는 마를 파는 서동으로 변장하고 서라벌 어린이들에게 마를 주면서 자신과 선화공주의 염문이 담긴 노래를 퍼트렸다. 이 노래가 궁궐 안까지 퍼지자, 당시 골품제가 엄격하던 신라였던지라 진평왕은 셋째 딸 선화공주를 내쫓았다. 서동은 쫓겨난 선화공주를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그녀를 위로하며 함께 고향인 백제 익산으로 돌아왔다. 왕비가 몰래 딸에게 챙겨준 패물 덕에 왕족이었던 이 청년(용의 아들로 표현된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미루어 용은 왕의 상징일 것)은 실력을 쌓아 백제왕위에 올랐다. 사랑을 얻기 위해 적국의 수도까지 들어가 성취해 낸 만용에 가까운 용기는 생각만 해도 낭만이 넘치는 영웅담이다.

 무왕은 42년간 즉위하여 혜왕 - 법왕 때의 불안한 정국을 수습하고, 백제의 중흥기를 구축했다. 이와 반대로 무리한 토목 공사와 정복 전쟁으로 백제의 국력을 소모시켰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의자왕 치세 전반기까지도 신라와의 전쟁에서 번번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이러한 국력 소모를 백제의 멸망과 관련짓는 것은 지나친 지적이라 할 수 있으며, 전반적으로 탁월한 정치적 역량을 바탕으로 한 능수능란한 외교술로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고 군사력을 크게 증강시킨 준수한 치적을 남겼다. 결론적으로 동성왕 - 무령왕 - 성왕의 부흥기 이후로 쇠락해져만 가던 백제의 국력을 되살린 명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왕릉에서 발굴된 관은 일본산 적송이란다. 부서진 목관의 잔해와 출토된 유물들은 국립익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대왕릉 - 백제 무왕의 능으로 추정한다. 무왕은 신라 향가 '서동요'를 지어 선화공주를 꼬여낸 서동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부친이다.

 

소왕릉 가는 길

 

소왕릉 - 예전에는 무왕의 왕비였던 선화공주의 묘로 안내했었던 것 같은데, 일찍이 도굴이 되어 유물이 없는 까닭에 요즘엔 주인을 알 수 없는 능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나름으로는 선화공주의 능으로 믿고 싶다. 

 

  찾는 이 없이 고즈넉한 곳 솔숲 속에 쌍릉이 있었다. 쌍릉 앞에는 새로 조성된 작고 아담한 공원이 고압선 철주와 전선 아래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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