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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꽃

  집 가까운 숲 속에 들어서자 달콤한 아카시아 향이 코를 찔렀다. 꽃향기를 따라 숲 사이를 해쳐 주위를 바라보니 곳곳에 탐스럽게 핀 하얀 아카시아꽃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어린 시절 국민학교 저학년 때, 할아버지 도움으로 아카시아 씨를 채취해서 학교로 가져갔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5월이 되면 우리나라 산을 하얗게 물들이는 아카시아꽃, 본디 번식력이 강하기도하지만 산림녹화에 급했던 1960년대 초엔 어린애들 노동력까지 동원해서 씨앗을 채취하여 전국에 뿌렸다. 그덕에 벌거숭이 붉은 산들이 몇 십년만에 푸른 산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요즘엔 아파트를 짓느라고 푸른 산을 파헤쳐 위험천만한 벼랑을 만들고 그옆에 주택들이 들어서는 난개발이 한창이니 격세지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땐 학교 숙제가 파리 잡아 작은 성냥갑에 가득 채워 내기도 하고, 학교에서 나눠준 쥐약을 놓고 쥐약먹고 죽은 쥐꼬리 2개 이상 잘라오기 등, 참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았다. 중학교 땐 농업 선생이 여름 방학 숙제로 개구리를 100마리 잡아서 말려오는 것이었다. 핑계이긴 하지만 여름 장마철에 개구리 말리기는 정말 어려웠다. 날도 흐린 데다가 쉬파리 때문에 자칫 구더기만 들끓을 뿐이었다. 결국 숙제를 해가지 못해 농업 점수를 깎였는데 어찌나 억울했던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그 선생님은 강사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시골 학교에서 그걸로 점수 좀 땄을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키우는 몇 마리 닭을 위해 몇 푼 안 되는 닭 사료를 만들려고 학생들이 개고생 했다. 그 시절 학생들에게 노동도 엄청 시켰다. 방과 후, 개울에서 돌을 날라 학교 축대를 쌓았고, 농업시간에는 학교 자두나무 과수원에 구덩이를 파고 학생들이 뙤약볕 아래 학교 화장실 인분까지 퍼 나르며 실습이란 미명으로 거름을 줬다. 똥자루에서 스며든 냄새가 며칠 동안이나 코끝에서 맴돌았다. 자그마한 체구에 연단에 서서 강압적으로 복종만 강요하던 땅딸보 교장 선생과 그 하수인이었던 까무잡잡한 농업 선생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지금 같았으면 천지개벽할 일이었겠지만, 그 시절엔 애들끼리 모여 낄낄거리며 뒷담화로 학교 선생님들 흉을 보면서 불평만 했을 뿐, 대놓고 항의 한 번 못했었다. 

 

  오솔길을 걸어 동네 숲 한 바퀴를 돌아오는 길에 향기로운 아카시아꽃 내음을 맡으면서 어린 시절 좋지 않던 기억들이 떠올라 나 혼자 타박타박 걸으며 슬며시 피식 웃고 말았다. 숲길과 개울가, 주택가 담장에 이름 모를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싱그럽고 아름다운 오월이다. 과연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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