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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영원한 누나, 유관순 열사 기념관과 생가

 막바지 추위일까? 날씨가 너무 춥다. 모처럼 친구따라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영원한 우리 누나 유관순. 앳된 얼굴에 가슴이 아프다. 열사는 1902년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재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유중권과 이소제의 3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영명학당에서 수학하다가 1916년, 미국 여성 감리 교회 선교사 사애리시(史愛理施) 부인의 권유로 서울의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교비생으로 편입학했다. 당시 이화학당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고, 집이 멀었던 유관순도 자연히 가족과 헤어져 기숙사에 살며 공부하게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으로 학교가 휴학하자 고향 집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하다 아버지는 현장에서 사살당하고 이에 항의하던 어머니는 일제 헌병의 총검에 사망하였다. 현장에서 부모를 잃고 항의하던 소녀 유관순은 유치장에 갇히고, 열흘 후에 공주지방법원으로 이송되어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서울로 이감되어 징역 3년을 판결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던 중 1920년 9월 28일 짧은 생을 마감했다.

 1920년 10월에 이화학당에서 시신을 반환받아 10월 14일에 장례를 치렀고, 유해는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 이후 일제가 이태원동 공동묘지를 군용기지로 사용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할 예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부모가 모두 순국하고 오빠가 투옥되는 등 여러 사정들로 인해 무연고 묘로 남아 파묘 이후 유실되었고, 정황상 다른 무연고자 유해들과 같이 합장묘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즉한다. 2018년 이화여고 동창회와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등의 주도 하에 합장묘 옆에 '유관순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를 세웠다.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에서 1989년 10월에 매봉산 기슭에 초혼묘를 만들었다.   

 

유관순 기념관 입구 초혼묘 봉안 기념비

 

기념관 맞은편에 선 열사 동상


기념관

 

기념관 내부 안내문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기념화

 

전시물

 

공주 지방법원 판결문

 

경성 복심법원 유관순 판결문, 징역 3 년

 

전시관 내부

 

기념관 내 서대문 형무소 모형

 

건국훈장 독립장.

 

국가제정 표준 영정과 그 앞에 2019년 2월 26일 추서 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 훈장.

 

출구에서 본 기념관.

 

배봉산 서편에 있는 추모각 안내문

 

추모각

 

추모각 앞, 아우내 장터길.

 

추모각 반대편, 배봉산 동쪽에 있는 열사의 생가.

 

생가를 관리하는 관리사.


 일제의 잔혹한 탄압에 죽거나 상처 입은 조선백성이 수없이 많거늘 그들의 잘못을 처단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부역한 친일파를 기리며,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자생적 친일파들이 창궐하는 현실이 쓰리도록 가슴 아프다. 독립을 기뻐하며 자랑하고 홍보해야 할 독립기념관장마저도 친일파 앞잡이로 독립을 폄훼하고, 일제치하 조선인들을 일제의 신민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참으로 억장이 무너진다. 역사를 잊은 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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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기념관

미세 먼지 때문에 망설이다 햇살이 퍼진 뒤에야 집을 나섰다. 봄날씨가 완연해서 차창을 열어도 전혀 춥지 않았다. 아우내에 도착했더니 때마침 장날이어서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주차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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