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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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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 금년 오월에 막내가 친구에게서 얻어온 열댓 마리 구피, 이젠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개체수가 늘었다. 제 새끼를 잡아먹는 탓에 새끼가 보이면 재빠르게 작은 어항에 옮겨서 따로 끼운 후, 몸집이 커지면 다시 합류시키곤 했다. 개체수가 많아지니까 물을 자주 갈아줘야 한다. 게다가 날씨까지 더워 물이 탁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어항의 물 갈아주는 정성도 보통이 아니다. 무미건조한 거실 풍경에 살아 움직이는 구피들이 무료함을 달래주긴 하지만 웬만한 정성이 아니면 기를 수 없겠다. 수시로 들여다보며 대견해하는 막내의 정성이 놀랍기도 하지만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얼마전 가족여행을 떠났었는데, 구피들이 문제였다. 녀석들을 어항채로 들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어서 결국 외가에 맡기고 갔었는데, 보통 민..
강화 정족산 전등사 강화의 마지막 여정은 전등사였다. 전등사는 강화도 대표적 사찰로 방문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세월이 흘러 기억이 가물거리다 보니 옛 시절 추억들이 그리울 뿐이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대로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파른 비탈길을 한참이나 올라갔는데, 비탈길 계단 위 식당 있는 곳에 주차장이 하나 더 있었다. 주차장이 여러 곳에 있다는 것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수밖에... 우리가 주차한 곳은 이른바 동문 주차장이라는데, 동문 식당을 찍고 오면, 힘들이지 않고 전등사 동문으로 올 수 있겠다.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찰이다보니 탐방객들이 많았다. 이곳도 템플스테이에 힘쓰고 있는 듯, 새로 지은 건물들도 많아서 낯선 풍경도 많았다. 향로전과 대웅전 사잇길로 오르니 삼성각과 정족산사고 이..
시련의 땅, 강화 전적지 고려궁지에서 가까운 갑곶돈대로 향했다. 강화대교와 이어지는 갑곶돈대에 전쟁기념관도 있었다. 때마침 기념관 2층에 625 당시 참전한 프랑스군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는 것 같았다. 1866년 병인년에는 강화도를 침략하여 성안을 불사르고 문화재를 약탈했던 프랑스군이 80여 년 후엔 지원군을 파병하여 이 땅에서 피를 흘렸었다. 역사의 쳇바퀴는 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로 나날이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는 오늘, 앞으로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강화도 전적지에 들어서는 심회가 사뭇 달랐다. 고려 때부터 외세의 침략 때마다 시련을 겪었던 강화도였다. 오늘도 북한과 강 하나를 맞대고 대치하고 있기도 하다. 강화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사람들은 무심하리 만큼 평화..
고려궁지와 외규장각 석모도에서 강화읍으로 들어와 강화성 남문 인근 모텔촌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숙소에서 맛집을 물어 찾아간 곳이 강화 풍물시장이었다. 풍물시장 2층에서 저녁 식사로 강화특산물이라는 밴댕이를 회와 구이, 무침으로 먹었다. 개인적 취향으론 무침이 제일 좋았다. 아침식사는 숙소부근에서 소머리 국밥을 먹었는데, 값도 6000원으로 저렴했고 그 맛이 괜찮았다. 느긋하게 숙소에서 나와 고려궁지를 찾았다. 자동차 네비오류로 인근 강화군청 부근을 맴돌다가 결국 스마트폰 네비의 도움을 받아 고려궁터를 찾아갔다. 고려궁지는 예전에 왔던 적이 있어서 새롭지 않았다. 그동안 아전청이 생겼고, 동헌 건물 안에 인형을 두어 관람에 편의를 주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하고 불살랐던 외규장각이 과거엔 복원된 건물만 서..
석모도 보문사 금년 6월 27일 개통된, 석모대교를 건너 석모도 보문사까지 쾌속 주행했다. 비가 온다던 날씨는 맑게 개어 푸른 하늘 아래 뜨거운 햇빛이 작렬했다. 배를 타고 건너 다녔던 석모도가 연륙교 덕택에 강화 본섬과 생활권을 함께 하게 되었다. 진작부터 가보고 싶었던 석모도였는데, 친구들과 함께 건너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오후 4시경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보문사를 향해 올라갔다. 낙가산 남서쪽 비탈에 세운 절이라 경사가 보통이상이었다.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땅을 넓혀 종루 등의 절집들을 지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했다고 하나, 조선 후기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의 규모와 크기로 보면 현대에 이르러 불사를 크게 일으킨 듯, 그 규모가 보통 이상이었다. 낙가산 보문사 일주문 법고와 목어 옆에 있는..
북녘이 바라 보이는 강화 교동도 경기 북부에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를 듣고 망설였던 교동도행이었다. 장마가 끝난 지 오래인데 여름 내내 비가 내린다. 한반도는 여름철이 우기라는 말들이 사실인 성싶다. 어쩌면 강열한 뙤약볕보다는 비가 내리는 것이 여행에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다만 폭우가 아니기를 바라며 강화에 접어들었으나, 다행히 잔뜩 흐린 날씨에 구름만 오락가락하며 비는 내리지 않았다. 교동대교 근처에서 경비병으로부터 출입증을 받았다. 밤 12시 통금시간 이전에 나오라는 당부를 듣고, 4.2km에 이르는 교동대교를 건넜다. 한강 하구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 보고 있는 서울근교 최북단 섬인 교동도는 최전방답지 않게 평화로운 농촌마을이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대로 대룡시장으로 가서 맛집이라는 식당을 찾아 국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그 ..
내장산 백양사 내장산 깊이 겹겹이 접힌 산자락 속, 골짜기 안에 숨은 듯 자리한 백양사, 깎아 세운 듯 하늘을 찌르는 백학봉 흰 바위산을 뒤에 두고 호젓하게 앉았다. 김제에서 백양사까지는 한 시간 십여분 가량, 국도가 고속도로 못지않았다. 뜨거운 폭양 아래 인적조차 끊겼다. 내장산을 휘감은 애기 단풍들이 뜨거운 햇빛 아래 빨갛게 익어, 찬바람과 함께 이 산을 빨갛게 물들이면 단풍잎 만큼이나 많은 풍류객들이 이 골짜기를 메울 것이다. 무심한 뭉게구름만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시간까지 멈춘 것 같은 내장산 백양사였다. 백양사 쌍계루, 뒷산이 백학봉. 천왕문 종무소 청운당과 향적전 선불당, 템풀 스테이 주거지 극락보전과 대웅전 대웅전 앞뜰 대웅전 뒤 석탑 범종각 보리수와 범종루 설선당과 백학봉 대웅전 추녀 http://fal..
벽골제의 여름 김제 시내에서 1박 후 벽골제로 갔는데, 뿌옇던 하늘이 점차 걷히며 햇볕이 들자 더위가 극성을 부렸다. 아침식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벽골제 공원 안내소에 물었더니 인근 식당에 전화로 알아보고 가르쳐 주었다. 장소를 잘 몰라 공원 안 장터국밥집이 준비 중이라 이웃에 있는 명품관으로 갔다. 본디 고급 음식점을 찾는 편이 아니라서 망설이다 들어섰다. 의외로 메뉴들이 소탈하고 서민적이었다. 한우 전문점이라서 설렁탕과 육회비빔밥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전주에서 13000원 하던 비빔밥이 9000 원이었다. 반찬도 제법 맛깔스러워서 전주의 성의 없던 비빔밥을 성토하며 늦은 아침식사를 맛나게 먹었다. 지난 겨울 친구들과 왔던 탓에 가족과 함께 다시 들렸으나, 그 넓은 공원 안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우리 식구밖에 없었다..
조선왕조의 고향, 전주 삼사 년 만에 방문한 전주 경기전이었다.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자마자 폭우가 내렸다. 우산 속으로 밀려드는 빗방울들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갑자기 스콜처럼 쏟아지는 비에 낭패를 본 것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보지 못했던 많은 한복대여점들이 성업 중이었다. 저마다 때깔 고운 한복들을 차려입고 나들이 중이었는데 억수로 비가 쏟아지니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대고 있었다. 아마도 한복 입은 사람들이 서울의 고궁보다도 많았다. 한옥마을 골목마다 삽시간에 한복거리가 된 것도 상점들이 늘어선 것도 예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어서 세월의 격변을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수년만에 상전벽해가 된 듯, 너무 놀랐다. 신발마저 비에 흠뻑 젖어 질척거려 불편했지만, 비 내리는 풍경도..
익산 미륵사지와 서동 생가터 무왕과 얽힌 설화가 많은 익산 지방, 무왕의 설화를 찾아 몇 군데 쏘다녔다. 미륵사지와 서동공원, 서동 생가터를 찾았는데, 미륵사지는 예전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으나, 서동공원과 탄생지는 첫 방문이었다. 관리주체가 달라서인지 문화재청 산하 미륵사지는 유적지답게 관리가 잘 되어 볼거리가 많았다. 반면 익산시청이 관리하는 서동 공원과 서동 탄생지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조성해서, 전시된 조형물들이 아동용 인형이어서 유치했다. 서동 공원도 유적을 기대하고 갔으나, 석상들로 꾸며 내 보기에 그리 볼만하지 않았다. 조형물과 동상에 거미줄이 쳐있는 것을 보고는 관계자들도 관심을 거둔 듯하다. 길가에 새로 조성한 서동 탄생지 역시 인형 조형물들이 어린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보기에 그리 좋지 않았다. 게다가 안내팻말에 ..
동양 최대의 석불상, 관촉사 은진미륵 관촉사 은진미륵, 국민학교 시절에 배웠던 불상이었다. 부여에서 가까운 거리인 논산에 있음에도 그동안 찾아보지 못했었다. 관촉사는 국도 곁, 작은 산 중턱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은진미륵 입상은 야트막한 야산 중턱에 공장 굴뚝처럼 우뚝 솟아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가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관촉사 경내 주차장에서 계단을 올라 우뚝 마주친 미륵상은 첫눈에도 범상치 않았다. 커다란 입상의 미륵상은 인체구조와 달리 얼굴과 머리가 특히 과장된 모습이었는데, 큰 얼굴엔 화장한 듯 눈이 그려지고 입술엔 흐리지만 검붉은 색이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몸통보다도 더 긴 이단의 머리, 그 위에 쓴 팔각형의 관과 이층 구조의 사각 보관도 보통 미륵상과 매우 다른 특이한 모습이었다. 절집들..
연꽃 궁궐 부여 궁남지 철 지난 연밭에 비가 내려 늦게 핀 연꽃마저 대부분 일그러져 있었다. 비 때문에 덥지 않아 다행스러웠으나, 카메라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막바지 피어오른 연꽃들을 보기 위해 방문한 손님들 이제법 많았다. 궁남지 넓은 연밭을 이리저리 거닐며, 한여름 오전시간을 보냈다. 백제시대 사비성 남쪽에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궁남지는 연밭의 명소로 이름나있다. 궁남지 호수 안에 들어선 포룡정에 잠시 올라 정자 마루에 누워서 시원한 한 때를 보냈다. 포룡정은 백제 무왕의 모친이 용과 인연을 맺어 서동을 낳았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고 적었다. 서동 탄생지가 익산에 있다고 들었는데, 이곳의 포룡정에서 용과 연을 맺었다니 다소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아름다운 연밭 한가운데 연못 정자 안에서 보낸 한 때 휴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