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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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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예당저수지 출렁다리 온양에 갔다 시간여유가 있었지만 날이 흐려 망설이다 내친김에 예당 저수지에 구경을 갔다. 출렁다리에 도착해 보니 인파가 장난이 아니었다. 각 곳에서 관광버스로 유람 나온 듯,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출렁다리에서 북적거렸다. 동네에서 단체로 오신 모양으로 아저씨 아줌마들은 거나하게 취해서, "얘" "쟤"하며 떠들며, 좁은 출렁다리에서 지나칠 때마다 막걸리, 맥주, 소주 냄새들을 훅훅 뿜어 내었다. 또한, 기분 좋게 취하신 듯, 입구 난장판에서는 소형 앰프 볼륨을 높이고 노래하는 장년의 아저씨 가락에 맞춰 쓰러질 듯 휘감기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귀청을 찢는 듯한 음악 소리가 시끄러워, 얼른 출렁다리를 건넜으나, 다리 건너 맞은편에서도 또 다른 음악소리로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
유엔군 초전 기념비 국도 1호 화성시 병점에서 오산시로 넘어가는 죽미령고개에 있는 유엔군 초전기념비. 죽미령 고개는 6.25전쟁 당시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미 육군이 싸운 최초 전투지이다. 1950년 7월 5일 빠르게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일본에서 급파된 미 24사단 찰스 스미스 중령이 지휘하는 406명의 특수임무 부대원들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스미스 부대원들의 특수 임무는 남침하는 북한군을 저지하여 그들의 속도를 지연하는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스미스 부대원들은 북한군에 대한 정보와 전투준비 부족으로 제대로 싸워보지 못한 채 150여 명이 전사하고 26명이 실종되는 손실을 입고 후퇴하고 말았다. 이 전투는 북한군이 미군과 벌인 최초의 전투로 이후 북한군은 이전의 남침 속도를 내지 못하였다. 그 결과 ..
안동댐과 안동 문화관광단지 월영교에 도착했을 땐 기어코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인근 편의점에서 우산과 벌에 쏘인 곳에 바를 약품을 구입했다. 안동댐을 건설한 후, 그 아래 강을 건너지르는 예쁜 다리를 놓아 시민들의 휴식공간을 만들었는데 이름도 아름다운 '달이 비추는 다리'였다. 다리 가운데 정자를 세워, 운치를 더한 데다가 야간 조명시설을 설치해, 밤 경치가 더 아름다울 듯했다. 넓은 강과 푸른 산, 그리고 인공의 다리가 조화를 이루어 보기에 좋았다. 날씨는 궂었지만 투명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어린 시절 비 맞으며 멱감던 추억을 떠올렸다. 비 내리는 월영교 풍경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안동시는 아예 이 지역을 하나로 묶어 월영교를 건너 민속촌과, 민속박물관, 고개 넘어서는 리조트와 문화관광단지를 만들었다. 초행인 우리..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의 생가 안동 임청각 안동시내에서 하룻밤을 잤다. 태화동에 모텔들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무인모텔에 숙박하는 진기한 체험을 했다. 방처럼 나눠진 1층 주차장에 차를 대면 전동 셔터가 닫히고, 계단으로 2층에 올라 객실입구 모니터를 터치하며 계산을 하면 객실에 들어갈 수 있다. 놀랍게도 머리맡에 있는 스위치를 켜면 천정 가운데 사각 스크린이 열렸다. 세상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놀라며, 이 장치를 고안한 건축가의 창의성에 탄복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근거리의 임청각을 찾았다. 아쉽게도 날씨가 잔뜩 흐려 빗방울이 곧 떨어질 것 같았다. 작년에 문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을 언급하여, 그때부터 방문을 벼뤘다가 이제야 찾아오게 되었다. "임청각은 1519년 조선 중종 때 이명이 건립한 건물..
안동 하회마을과 부용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제대로 실감 났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곳을 방문한 후라 이곳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 이곳에서 하룻밤 민박했던 적이 있었다. 밤 사이 애들이 모기에 물려 얼굴 곳곳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었다. 그 시절엔 마을 안 민박집 마당에 주차했다. 그 사이 하회마을 입구에 주차장을 크게 만들고, 장터까지 만들었다. 마을까지 걸어 들어갈 걱정을 했는데, 반갑게도 셔틀버스를 무료로 운행하고 있었다. 셔틀버스 운행 소요 시간은 1 분이었다. 셔틀버스에 내려 뙤약볕에 걸어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입구에서 전동 3 륜 3 인승 오토바이를 2만 원에 빌려 탔다. 3륜 오토바이는 핸들이 뻑뻑해서 잘 돌아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오토바이 경험이 ..
풍기 금선정과 금양정사 햇살이 좋아 햇살 때문에 금선정을 찾아갔다. 친구들과 안동 가는 길이었는데, 햇살이 좋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아름다운 명승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살짝 있었지만, 이름 없는 시골 마을 작은 골짜기 정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 가을에 왔을 때, 금선정은 풍상에 씻긴 그대로 고색창연한 모습이었는데, 아뿔사 그 사이 전면 보수를 해서 낯선 모습으로 서있었다. 정자를 에워싼 담과 축대도 새 돌로 쌓았고, 정자 지붕에 기와도 새것으로 바꿔 덮었다. 마치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고택을 찾아왔는데,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들을 벗겨내고 새로 지은 신축건물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어서 모처럼 마음 크게 먹은 방문이었는데 그동안의 ..
정선 아우라지 "아우라지 강가에 수줍은 처녀/ 그리움에 설레어 오늘도 서있네 뗏목 타고 떠난 님 언제 오시나 / 물길 따라 긴 세월 흘러 흘러갔는데 (후렴) 아우라지 처녀가 애태우다가/ 아름다운 올동백꽃이 되었네. 아우라지 정선에 애달픈 처녀 / 해가 지고 달 떠도 떠날 줄 모르네 뱃사공 되신 님 가면 안 오나 / 바람 따라 흰 구름 둥실둥실 떴는데" (현대 가요 '정선 아우라지')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 낙엽이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 나는 못살겠네." (전래 민요 '정선 아우라지') 밤새 내리고 못다 내린 빗방울들은 미련이 남아서인지 산 중턱에 구름 안개로 걸터앉아 호시탐탐 중력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쨍한 햇살을 기대하고 여행길에 나섰으..
고성 천학정 청간정에서 통일전망대로 가는 길가에 이정표를 보고 따라간 천학정은 해안가 벼랑 위에 세워놓은 야트막한 정자였다. 천학정에 올라 관리인을 만났는데, 눈인사를 하니 벙어리 말문 터지듯,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천학정은 일제 때인 1930년대 세워졌는데 이 정자 뒤의 둥근 동산의 모습이 학의 알처럼 생긴 데다가 학들의 서식지였기 대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전했다. 게다가 동산 봉우리 30여 미터 아래 소나무는 수령 1500이란다. 1500년 이전이라면 삼국시대쯤인데, 그때의 소나무가 현존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비전문가인 내가 봄에는 수령이 많아야 300년 정도쯤으로만 여겨지는데... 나무 아래 너럭바위가 있는데 제단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동안 풍상에 시달리고 청간정 아래 도로를 개설되면서 산세가 기울어..
고성 통일전망대 전날 밤 건물을 날릴 듯했던 강풍은 새벽에서야 잠들었다. 맑은 하늘, 따뜻한 날씨는 동해 절경들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금강산 관광이 끊어진 지 10여 년, 고성 통일 전망대로 갔다. 옛날 전망대 옆에 P자 형태로 새로 지어 2018년 12월 28일 개장한 전망타워가 돋보였다. 주변을 돌아본 뒤 4층 전망타워에서 조망하다가 사진을 찍기 위해 3층 엘리베이터 옆 공간으로 내려가 유리창 없는 공간에서 시원하게 금강산 일부분과 구선봉, 해금강 일대를 바라보며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금강산을 찍겠다고 무거운 500mm 망원렌즈를 들고 가서 북녘땅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군사지역을 찍는다고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기야 금강산 관광 가던 시절엔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곳이었고 남북 화해모드로 일부 GP도 ..
고성 DMZ박물관 고성 통일전망대 부근에 커다란 최신 건물의 DMZ박물관을 견학했다. 남북 화해모드에 따라 2006년 3월 남북관광교류타운으로 공사를 착공했으나, 2008년 12월 강원도 DMZ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2009년 8월 14일 개관했다. 설립 목적은 남북한 분단의 현장을 안보, 평화, 관광 거점 지역으로 중점 육성하고 미래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비무장지대(DMZ)를 세계적인 역사문화의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서라는데 그 규모가 매우 컸다. 무료입장이었는데, 통일 전망대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들리는 듯, 관람객들이 제법 많았다. 각종 자료들을 입체화하여 비무장지대를 재현했는데, 볼만한 것들이 많았다. 조선의 멸망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냉전시대 열강들 틈에서 분단되어 동존상쟁의 전쟁까지 치른 한반도의 비극을..
주문진 소돌해변 주문항에서 생선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활기찬 수산시장이 아닌가 싶다.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값이 싸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구경할 겸 들렸는데, 수산시장을 새로 정비해서 예전과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오징어가 풍년이라더니 그것도 딴 말이었다. 요즘 잡히는 것은 오징어 새끼처럼 작아서, 소위 총알오징어라는 것이었는데, 만원에 다섯 마리, 3만 원에 20마리가 시세였다. 수산시장 어귀 골목 생선구이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반찬이 형편없었다. 모둠구이 중짜가 3만 원이라는데, 공깃밥은 별도이고, 반찬은 네 칸으로 나뉜 세트 접시에 소량으로 담겨 나왔다. 우리 동네 생선구이집에 가면, 그 값으로 깨끗한 식당에서 맛있고 정갈한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데, 꾀죄죄한 골목식당에서 내 돈 내고도 꿔다 논..
여주 황포 돛배 산속이 아닌 강변에 위치한 사찰로 우리나라에서는 신륵사가 유일하지 않을까. 강천섬에서 신륵사로 이동해서 부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사람들이 많아 한참을 지체했다. 신륵사에 들어 가려다 강변에 있는 황포돛배 나루를 보곤 그리로 가서 황포돛배를 탔다. 선착장에서 매표하는데 한 사람당 6000원이라 운항시간과 주변경관에 비해 싼값은 아니었다. 황포돛배는 외양만 돛배일 뿐 발동선으로 신륵사 쪽 나루에서 운행하는 배는 황포 외돛이고, 맞은편 강변 나루에서 운행하는 것은 황포 쌍돛배로 각각 두 척씩 운행하고 있었다. 신륵사에서 가까운 여주대교 부근까지 내려갔다가 신륵사 부근 상류에서 회항해서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약 25분 정도 소요되었다. 색다른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4대 강 사업으로 ..
여주 강천섬 은행나무길 휴일날 영동선은 언제나 교통이 혼잡스럽다. 버스전용차량제까지 실시되고 있어서 더더욱 심한 것 같다. 경부선에 비하면 버스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 일률적인 버스전용차량제보단 도로 상황에 따라 실시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강릉까지 KTX까지 개통되었으니 말이다. 마성터널 앞에서 경찰관들이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는 승합차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이른바 6인 미만이 탔음에도 전용차로를 기분 좋게 달리다가 단속에 걸려 쩔쩔매는 모습들을 보니, 한편으론 고소하기도 했다. 정체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기에 용인에서 국도로 빠져 체증을 피해보려 했으나, 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양지 가는 길에 2차로를 막고 보수공사하는 모습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교통이 원활한 평일 낮에 보수공사를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경주 양남 주상절리와 감포 세월이 유수와 같단 말이 더더욱 실감이 났다. 과거 걷거나 말 타고 다니던 시절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거늘 오늘날 디지털 시대엔 오죽 빠르랴 싶다. 정확히 6년 전 경주시 양남면 하서리항에서 읍천항까지 이른바 양남 파도소리길 1km를 왕복해서 걸으며 완상한 적이 있었다. 해안을 따라 걸으며 바닷가의 오묘한 주상절리 암석들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었는데, 이번 방문에는 내비게이션이 아예 이곳의 압권인 부채꼴 주상절리로 안내해서 그만큼 걷지도 않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과거 군부대와 철조망이 있었는데, 이젠 말끔히 걷어내고 부채꼴 주상절리가 바로 보이는 언덕 위에 지상 4층의 전망대가 우뚝 서있었다. 좁은 해안가 도로 탓에 주차가 문제여서 국도인 2차선 좁은 길엔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도로 주..
경주 불국사 날씨가 흐렸다.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는 석가탑을 보수하는 중이어서 다보탑과 쌍을 이루는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다. 보호 유리집을 떼어낸 석가탑을 보기 위해 불국사에 갔는데,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연휴를 맞아 경주를 여행하시는 분들은 모두 이곳에 모인 것 같았다. 환한 웃음꽃을 피우며 담소하는 남녀노소 탐방객들, 외국 사람들도 많아서 세계문화유산다운 국제적 명소다웠다. 하기야 장대하고 크지만 우중충하고 음산한 일본의 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아담한 모습으로 부드러우며 온화한 우리나라 사찰의 모범이 될 성싶다. 동남아시아의 금박 물린 화려함은 천박스럽고, 하늘로 치솟는 추녀 끝의 곡선도 가식적으로 보이는데, 불국사는 온화하고 중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우리만의 절집이었다. 그뿐 이니라 우아한 아치의 청운교 ..
경주 박물관과 안압지, 계림과 교촌마을 경주 여행 마지막 날, 날씨가 맑고 상쾌했다. 맥없이 늘어지던 흐린 날보다 쨍하게 맑은 청명한 날이 너무 좋아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침 일찍 조반을 먹고 박물관 투어에 나섰으나, 개장시간이 10시란다. 안압지를 먼저 들를 것을... 순서를 잘못 정했다. 되돌릴 수도 없고 박물관 뜰을 거닐며 고운 햇살을 안고 야외전시물들을 완상하며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박물관 안에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들어온 젊은 가족들을 비롯해서 3대가 다정히 입장하는 손님들도 많았다. 우리 역사의 견문을 넓히며 여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스트레스 날리는 놀이공원도 좋겠지만 우리 옛것을 안고 살아가는 온고지신이 값진 일이라 생각한다. 개장 시간에 맞춰 박물관에 입장하여 관람을 마치고..
경주 첨성대 1970년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되자, 그 해 가을 버스를 타고 경주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갔었다. 해인사 ->경주-> 통도사를 경유하는 2박 3일간의 여정이었는데, 시외버스를 대절해서 일렬로 떼를 지어 고속도로를 달리던 그 상쾌함을 아직 잊을 수 없다. 특히 추풍령 휴게소와 낙동강 대교를 건너면서 도로가에 주렁주렁 빨갛게 매달린 사과들을 잊을 수 없다. 학교에서 얌전한 줄 알았던 친구가 선생님 몰래 맥주병을 들고 병나발 불면서 주사를 부리던 모습도 잔웃음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남루한 경주여관에서 한 방에 10명이 넘게 웅크리고 칼잠을 자며, 10명 또는 15명이 둘러앉아 여관밥을 허둥지둥 욱여넣던 모습들이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그 시절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첨성대 부근엔 철조망이 엉성하게 둘려져 ..
제암리 순국지 1919년 4월 15일 일제가 화성시 제암리 교회에 마을 주민 23 명을 가두고 학살하고, 제암리 민가 30여 가구에 방화하여 마을을 폐허로 만들었다. 3월 31일 발안 장터 독립만세 운동 이후 이 지역에 번지는 만세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자행한 일제 헌병들의 만행이었고, 인근 인근 마을 팔탄면 고주리에서도 남자 6명을 학살했다. 사건 후에도 일본헌병의 심한 감시로 희생자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으며, 4월 17일 의료선교사 스코필드가 유골들을 향남면 도이리 공동묘지 입구에 안장했다. 언더우드는 참사현장을 돌아보고 보고서를 작성해 미국으로 보냈으며, 스코필드는 일본헌병 몰래 현장사진을 찍어 미국으로 보내 일제의 야만행위를 국제사회에 여론화시켜 비판하였다. 이후 1980년대 초 도이리에 매장한 순국열사들의 유..
화성시 우리꽃식물원 처음 방문한 화성시 우리꽃식물원이었다. 식물원 안에는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백두산 등에서 자생하는 우리나라 꽃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간절기라 꽃들이 만발하는 시기가 아니어서, 꽃들의 향연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아름다운 우리 꽃들을 즐기기 위해선 꽃들이 만발하는 5월쯤이 좋을 듯했다. 아쉬움으로 식물원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화원 밖도 조경이 뛰어나고,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편안하게 반나절은 즐길 수 있었다. 원두막 같은 정자들과 평상들이 곳곳에 있어서 돗자리를 가져가면 쾌적한 힐링이 절로 될 듯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모기장까지 가져와 원두막에 두르고 한낯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꽃들의 종류가 많고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아서 동선을 따라 지나가며..
정동진 모래시계 공원 80년대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전국에 알려지면서 일약 전국적 명소가 된 곳이다. 서울의 정동 쪽에 있는 포구라서 이른바 "正東津"이다. 강릉 가는 열차가 잠시 쉬었다 가는 간이역인 '정동진역'이 바닷가에 인접해 있다. 작은 어촌이었던 이 마을이 전국의 명소가 된 후로 상가들이 난립하여 시선이 매우 어지러운 곳이기도 하다. 옥계에서 강릉으로 올라오는 길에 잠시 들렸는데, 폭염 때문에 오래 지체할 수도 없었다. 인근에 낙가사, 안보전시관을 잠깐씩 둘러보았다. 모래시계 공원으로 건너는 다리 정동진에서 동해를 오른편에 두고 안인진 방면으로 올라오면서 볼거리를 찾았다. 관광지 안내판마다 낙가사가 소개되어 궁금한 마음에 들렸다. 옛 절터에 80년대 지었다는 괘방산 낙가사. 이곳에도 중국에서 건너온 포대화상..
강릉 옥계해수욕장 야영장 너무 더웠다. 감히 경험도 하지 못했던 40도 안팎의 살인적 폭염에 두문불출했더니 폐인이 된 느낌이었다. 바깥바람도 쐴 겸해서 강원도 영동지방이 더위가 덜하대서 강릉에 갔다. 대관령을 넘자, 하늘이 쾌청한 영서지방과는 달리 옅은 연무가 깔려 있었다. 그 덕 때문인지 기온은 제법 참을만했다. 바닷바람도 살랑살랑 불어 그늘에 들어서면 제법 시원했다. 경포대해수욕장은 이름에 걸맞게 차량들이 운집해서 비비고 들어갈 틈이 없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해변 모래사장이나 바닷물에서 노는 사람들이 없는데, 이 많은 차량들은 어디서 몰려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송정해변에서 하룻밤 숙박을 하고, 야영을 해볼 심사에 옥계해수욕장야영장으로 갔다. 해수욕장 입구부터 울창한 송림이 보였다. 해변으로 나갔더니, sk반도체에..
구름 위의 땅, 안반데기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살인적 무더위다. 평창 계곡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곳의 밤 기온은 섭씨 19도 정도였다, 텐트 속에서 자다가 추워서 친구들과 경쟁하듯 서로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이곳을 제외한 한반도의 기온은 한밤에도 30도를 상회했다. 하룻밤 사이 환경이 인간의 행동을 이토록 간사하게 움직였다. 집에서는 에어컨을 켜고도 더워서 웃통을 벗고 몸부림치면서 겨우 잠이 드는데, 이곳은 추워서 이불을 끌어 덮으니... 밤사이 지열 때문에 텐트 안에 촉촉이 물방울이 맺혔다. 텐트가 마르길 기다렸다가 접고 나서 안반데기로 향했다. 평창 진부의 동막골이라는 골짜기 입구 야영장은 별다른 시설이 없음에도 텐트 치는 값으로 3만 원을 걷어갔다. 강원도 산간오지 시골동네 인심도 말이 아니다. 안반데기는..
용인 대장금 파크 모처럼 화창한 날이어서 도로마다 차들로 가득했다. 여주에 가려다 중간에서 포기하고 백암으로 가서 그 유명한 백암 순대로 점심을 먹었다. 야채로 속을 꽉 채운 백암 순대는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점심을 먹다 문득 생각난 곳이 인근 mbc 드라마 세트장이었다. mbc드라미아로 가족들에게도 좋은 구경거리라 생각되었다. 그곳으로 가는 시골길이 조용하고 한적하며, 지나다니는 차들이 뜸해서 좋았다. 대형 주차장에 주차된 차들도 적어 여유 있었고, 관람객도 드물어 한가한 산책 코스로 딱 좋았다. 입구에 용인 대장금 파크라 새긴 돌덩이가 생소했다. 5-6년 전엔 용인 mbc드라미아로 부르더니 그 사이 대장금 파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입장료가 올라서 1인당 9500원이라 저렴하진 않았다. 얼마 전 입구에 대장금 세트를 ..
보길도 풍경 아침 7시 30분 해남 땅끝마을 선착장에 도착하자, 막 출항하려던 페리 여객선을 발견했다. 재빠르게 매표소에서 승선권을 구입해서 차를 몰아 페리 여객선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의 경우에는 후진해서 차에 들어가는데, 이 배는 규모가 커서 앞으로 들어가서 뒤쪽에서 유턴하여 선수방향으로 차를 세우도록 했다. 운전자 입장에서 편안하게 배안에 자동차를 실을 수 있었다. 여객선은 40분여 만에 노화도 산양항에 도착했다. 노화도에서 보길대교를 건너 보길도에 들어섰으나 너무 이른 아침이어서 윤선도 원림은 문을 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보길도 투어에 나섰는데, 보길도 땅끝 전망대를 경유하여 공룡알 해변 가까이 갔다가 되돌아왔다. 보길도 해안을 달리며, 주변의 올망졸망한 섬들을 바라보며 어부사시사 구절들을 떠올렸다. 시..
울돌목 진도타워 울돌목을 건너 진도에 입도할 때마다 왼쪽 언덕의 타워가 궁금했었는데, 이제 그 타워에 올라 그 궁금증을 해소하게 되었다. 가파른 길을 거슬러 오르니까 널찍한 주차장과 배모양의 7층짜리 우람한 진도타워가 나타났다. 울돌목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산마루에 승전광장을 만들어 명량대첩의 의미를 새겨 놓았다. 예전엔 맞은편 내륙 해남 지역에 해남우수영전적기념공원만 있었는데, 진도타워 건립으로 육지와 진도의 양안을 두루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명량대첩을 두고 내륙의 해남군과 진도군의 공적다툼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것 같다. 울돌목 양해안에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전승공원이 경쟁하듯 들어서고 있다. 주민들이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고무적인 일이다. 지역의 명예를 드높이고, 장군의 업적을 후손들에게 ..
진도 운림산방 진도 방문 첫 번째 코스로 조선조 말기, 소치 허련이 기거하며 그림과 저술활동을 하던 운림산방을 찾았다. 그간 몇 차례 이곳을 둘러보긴 했으나 겨울철 방문은 처음이었다. 겨울 햇볕이 심술궂게 오락가락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춥긴 했으나 남도의 봄기운이 숨어 숨 쉬는 듯했다. 봄향기를 품고 길게 누워있는 첨찰산 자락 아래, 고즈넉한 운림산방의 풍경이 보기에 너무 좋았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좋은 그림도 글도 나오는 건 당연지사겠다. 전시관 안에서 소치일가가 남긴 남도의 풍경들을 둘러보면서 구름이 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의 정취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 보았다. 운림산방 표지석, 뒷 건물은 남도전통미술관 그림 경매장 산방 진입로 운림산방 산방 앞 풍경 소치 허련의 기적비 그림을 그리던 산방 뒤 소치의 생전 살림..
아산 탕정 지중해 마을 온양에 들렸던 길에 탕정 지중해 마을에 잠깐 들렸다. 때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평창 올림픽 성화봉송행사가 예정된 탓에 교통 통제가 한창이었다. 마을 끝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날이 춥고 바람이 차서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동네 이름이 "BLUE CRYSTAL VILLAGE"였다. 그리스 산토리니풍경이라고 소문 들었었는데 산토리니 풍경만은 아니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양식을 모방한 파르테논 마을, 산토리니 풍의 마을, 남프랑스 프로방스를 흉내 낸 마을로 구성되었고 대부분이 상가였다. 바다와도 거리가 먼 곳에 생뚱맞게 이런 마을을 건설한 착상이 놀랍다. 마을 뒤쪽으로 탕정 신도시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해서 지중해 분위기와 어울리진 않았지만, 겨울철 아닌 봄 여름 가을은 그런대..
선유도 공원 영등포 양평동에 들렀다가 인근 선유도 공원으로 산책 나갔다. 양평동에서 올림픽 대로를 건너는 육교를 통해서 선유도에 들어섰는데 가을빛이 완연해서 좋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 소풍객들과, 젊은 연인들, 웨딩촬영하러 나온 예비부부들, 동호회 활동하는 젊은이들 등 사람들이 많았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와서 그런 것일까. 한강 변, 작은 섬안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다. 틀에 박힌 생활을 해온 나로서 자유분방하게 휴일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세월이 나만 빼고 지난 듯싶었다. 선유도는 선유봉이라는 작은 봉우리가 있던 한강의 작은 섬이었다. 일제 때 한강의 홍수를 막고 길을 포장하기 위해 선유봉에서 돌을 채취하면서 봉우리가 훼손되기 시작했는데,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