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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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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차도 일기 8 일찍 잠든 탓으로 새벽 닭소리에 잠에서 깼다. 밖에 나가보니 아직 밝지 않았는데, 항만의 불빛만 가물거린다. 방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더니 망망한 바다를 타고 올라온 해무가 지네처럼 엎드려 기어가고 있었다. 멀리 동편 하늘이 밝아오고.... 내륙엔 폭염과 가뭄이 극성이라는데, 이곳도 아침 안개 덕분에 제법 뜨거운 하루가 되리라 예상해 보았다. 그러나, 한낮이 되어도 뜨겁지 않았다. 하늘도 쾌청하지 않았고... 간간이 지나가는 구름 덕에 하늘의 색깔이 변화무쌍하기만 했다. 하릴없어 섬의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걸어서 움직이는 건 부두 광장을 가로질러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와 교회의 흰둥이, 그리고 우리 뿐이었다. 서쪽 해안으로 갔다가 성과가 없어 라면만 끓여 먹고 돌아와서 다시 북동쪽해안으로 가서 ..
서거차도 일기 7 어김없이 또 하루 섬의 일상은 아침이 밝으면서 어제처럼 반복되며 시작된다. 어제 그 사람이 오늘 또 내 곁에 있고 어제의 일이 또 오늘의 일이다. 단 날씨만 바뀌지 않는다면... 때로는 내륙에 출타하기도 하며 힘들게 찾아왔던 친지들도 힘들게 이곳을 떠나간다. 정기항로는 하루 한 번 진도 팽목에서 떠나는 9시 50분 연락선이 12시 50분경 들어왔다 나간다. 그 외에는 지나가는 연락선에 미리 전화로 연락해서 입항하도록 요청해서 배를 타고 떠나간다. 떠나간 사람은 몰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한동안 그만큼의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야 할 터이다. 좁은 섬 주변을 쳇바퀴 돌듯, 뺑뺑 돌고 나니, 벌써 무료해진다. 동네의 개들도 이미 낯이 익숙해진 듯 가까이 다가가도 이젠 쳐다보지도 않는다. 처음 영악스럽게 짖어대던 교..
서거차도 일기 6 그동안 벼르기만 하고 길을 찾지 못해 올라가지 못했던 서거차마을 뒷산에 올랐다. 날씨가 너무 맑아 멀리 있는 섬들이 눈앞에 있는 듯했다. 흔적만 희미한 산길이라 우거진 잡목과 숲을 헤치며 어렵게 올라갔다. 뱀에 물릴까 염려하여 등산 스틱으로 잡목들을 치면서 조심스레 올랐다. 오르는 중에 숲길 가장자리로 빠져나가는 뱀을 발견해서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산 등성이에서 잠시 길을 잃어 헤매다가, 능선을 타고 오르는 산길의 흔적을 찾아 더듬듯 숲을 뚫고 정상에 올랐다. 사자바위와 한반도 섬을 찾아보았으나, 한반도 형상의 돌섬만 발견했을 뿐이었다. 서쪽 끝으로는 맹골도가, 남쪽으로는 서거차마을과 항만, 병풍도가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다도해의 무수한 섬들이 막힘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었다. 서거차도 북쪽 해안은 거의..
서거차도 일기 5 넓지 않은 섬이라 동쪽 끝 산등성이로 걸어서 갔다. 우리가 통발을 놓던 동남쪽 해안에서 빤히 보이는 동쪽 산등성이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이곳 대부분의 산길이 그렇지만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어 도로의 흔적만 남아 있기 때문에 우거진 잡초 사이를 헤치고 걸어야 했다. 조심스러운 것은 곳곳에 살모사나 까치 독사들이 서식하고 있어 까딱하면 물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섬주민들처럼 장화 신고 산을 오를 수 없는 일이어서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동쪽 끝 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망망한 수평선 위에 크고 작은 무수한 섬들을 띄우고 있었다. 해무 때문에 시계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올망졸망 떠있는 검푸른 섬들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지도를 보며 익힌 섬이 눈앞의 상죽도와 동거차도, 감투 두 개가 산 꼭..
서거차도 일기 4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 예보에는 9시부터 12시 사이에 내린다더니,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조바심에 예보를 찾아보니 고맙게도 오전 9시 이전에 비가 그친단다.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강수량도 5mm 정도이고, 오늘은 물때가 좋아 입질을 맛볼 수 있으리란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긴 했으나 신통하게도 9시 넘어 비가 그쳤다. 낚싯대와 취사도구를 챙긴 후, 대웅이 아빠 봉고트럭을 타고 서거차 서쪽 끝지점인 커크래 해변으로 갔다. 커그래는 모래미 동네입구를 지나 해안의 비포장 도로 끝 지점에서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 거북처럼 생긴 섬 뒤의 바닷가에 있었다. 우리가 산 위에서 조망했던 거북 모양의 섬은 건너새끼섬으로 서거차도에서 통한의 맹골수로를 바라보며..
서거차도 일기 3 새벽녘, 닭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검푸른 하늘엔 별이 총총한데, 북두칠성과 북극성 카시오페아가 선명하게 빛났다. 이름 모를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새벽이슬이 비처럼 내렸다. 가랑비처럼 떨어지는 이슬의 촉촉한 감촉이 나쁘진 않았다. 이슬을 맞으며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새벽 공기로 심호흡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서거차에서 제일 높은 산에 오르기로 했다. 서거차항만을 타박타박 걸어서 이웃마을 모래미 동네길로 올라서며 산행을 시작했는데, 최고봉인 상마산에 레이더 기지가 있어서 길은 넓었지만, 통행이 없는 탓으로 숲이 우거져 원시림 속을 헤치고 가는 것 같았다. 지나는 길에 달래꽃, 찔레꽃, 산딸기, 싸리꽃들이 흐드러지고 있었다. 정상에 오르자 사방이 탁 트여 전망이 통쾌했다. 애석하게도 세월호 참사 때..
서거차도 일기 2 섬 날씨는 참으로 변덕스러웠다. 햇볕이 쨍하다간 이내 구름으로 덮이고, 그러다간 또 햇빛이 나온다. 오늘은 주로 서거차도 항만 주변을 거닐며 소일했다. 항만으로 뻗은 야산 두 개를 반반씩 쪼개어 연안을 메우고 부두와 방파제를 쌓았다. 그 덕에 작은 섬마을에 걸맞지 않은 대규모의 항만을 갖추었다. 항만은 인근의 어선들이 모두 집결해도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매일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연락선은 팽목항발 9시 50분 배인데, 짝수날은 같은 시간대에 두 척이 출발한단다. 아침부터 항만을 지켜보고 있자니, 수시로 연락선들이 들어왔다 나가곤 했다. 이른 아침 물고기 상자들을 싣고 가는 연락선부터 쾌속으로 다니는 행정지도선까지 호수같이 잔잔한 항만의 물살들을 드믄드믄 가르고 있었다. 오히려 어선의 출..
서거차도 일기 1 5월 25일 부처님 나신 날,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온 누리에 부처님 자비로 가득할 것 같은 아름다운 날이었다. 친구 둘과 함께 팽목항에서 오전 9시 50분 서거차도 가는 배를 탔다. 멀미를 걱정했으나, 바다의 수면은 호수처럼 잔잔해서 작은 파도 하나 일지 않았다. 처음 보는 크고 작은 섬들을 거치면서 몇 명씩의 손님들을 섬에 내려놓고는 배는 다시 최종운항지인 서거차도를 향해 갔다. 바다 바람이 거세고 차가웠으나, 서거차도에 이르는 세 시간여를 3층 조타실옆 갑판에 서서 오밀조밀한 섬들을 바라보며 갔다. 관매도를 지나 이른바 병풍도 부근 맹골수로를 멀리 바라보니 세월호 참사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져서 잠시라도 그곳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1박 2일 프로그램에서 봤던 관매도를 경유해서 멀리 병풍도를 왼쪽..
진도 팽목항 예전엔 진도인근 도서주민들과 섬을 찾는 관강객들을 발이 되었던 진도팽목항이 지금은 온 국민들의 슬픔과 한이 서린 곳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참사는 탐욕과 비리로 수많은 인명들을 바다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아직까지도 속 시원한 해결책 하나 없다. 오늘도 갈등만 부추긴 채, 진도 앞 작은 포구에서 노란 깃발들과 추모의 띠들만 세찬 바닷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무엇하나 확실하게 규명된 것도 없고, 속 시원한 대책 하나 공포된 것 없다. 영문도 모르고 침몰하는 배속에서 숨져간 그 많은 사람들의 한과 졸지에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은 사람들의 한은 아직도 이곳 팽목항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잘 살아보자'는 노랫말로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한 결과, 어느 정도의 물질들은 얻을 수 있었겠으나, 잃은 게 너무..
최참판댁 하동에서 구례로 가는 2차선 섬진강 벚나무길이 4차선으로 확장공사를 하나보다. 아름다운 벚나무길이도로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섬진강변을 따라 오르내리는 현재의 벚나무 2차선길은 언제보아도 아름답다. 천천히 달리며 섬진강 은빛 물결과 짙푸른 지리산자락의 그윽한 풍광들을 완상하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이제 그길마저 직선화하고 고속화하니 아쉽다. 고속으로 주행하다 보면 속도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국도를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이곳저곳 둘러보며 지방의 특징들을 느껴볼 수 있어서 여행할 대는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선호하는 편이다. 섬진강따라 북상하면서 들리는 마을이 최참판댁 마을이다. 변할 것도 달라질 것도 없는 평사리 시골마을인데,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nbsp 아쉽기..
이순신대교 이순신 대교는 2013년 2월 8일 개통한 여수 묘도와 광양을 연결하는 현수교이다. 여수산업단지와 광양을 잇는 이순신대교. 작년 여름에 이곳을 지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아스팔트 재시공으로 편도 1차선씩 운행하도록 했었는데, 이제 왕복 4차선 정상적으로 통행할 수 있었다. 총 연장 길이는 2,260m, 폭은 25.7m(왕복4차로)이며, 주각 간 거리는 1,545m 이다. 주각 간 거리 1,545m는 충무공 이순신의 탄생해인 1545년을 의미한다고 한다. 교각은 높이가 270m이며 H자형으로 개방감이 우수하고, 이순신 대교 아래로 18,000 TEU급 선박이 왕래할 수 있는 높이다. 세계 4위 규모 양쪽 주탑은 서울 남산(262m), 63빌딩(249m)보다 높은 270m인데, 현수교 콘크리트 주탑으로는 ..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6~7년만의 방문이었다. 순천만 국제 정원 박람회 이후 예전보다 정돈되었다. 찾아가는 길도 넓어지고 용산전망대도 아름답게 조성되었으며 이웃한 순천국제정원과 이어져, 레일을 이용한 소형 무인궤도차인 스카이워커까지 운행하고 있었다. 입장료도 두곳을 연계하여 8000원을 받고 있었다. 그만한 시설을 운용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순천만을 오가는 철새들의 소리가 바람을 타고 메아리지듯 크게 울려 왔다. 자연생태관에 들어가 전시물들을 보고는 순천만 뻘밭으로 나갔다. 뻘밭은 예와 다름이 없었는데, 드문드문 갈숲을 베어내어 추수 끝낸 논같았다. 수평선처럼 끝없이 이어진 갈대와 목재로 예쁘게 만든 갈밭 사이의 산책로,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들,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이곳을..
남원 광한루 남원의 새로운 풍물들을 접해보려고 춘향테마파크에 들렸다가 바람이 너무 차가워 돌아서고 말았다. 안내소에 들렸더니 점심시간이라 직원도 없었고... 시장하던 차라 그 유명한 남원 추어탕을 먹으려고 인근의 광한루 추어탕골목으로 갔다. 추어탕 맛집을 찾아 원조할매집에 들어 갔다가, 집안이 너무 허름해서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마침 큰 길가 깨끗하게 단장한 현대식 식당에 들어갔다. 깨끗한 겉모습에 걸맞게 정갈한 반찬들과 곱게 갈아 맛을 낸 추어탕이었다. 그 덕에 따뜻한 창가에서 햇살을 받으며 맜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추어탕촌 추어탕 값은 대략 8000원이다. 점심 후, 찾은 곳이 광한루.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통식 정원이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끌어들여 자연스럽게 연못을 만..
솔뫼성지 크리스마스 날, 방문한 당진시 소재 솔뫼 성지.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다만 맑은 하늘과 달리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체감 온도는 몹시 낮았다. 추운 날씨임에도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지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추워 종종걸음으로 성지를 한 바퀴 돌고는 신부님 기념관으로 갔으나, 휴일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애석한 마음이었지만 어절 수 없어 되돌아오고 말았다. 추운 탓에 오래된 똑딱이를 주머니에 넣어가서 초간편 모드로 촬영했다. 맑은 날임에도 노이즈가 보이지만 가벼워서 좋았다. photo by sammsung vluu wb550
감곡 매괴성당 장호원에 들렸다가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쉬워서 찾아간 충북 음성 감곡 매괴성당. 수년 전 내비게이션을 켜고 이곳을 찾다가 산골 마을까지 간 적이 있기도 했었다. 감곡 매괴성당은 이곳에 1896년 설립되었으나, 현재의 본당 건물은 1930년에 건립된 것이다. 성당은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매산 중턱에 앉아 충북 음성군 감곡과 경기도 이천 장호원을 서쪽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본디 이곳은 명성황후 육촌오빠가 살던 곳으로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잠시 피신하기도 했다. 흐린 날씨에 간간히 비까지 뿌려 을씨년스러웠으나, 가을의 마지막을 붉게 태우는 단풍빛이 빗물에 더욱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매괴(玫瑰)란 말이 어색하지만 '장미'나 '염주(念珠)'를 의미하는 옛말로서 흔히 아름다운 구슬을 뜻한다. 천주교에서는 ..
우럭 낚시 모처럼의 바다낚시였다.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서 간단한 준비를 끝내고 6시에 장안구청 앞에서 일행들을 만나 미니버스를 탔다. 낚시꾼 12명 모두 들뜬 마음으로 파안대소하며 어둠 속 서해고속도로를 질주했다. 화성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휴게소 밖으로 나오니 그 사이에 훤하게 동이 텄다. 이윽고, 8시 30분경 장고항에 도착하여 예약한 낚시배를 타고 우럭들이 기다리고 있을 해역으로 출항했다. 구름이 잔뜩 깔린 하늘탓에 아침 날씨가 찼다. 속에 받쳐입은 철이른 패딩점퍼 덕으로 추위는 면했으나, 세찬 바다바람에 귀가 시려웠다. 귀마개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 종내 후회스러웠다. 게다가 파도 때문에 멀미기운이 스믈스믈 올라오고 있었다. 뱃전에 앉아서 낚시도구를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지며 속까지 울렁거렸다..
안동 하회마을 안동양반촌을 대표하는 하회마을은 그 동안 여러 번 가봤고, 마을 안에서 모기에 띁겨가며 하룻밤 한옥체험도 했었던 터라, 하회마을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풍천면사무소 삼거리를 지나 하회마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부용대로 갔다. 낙동강 다리를 건너 광덕 사서리에서 좌회전해서 조금 들어가자 농가민박집을 끝으로 소형차 하나 겨우 들어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마주오는 차라도 나타나면 낭패일 성 싶어 조심스럽게 숲길 400m 정도를 지나자, 의외로 넓은 황토바닥 주차장이 나타났다. 한 편에 화장실도 갖추고 있는 너른 주차장이었다. 주차장 오른쪽으로 화천서원이 있었으나 잠겨있어서,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10여분 걸어 부용대로 올라갔다. 부용대는 하회마을 북쪽 낙동강 구비의 벼랑위 암석으로 그곳에선 하회..
안동 이촌동 석불 안동으로 내려오는 길에 이십 년도 지난 옛날에 들렸던 제비원 석불이 생각이 나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맞추고 그곳을 찾아갔다. 통상적으로 불리는 이름은 안동 이천동 석불이다. 석불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니, 예전의 지형과 딴 판이었다. 석불 아래 도로였던 곳이 넓은 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기사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서인지, 석불 주변이 예쁘게 단장되었다. 이곳을 방문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까마득한 과거 저편의 일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의 흐름이 점점 실감 나지 않는다. 이십 년 전 일들이 바로 어제같이 생생한데, 내 모습과 주변의 환경은 너무나 변해 있다. 앞으로 20년 후면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 ..
안동 군자마을 도산서원에서 남향하다 들린 곳은 안동군자마을이라는 광산김씨 집성촌 마을이었다. 광산김씨 집성촌 마을이라니 무엇보다도 반가웠으나, 마을이라기보다는 수몰지역의 고택들을 보존하기 위해 옮겨놓은 세트장 같았다. 집들 가운데 사람들이 고택 안에서 살림하는 집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고택들이 숙소체험장으로 쓰이고 있어 생생한 느낌은 덜 했다. 본디 이 마을은 안동시 외룡면 외촌리 외내에 있던 마을이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자 1974년 이곳 운암곡 군자리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낙동강이 흐르는 도산의 아홉구비 중, 첫 구비가 운암곡인데 군자마을이 바로 이 운암곡에 있다. 이 마을은 500-600년 전 광산김씨 김효로가 정착하며 형성된 마을로 같은 시대 외손인 봉화금씨까지 들어와 현재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이육사문학관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미 주차장은 만차가 되었다.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서자 주차관리원이 날래게 다가와 요금을 징수해 갔다. 점심시간이 다되었기에 음식점을 물으니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일러주었다. 관람 후 식사하기로하고,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한구비를 돌아들어갔다. 안타깝게도 이곳도 소수서원처럼 보수공사 중이었다. 입구를 찾아 서당과 서원을 살펴보며 한참을 머물렀다. 칠이 벗겨지고 기둥의 나뭇결이 드러난 서원의 건물들은 퇴락했으면서도 고풍스러웠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도산서당 앞에 일본 왕실의 상징이라는 금송이 있다는 것이다. 안내문을 보니 고 박대통령이 심었었다는 것인데, 말라죽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다시 심었다는 것이다. 아산 현충사 충무공 사당..
풍기 금선정 신문쪼가리에서 본 사진 하나가 나를 이곳으로 불러내었다. 지금까지 듣도보도 못했던 금선정이었다. 공돈 얹어준다는 말에 집에 들인 쓰레기 신문은 대부분 읽지도 않고 폐기물로 바뀌는데, 우연스레 펼쳐본 지면에 금선정 사진 하나가 떠억 올라와 있었다. 이름도 생소해서 잘 외워지지 않아 폰 메모장에 적었다. 깜깜한 밤길을 더듬어 풍기까지 내려왔는데, 야밤중에 금선계곡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숙소가 있을만한 풍기온천을 목적지로 전환하여 풍기읍내를 지나다가, 작은 사거리에 파출소가 보여서 차를 몰고 그리로 들어갔다. 야간 순찰을 준비하던 경찰들이 불쑥 들어온 불청객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맞았다. 하룻밤 묵을 숙박업소를 물으니 친절하게 모텔촌을 일러 주었다. 풍기가 작은 고을임에도 도시정비를 잘한 듯 ..
영주 소수서원과 선비촌 부석사에서 나와 소수서원을 목적지로 내려가는데, 도로가에 영주 선비문화수련원이란 입간판이 보였다. 도로 좌측으로 고풍스러운 기와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보기 드문 풍경이라 차를 돌려 주차장에 진입했는데, 때마침 수련원에서 반남박씨종친회를 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 사람들이 이곳에 선비촌과 소수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이 함께 모여 있어 동시에 관람이 가능하다고 했다. 조선 최초 사액서원이라는 소수서원에 들렸다. 주세붕이 세운 서원으로 영남의 선비들이 학문하던 곳이라 그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공교롭게도 서원 내부는 수리공사중이었다. 여러 가지 보수용 구조물들과 접근할 수 없도록 세워놓은 펜스들이 시선을 어지럽혔다. 넓지 않은 서원 안을 둘러보고는 되돌아 나와 연결된 선비촌으..
당진 장고항 가을빛 따라나갔다가 들렸던 당진 장고항. 예전에 이곳에서 배 타고 낚시 나가 한 마리도 못 잡고 동료들이 잡은 우럭 치어 몇 마리로 허기를 달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찾아갔던 어항이었는데 탁한 서해의 바닷물도 구름 많은 하늘도 그저 좋았었다. 놀러 나온 사람들과 수많은 차량들이 방파제 끝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었다. 방파제 낚시꾼들도 많았고, 바다 한가운데 만들어놓은 바다 좌대 낚시터도 이색적이었다. 차후에 낚싯대라도 마련해서 좌대 낚시라도 가봐야 할 것 같다. 방파제에서 돌아본 장고항, 바로 이웃엔 해돋이와 해넘이로 유명한 왜목항이 있다. 바다 좌대 낚시터, 입어료는 2만 원, 배 타고 멀리 나가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안전해 보였다. 좌대 낚시터 너머로 보이는 경기도 화성시 국화도 장고항 활어센터..
솔뫼성지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성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터인 솔뫼성지를 찾았다. 서해 고속도로 송악 IC에서 삽교천 방조제 안쪽으로 평야를 가로질러 솔뫼에 다달았다. 방조제가 생기기 예전에는 바닷가 끝마을이었을 작은 소나무 동산 마을이, 김대건 신부님 덕에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금년 8월 교황의 방문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이곳, 늦게나마 방문하게 되어서 감격스러웠다. 솔뫼는 ‘소나무 산’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흔하디 흔한 송산(松山)이란 지명이다. 이곳에서 1821년 8월 21일 한국 최초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탄생하셨으며 박해를 피해 할아버지 김택현을 따라 용인 한덕동(현 골배마실)으로 이사 갈 때인 일곱 살까지 사셨다. 뿐만 아니라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 김진후(18..
정선 아라리 촌 산 높고 골 깊어 옛날엔 귀양을 가거나 속세를 등진 사람들이 찾던 마을이 이젠 관광명소가 되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5일장이 서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랴만, 정선 5일장이 전통재래시장의 대명사가 된 듯하다. 마치 잘 보존된 민속마을처럼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높은 산등성이와 그 산등성이를 휘어 감아 흐르는 개울 덕에 손바닥만 한 모래톱이 두 곳 생기고, 그곳을 의지하여 정선읍이 들어섰다. 그리고, 장터 가까운 곳인 조양강변에 주차장을 마련하고, 장터 골목에 지붕을 올려 전천후로 장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정선을 처음 찾은 나로서는 이곳 풍경이 아름답다거나 신기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그런, 작은 마을일 뿐이었다. 장날이 아니어서 장거리는 한산했다. 황기, 더덕, 도라지, 곤드레, 취나물 ..
최참판댁 섬진강을 따라 북상하는 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강줄기를 따라 남해에서 남원을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차량이 드물어 여유 있게 주변경치에 탐닉하며 운행할 수 있었다. 섬진강 나루터에 잠시 차를 세우고, 식당에 들렀더니 너무 이른 아침이라 밥 짓는 중이란다. 아침밥이 뜸 드는 시간을 기다리며 나루터 부근을 산책하곤 재첩국을 곁들여 조반을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재첩국맛이 시원하고 구수해서 입맛을 돋구웠다. 악양면을 지날 때 그냥 지나치기가 왠지 미안스러워,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을 들렸다. 수년 전 방문 때와 별 차이는 없어 보였으나, 참판댁 안에 어지럽게 붙은 영화 포스터들이 이곳이 영화의 배경촬영지로 쓰였음을 알려 주었다. 세트장을 짓느니 이곳에서 촬영하는 것이 더 그럴듯한 사..
대부 구봉도 낙조전망대 흐리고 습한 날의 연속이었다. 모처럼 습한 더위 때문에 바닷가 해솔길로 나들이했지만 해솔길 낙조전망대는 작은 야산 위로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산에 오르기 시작했으나, 코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대략 2.9 km여서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고개도 넘고 구봉도 산등성이도 하나 넘었다. 구봉도 앞의 작은 섬까지 다리를 건너 해변으로 나가니 전망대 조형물이 보였다. 왼쪽으로 영흥도, 오른쪽으로는 인천 송도와 영종도가 보이고 앞이 툭 터진 서해가 망망히 있었는데 과연 해 질 녘이면 볼 만하겠다. 한여름 더위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버렸다. 카메라 가방은 왜 그리 무겁던지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간간이 땀을 흘리며 낙조 전망대를 찾는 사람들로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예까..
춘천 추곡약수 추곡약수는 춘천에서 양구가는 길 좌측 골짜기에 있는 유명한 약수이다. 예로부터 익히 들어왔던 터라 진작부터 가보고 싶었다. 양구에서 춘천으로 돌아오다가 이정표를 따라 이 약수터를 찾았다. 약수터 안내문이 있는 계곡 아래 빈터에 차를 세우고, 내려오는 등산객들에게 길을 물으니 계곡의 좁은 포장도로를 따라 150m 정도 오르면, 약수터가 있단다. 골짜기 좌측엔 작은 식당들이 연이어 있었다. 추곡사와 갈라지는 갈림길이 있고 그 갈림길 바로 위에 추곡약수 하탕이 있고, 그 바로 위에 상탕이 있었다. 약수터에 마련된 플라스틱 바가지로 약수를 떠서 한 모금 마시니, 약간 단맛에 탄산수 특유의 톡 쏘는 느낌이 났다. 쇳물맛이 약간 났으나, 설악의 오색이나 정선 화암, 청송의 달기약수보다는 덜 해서 마시기에 큰 거부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