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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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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풍경 5월의 하늘답게 날씨는 청명했으나, 바람이 세게 불어 다소 추웠다. 법흥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요선정에 들렸다. 개울의 돌모양이 특이해서 주변에 암자와 정자가 있고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단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길을 따라 수 백 m 올라가니 작은 암자가 나타났는데, 그곳이 요선암이란다.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겨 요선정으로 가는데, 산비탈 아래 개울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사진으로 익히 보아온 요선개울이었다. 깎아지른 비탈을 조심해서 내려가 둥글고 움푹 파인 바위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쉬었다. 물살에 파여나간 기이한 돌모양이 예사롭지 않았다. 산길을 더 오르면 요선정이 있다는데, 정자는 보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다. 요선암은 일반 주택을 암자로 사용하는 듯, 절집형상이..
공세리 성당 모처럼 푸른 하늘이었다. 나른한 봄기운이 대지를 감싸 이른 여름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성당으로 오르는 언덕에 봄꽃들이 만개하였다. 나뭇잎들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따뜻한 봄날씨에 찾아온 내방객들로 성당 안팍이 붐볐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산만 야트막한 동산 언덕에서 봄 한 때를 보냈다. 32인의 순교자들을 모신 공세리 성당. 금년 8월에 교황께서 우리 나라를 방문하시고, 이 땅의 순교자들을 위해 인근의 해미읍성까지 찾으신다니, 공세리 성당측에서도 뜻 깊은 일이다 싶다. 순교자들을 모신 뜰 옆에 박물관이 있었는데, 안에 들어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멋모르고 몇 컷 찍고서 나오려는데 문앞에 사진촬영금지 푯말이 붙어 있었다. 조심해서 후레쉬 발광 없이 찍기는 했지만 공연히 나홀로 민망해지고 말았다. 내..
만리포 해변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변, 겨울바람에 인적도 끊긴 해변에 모래뻘도 휑하니 텅비어 있었다. 모래사장엔 물결이 만들어 낸 무늬들이 일정하게 잔 무늬를 파 놓았다.
안면도 꽃지해변 미국 CNN이 선정했다는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 하나인 태안 안면도 꽃지해변. 미세먼지 예보 속에 흐린 날씨때문에 시계가 좋지않았다. 게다가 차가운 겨울바람때문에 추워서 해변에 오래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물이 쭉 빠져나간 상태여서 해변은 더욱 넓고 넓었다. 대천이나 만리포 해변이 넓은 줄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일 성 싶었다. 리조트를 지나 해변 끝까지 승용차로 달려 가보았다. 해변의 끝은 실로 아득하여 넓고도 멀었다. 해변 전체가 서해 해변의 특징 그대로 밋밋한 경사로, 어린아이들의 안전한 해수욕으로 알맞은 천혜의 해수욕장일 듯 싶었다. 할미 바위와 할아비 바위
고군산군도 몇 년 전, 새만금방조제로 육지가 된 신시도 대각산에 올라 지척의 고군산군도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확성기로 유행가를 틀며 선유도를 맴도는 유람선들을 보면서, 그곳에 가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신선이 놀다갔다는 선유도. 그 때, 대각산에서 바라본 선유도는 불쑥 솟은 바위산봉우리 두 개가 햇빛에 반짝거리고 섬사이를 잇는 다리들이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고 있어서, 동화 속 세계처럼 너무 아름다워 보였었다. 선유도를 가기 위해 군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렸으나, 버스 시간을 알 수 없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모두 모른단다. 어쩔 수없어 막 정차한 시내버스 기사분에게 물었다. 한참을 장고한 끝에 그 기사님이 환승지까지 데려다 준다며 타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번에 갈 수 있는 7번 ..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에서 나와 한옥마을을 둘러보며 언덕에 있는 오목대에 올랐다. 한옥마을이 유명해서인지 관광객들이 많았다. 큰 길거리의 한옥들은 주로 음식점이나 까페들이어서 어쩌면 한옥마을보다 한옥상점가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먹고 마시는 곳보다 전통문화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더 바람직할 것이란 생각도 내심 해보았는데, 어쨋거나 도심지에 한옥거리가 이렇게 형성되어 있는 곳이 이곳이 유일한 곳이고보면, 대단한 볼거리였다. 오목대 오목대 : 경기전에서 약 동남쪽으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언덕의 정상은 평평하고, 그 아래에는 전주천, 한옥 마을, 한벽루(寒碧樓), 전통문화센터 등이 있다. 정상은 1380년(고려 우왕 6)에 남원의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이성계(李成桂,..
전주 경기전(慶基殿)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땐 저녁 무렵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아쉬움이 컷었기에 들뜬 마음으로 경내로 들어섰다. 입장료는 1000원, 홍살문 안쪽으로 행사용 무대를 만들고 있어 움직이는 일손들이 매우 바빠보였다. 생각보다 넓은 경내에 볼거리들이 많아서 오랫동안 머물렀었다. 숲이 우거지고, 앉아서 쉴 곳이 많아서, 바쁜 일상 속에 머리를 식히기로 최적의 장소인 듯 싶었다. 전주는 전주이씨의 관향이다. 조선왕조가 전주를 성역화 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그런 까닭으로 경사스런 터란 뜻의 경기전을 조성하여 태조의 어진을 모셨다. 그뿐만 아니라 전주이씨 시조인 이한공의 조경묘를 세우고 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도 만들어 왕조의 정신적 기반을 이곳에 두었다. 풍문에 의하면 북한 김일성이 전주김씨인데, 그의 시조묘가 ..
민통선 주변 풍경 1. 도피안사 철원군 민통선 가까이 있는 절로 국보인 철제 비로자나불이 있는 곳이다. 통일신라 시대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철제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현재 부처님 모신 절집은 그터에 새로 짓는 중이었다. 수년 전 이 절에 금개구리가 나와 메스컴에 보도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도피안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1,500여 명의 향도들과 함께 철불을 조성하고 안치하기 위하여 만든 절이다. 철원은 한국전쟁 때 격전지로 본래의 도피안사도 그때 소실되었다. 이후 철불이 발견되고 절이 새로 지어지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제15사단장인 이명재 장군의 꿈에 불상이 나타나 땅속에 묻혀 있어 답답하다 하였다고 한다. 다음날 전방시찰을 나갔다 꿈에 나왔던 사람을 보고는 안내를 받아 찾아간 곳이 도피안사로 장병들을 시켜 이곳을 수색..
철원 한탄강 한탄강은 북한지역인 금강산 아래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철원군과 경기도 연천군을 지나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 136㎞에 이른다. 평강군의 추가령곡 동쪽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면서 평강과 철원으로 남류하고 연천군과 포천군의 경계를 따라 남서류하다가 미산면과 전곡면의 경계에서 임진강으로 흘러든다. 휴전선을 관통하여 북에서 남으로 흐르기 때문에 남북 분단의 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강이기도 하다. 한탄(漢灘)이란 ‘한여울’ 곧 '큰 여울'이란 뜻인데, 한자 의미로 표현하다 보니, 남북분단과 관련지어 '한과 탄식'이라는 한탄(恨歎)으로 의미로 해석되어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평강과 철원지방은 추가령 지구대로 화산의 폭발로 용암이 흘러 수직절벽과 협곡을 이룬 곳으로 이곳에 강물이 흘러 임진..
신철원 삼부연 폭포 가을비는 추적추적 하염없이 내렸다. 한탄강으로 가는 길에 잠깐 차머리를 돌려 신철원 용화산 삼부연 폭포를 보러 갔다. 골짜기를 관통하는 아스팔트 차도 옆 공간에 차를 세우고 전망계단으로 내려가 우리나라 내륙에서 보기힘들 정도로 제법 우람한 삼부연폭포를 몇 장 촬영했다. 이젠 많이 알려졌는지 유명세를 타는 모양으로 저물 무렵임에도 내방객들이 끊이지 않고 이곳을 찾고 있었다. 폭포가 있을 곳 같지도 않은 골짜기 움푹 파인 구덩이에 높이 20여 m의 폭포수가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데, 세 번을 꺾여 가마솥 같이 생긴 웅덩이에 떨어진다 . 가마솥같은 웅덩이가 셋이라고해서 삼부연이라는 이름하였단다. 이 3 개의 웅덩이는 각각 노귀탕·솥탕·가마탕이라고 부르며, 후삼국시대에 이무기 4마리가 도를 닦고 살다가 그 중 ..
산정호수 가을비가 간간히 뿌리는 유원지는 그야말로 파장무렵 시골장터와 같았다. 강원도 철원의 명성산 아래 저수지로 아름다운 산세와 어울리는 포천의 산정호수는 그야말로 흥청거리는 유원지였다. 만차로 더이상 들어갈 곳 없는 주차장, 이곳저곳 어지럽게 주차한 차들을 헤집고 간신히 한 자리 차지했으나 호수 주변의 풍경은 내리는 비때문에 을씨년스러웠다. 호숫가 조각공원에 들어서자, 위락시설에서 뿜어내는 요란한 노랫소리가 빗방울에 산란되어 낙엽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고즈넉한 풍광을 감상하겠다던 생각은 엄청난 오산이었다. 그저 떼로 몰려와 어울려 먹고 취하고 떠들고 고성방가하며 일상의 무게를 방출하는 일탈의 공간같아서 내 기분은 스산하게 뿌리는 가을비처럼 구겨져 내렸다. 왕건의 쿠테타때문에 궁예가 이 산으로 내쫓겨 태봉국의 ..
문경새재 충북의 수안보온천마을에서 문경새재로 가는 길에 길을 잘못들어 찾은 곳이 새재 아래 조령산 휴양림근처였다. 새재가는 찻길이 중간에 끊겨 길가에 세워두고 20여분을 조령산 임도를 따라 올라갔더니 제3관문인 조령관이 나타났다. 조령관을 통과하기전, 충북쪽엔 관리가 제대로 되지않아 잡풀이 우거지고, 폭우에 깎여나간 고랑들이 널려 있었다. 조령관을 통과해서 새재를 넘어가니 경북 문경지방이었는데, 공원정리가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다. 아마도 새제 1관문부터 예까지 올라오는 관광객들이 많은 탓일 게라고 생각해 보았으나, 충북 사람들의 무관심이 지나친 듯 싶었다. 문경새재 3관문 가는 길목의 조령산 자연 휴양림(충북 괴산군) 충북 괴산군 쪽에 있는 새재 기념비 충북 괴산에서 경북 문경으로 넘어가는 제 3관문인 조령관으..
최고의 별장마을 화진포 화진포는 남한의 동북단에 위치한 최고의 휴양지이다. 맑고 넓은 호수와 고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해변에 푸른 바다가 망망한 하늘을 품고있는 천혜의 해수욕장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일제 강점기엔 총독부 관리들과 서양 선교사들의 별장들이 있었고, 해방후 인공치하에서는 김일성 별장이, 한국전쟁 이후 수복되어선 당대의 최고의 권력가였던 이기붕과 이승만 별장이 화진포에 있다. 휴전선 부근이라 군작전지역으로 이 지역이 대부분 통제되었으나, 이제 일반인들에게 모두 공개하고 있었다. 작년에 이곳에 왔을 때만해도 이승만 전대통령 별장은 공개하지 않았는데, 이번 방문 때 이들의 별장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주변 환경과는 너무나 달리 우리나라의 얼룩진 역사가 배어 있는 곳이었다. 별장의 주인공들은 해방된 조..
속초 아바이 마을 속초를 지나는 길에 아바이 마을을 찾았다. 네비게이션에 나타난 아바이 마을은 두 군데여서, 첫번 째 아바이마을에 들렸더니, 소문으로 듣던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근처 주민들에게 물으니, 다시 되돌아가서 다리를 건너 오른족으로 나가란다. 그러고 보니 다리 건너 바닷가에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다시 네비게이션을 의지하여 아바이마을을 찾았다. 아바이 마을은 이제 유명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다리가 없었던 시절엔 유일한 교통로가 갯배였는데, 그 갯배도 이젠 유명한 관광상품이 되었나 보다. 한참 걸려 차를 세우고, 아바이 마을 가운데로 들어가니,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아바이 상인들의 호객소리가 요란했다. 주메뉴는 아바이 순대와 오징어 순대, 그리고 생선구이였는데, 아바이 순대는 돼지 소장에 양념한고기와 채..
오죽헌과 김시습 기념관 1. 오죽헌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이순신 장군, 퇴계이황,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이 화폐의 주인공들인데, 놀랍게도 이율곡과 신사임당은 母子관계인데도 우리나라 화폐의 중심인물로 등장했다. 일찍이 퇴계와 율곡이 각각 1000원과 5000원 지폐 속의 인물로 쓰였고, 여성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조선시대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사임당 신씨를 선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계의 대표적 인물로 류관순 열사와 신사임당이 최종 결선에 들었으나 결국 신사임당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신사임당도 좋겠지만 한 집안의 어머니와 아들을 한 나라 화폐의 인물들로 선정한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선 성리학의 쌍두마차라는 율곡과 퇴계를 모르는 ..
강릉 선교장과 경포대 오죽헌에서 경포 가는 옛길가에 동해를 등지고 남서쪽을 향해 앉은 조선의 전형적인 사대부집인 선교장, 그동안 강릉을 수십 번 드나들었어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마 전 강호동의 1박 2일에 소개되어 관심 있게 봤었다. 그때 선교장 행랑채에서 동남아 산업 연수생을 그 어머니와 만나게 하는 장면이 인상에 깊었었다. 그 덕에 선교장이 조선시대의 전통여관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여관이 아니라 지체 높은 사대부의 집이었단다. 개인의 사유재산이라 지금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일반관람과 숙박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일반 관람 요금은 성인 1인당 3000원인데, 이 선교장(船橋莊)이 오는 16일부터 무기한으로 휴관한단다. 선교장 측은 최근 강원도의 예비사회적기업 지원 공모사업과 관련해 강원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등 의견..
대관령 국사성황사와 산신당 선자령에서 내려와 선자령 올라갈 때 들었던 굿소리가 궁금해서 국사성황사로 차를 몰았다. 대관령에서 북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산속까지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우거진 산림 속에 대관사와 성황사, 산신당이 있었다. 때마침 강릉단오제 전날이라 단오제가 시작되는 대관령 성황사와 산신당의 행사가 기대되었으나 별다른 풍물은 보지 못했다. 함박꽃, 또는 산목단, 북한의 국화란다. 성황사 위에 있는 대관사. 단촐한 외건물이었다. 지붕도 전통기와가 아닌 플라스틱 개량기와였다. 유서깊은 곳의 절로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관령서낭당은 대관령산신당 서쪽 약 30m 거리에 있다. 사당은 건평 5평 정도의 기와집이다. 내부 정면 벽에는 국사서낭 신상이 걸려 있다. 현재의 당우는 1944년에 중..
정읍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정읍역을 지나 고창으로 가던 도중에 이정표에 나타난 길이름이 동학로여서,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검색하여 찾아들었다. 황토현은 1894년 갑오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이 최초로 관군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 곳이다. 이곳에 전봉준 장군의 사당과 동상을 세우고 전적비와 기념관을 건립하여 동학 정신을 기리며 오늘에 전하고 있었다. 넓은 대지 위에 2004년 건립한 기념관에는 동학혁명에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들과 동학혁명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었다. 1층의 자료실에 이어 원형 통로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원형 전시장에는, 동학 관련 대형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좌우의 전시장에는 전투 장면을 미니츄어로 유리 바닥 아래 재현하는 등, 어러 가지 볼거리들을 전시해 놓았다. 기념관 맞은편에 전봉준 장군의 사당..
고창 청보리밭 예로부터 여름철 서민들의 주식이었던 보리가 이처럼 관상용으로 들판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함께 격세지감을 느꼈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세상의 고개 중에 보리고개가 제일로 넘기 힘든 고개라고 했다. 60년대엔 부족한 쌀때문에 베트남 등지에서 수입해서 배급해주기도 했었다. 알랑미(안남미-안남 :베트남)라고 길쭉길쭉한 것이 찰기가 전혀없는 동남아시아 쌀을 동사무소에서 줄서서 타다 머기도 했었다. 푸른 보리밭을 바라보며 그 보리가 누렇게 익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주린 배를 달랬던 것이 엊그제 같다. 동남 아시아 여행길에서 어쩌다 먹게되는, 찰기없이 흩어지는 쌀밥들에 배고팠던 옛시절이 떠오르곤 했었다. 한 때 유난히도 무채색으로 삭막한 겨울철의 도시미관을 위해 길거리 대형화분에 보리를 심어 싱그러운 보리의 ..
안산 최용신 기념관 두 번 째 방문, 처음 왔을 때보다 감동이 줄었다. 안산에 왔다가 가는 길에 들렸기 때문일까. 처음 방문 때는 물어물어 이곳을 찾았었다.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단지 상록수역 부근에 청석골 교회와 최용신의 무덤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기에 그 묘라도 한 번 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상록수 소설 속의 청석골은 안산 샘골(泉谷里)이다.) 최용신의 묘는 공동 묘지에 있었는데, 안산이 개발되면서 이곳으로 이장하였고, 이 자리에 기념관과 상록수 공원이 조성되었다. 고인은 양지바른 곳에서 그녀의 약혼자였던 김학준과 사이좋게 누워있었다. 농촌 운동가였던 선생의 묘비엔 농촌사업가로 적혀 있다. 최용신 기념관 정면- 1층이 기념관이고 2층은 샘골강습소로 꾸며져 있다. 입구 출입문 옆의 최용신 부조 기념관 내부에서..
동묘(2) 그동안 날씨가 풀렸다. 따스한 봄볕에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묘목을 사러 외출을 했다. 따뜻한 햇살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하릴없이 봄볕을 쬐며 사람들을 구경하며 동묘에 들려 잠시 쉬었다가 황학동에서 청계천을 따라 종로까지 걸었다. 종로 묘목상에서 그동안 별렀던 감나무 묘목과 장미를 샀다. 며칠 전부터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다 미루고 있었는데 드디어 접붙인 묘목 두 그루를 사서 비닐봉지에 넣고 집에 와 화분에 곱게 옮겨 심었다. 심을 곳도 없으면서 감나무 욕심에 화분에 심었는데 잘 자랄지 모르겠다. 올봄엔 감꽃을 볼 수 있을지 자못 기대감이 크다. 동묘 정문 입구의 동묘 안내도 중문 동묘 정면 동묘 좌측면 내부의 관우상
안성 미리내 성지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달리 날씨는 맑았다. 햇볕이 따뜻해서 나선 나들이였으나, 하늘엔 점차 구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미리내 성지에 도착했을 땐 구름 가득 흐린 날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바람은 세상에 가득하여 메마른 나뭇가지 끝에도 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때마침 성지를 방문한 순례자들의 발걸음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맑고 청명한 공기를 호흡하며 경내를 산책하며 봄기운을 호흡하였다.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물도 그리 차지 않았다. 봄기운이 오른 들녘엔 봄맞이 준비를 하려는 농부들의 기지개가 한창이었다. 103 시성 기념 성당 성 김대건 신부님 경당 잔디광장에서 바라 본 103위 시성 기념 성당과 성 김대건 신부님 경당
황학동 벼룩시장 신당동 전철역을 나오자마자 길바닥 좌판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크고 작은 공구들부터, 시계, 인형, 장신구, 구제 의류 등등이 도로를 따라 길거리에 널려 있었다. 에전에 종로 거리에서 봐왔던 노점상들이 이리로 다 모였나 보다. 한두 점을 깔아놓고 추운 날씨에도 임자를 기다리다 지쳤는지 쭈그리고 앉아 졸고 있는 상인부터 높은데에 올라가 큰소리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까지 참으로 각양각색이었다. 아마도 구하지 못할 물건이 없으리라 싶었다. 해병대, 공수부대, 육군 군복부터 그럴싸한 동양화, 서양화, CD, 캠코더 필름, 정력제, LED TV, 라디오, 카셑, 차량용 오디오, 썬그라스 등등등... 필카에서 디카까지, 수북히 쌓아놓은 핸드폰, 핸드폰 밧데리, 고장난 것부터 사용가능한 것들까지... 진열장 속에 눈에..
화성공룡화석산지 1994년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시화호 방조제 공사로 바다에서 육지가 되자, 1999년 발견된 공룡알 화석산지는 2000년 3월 21일 천연기념물 제414호로 지정되었다. 약 1억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공룡들의 집단 서식지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12개 지점에서 30여 개의 알둥지와 200여 개의 알화석이 발견되었고 흔적화석도 다수 발견되었다. 특히 2008년 5월 30일 화성시 전곡항 방조제에서 발견된 화성공룡화석은 한반도 최초로 발견된 뿔공룡으로 새로운 속과 종인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화성에서 발견된 한국 각룡류 공룡이란 뜻)로 명명되었다. 이 공룡은 중생대 백악기(약 1억 1000만 년 전) 때 한반도에 살았으며, 전체 길이는 2~3m로 추정된다. 이족보행에서 출발해 완전한 사족보행으로 진화과정..
경주 여행 천년 신라의 수도 경주, 도처가 유적지이니 경주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만하다. 이곳저곳 산재해 있는 왕릉들을 제외하고 기억에 남았던 유적들을 찾아보기로 했는데, 탈해왕릉은 포항에서 경주로 들어오는 길에 있어서 길가의 안내판을 보고 찾아들었다. 전설로 전하는 석탈해왕의 무덤이 현존한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탈해왕릉 위에는 경주이씨 시조가 태어났다는 표암이 있었고, 그 아래엔 시조 알평공 경모비와 사당이 있어 신비로움을 더했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관람하고 보문단지에서 1박 후 아침식사까지 마치고, 경주시내로 나왔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으나, 예전에 갔었던 김유신 장군 묘와 첨성대가 생각이 나서 그리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우연히 탈해왕릉처럼 이정표를 보고 분황사에 들렸다. 분황사는 내 생..
포항 호미곶 날씨가 썩 좋지 않아 햇살이 들쭉날쭉 했다. 덕구온천에서 1박한 후 호미곶으로 줄곧 달려왔다. 포항 영일만의 끝자락으로 한반도의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고 이곳이 그 꼬리부분에 해당된다고 해서 2001년 12월부터 호미곶이라 이름하였다. 원래 생김새가 말갈기와 같다 하여 장기곶으로 불렸다. 1918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표현인 갑으로 고쳐 장기갑으로 불리다가 1995년 장기곶으로 변경하여 불렸다. 최근 이곳은 새해 첫날 해맞이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수년 전 방문한 적이 있어서 큰 감동은 없었으나, 광활한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은 되었다. 그 사이 도로도 확충되었고, 해맞이 데크도 새로 만들어져 보다 세련되어 있었다. 1. 포항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상생의 손 2. 연오랑 세오녀 상 3..
동해 추암 촛대바위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어디 한둘이겠는가마는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와 해풍을 맞으며 꿋꿋한 세월을 버텨온 촛대바위 같을까 TV 애국가 첫머리에 등장하기도 했던 추암의 일출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일출은 보지 못하고 배고픈 철새처럼 잠시 들려 풍경을 맛보았다. 손님맞이 행사인지 해풍이 세차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여서 방한 마스크에 귀마개까지 착용하고 추암에 나갔다. 추운 날씨임에도 추암을 보러 나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나도 그 틈에 섞여 추암에 올라 한 바퀴 비잉 돌아 나왔다. 바람이 세차 맞바람에 눈물이 나서, 들여다 보는 파인다로 초점잡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추암을 돌아 삼척 임해정방향으로 해변을 걸어갔다. 그쪽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아름다워서 뒷바람에 밀려 인적도 없는 해변 끝머리..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해금강에서 귀로길에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들렸다.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 국군과 연합군에게 포로로 잡힌 공산군들을 수용하던 대표적 수용소로 귀 따갑도록 들어왔던 곳이기에 호기심이 많았었다. 특히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많이 들었던 것처럼 포로들이 수용소 내에서 극도의 이념투쟁으로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반공포로들을 살상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어서, 그 흔적들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잘 꾸며진 공원 부지에 순회하며 관람할 수 있도록 각종 전시관들을 설치하여 이해를 돕고 있었는데, 그 구성물들이 조악하여 현대적 관점으로 유치한 수준이어서 실망감이 컸다. 유적공원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조차도 딱히 찍을 거리가 없었다. 6·25 전쟁 중 유엔군과 한국군이 사로잡은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