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214)
정선 둘러보기 정선 아리랑만큼 구성진 것이 있을까. 첩첩산골에 묻혀 사는 것도 한스러운데, 남자에게 버림까지 받고 화전을 일구며 사는 여인네의 서러움과 외롬은 얼마나 클 것인가. 정선 아리랑은 그런 여인들의 고독과 슬픔이 그대로 녹아 한이 서린 아리랑이다. 우리 대표적인 아리랑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버림받은 여인이 떠나는 남자에게 "십리도 못 가서 병이 나고 말 것"이라고 저주하는 한의 노래가 아니던가. 저주의 역설로 떠나는 임을 붙잡기 위한 엄포일 수도 있지만... 인간세상에서 믿고 사랑하며 의지하던 사람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은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이다. 그것은 구절양장이 녹아나는 아픔이며, 참기 어렵도록 피눈물 나는 한이다. 또한,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 특유의 한의 정서로 피지배층의 아픔이며 사회적 강자보다 약..
정선 화암동굴 정선읍에서 사북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화암동굴. 25-6년 전에 가본 적이 있어서 지나치려다, 옛날의 추억을 돌이켜 볼 심산으로 찾았는데, 옛날과 딴 판이 되어 있었다. 예전에 없던 넓은 주차장에 모노레일까지 설치되었는데, 예전엔 조금 걸어 올라갔었던 기억이어서 몹시 의아했다. 모노레일과 동굴입장료는 따로 받았다. 우리는 운동도 할 겸, 동굴입구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러나, 입구로 생각했던 곳이 출구였고, 출구에서 입구까지는 길이 꺾여서 갈지자 구부러진 언덕을 1.5km 정도 올라가는 것이었다. 길이 굽고 가팔라 그리 쉽지 않았다. 예전과 다른 기억 때문에 동굴 입구 매표소에서 그 사연을 직원에게 물었더니 아래 출구가 예전의 입구였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공개했던 동굴은 천연동굴로 종유석이 있는 곳..
삼척 죽서루 "眞株館(진쥬관) 竹西樓(듁셔루) 五十川(오십쳔) 내린 믈이, 太白山(태백산) 그림재를 東海(동해)로 다마 가니, 찰하리 漢江(한강)의 木覓(목멱)의 다히고져. 王程(왕뎡)이 有限(유한)하고 風景(풍경)이 못 슬믜니, 幽懷(유회)도 하도 할샤, 客愁(객수)도 둘 듸 업다. 仙槎(션사)를 띄워 내여 斗牛(두우)로 向(향)하살가,仙人(션인)을 찾으려 丹穴(단혈)의 머므살가." 조선 선조시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 죽서루를 노래한 구절이다. 그 때문에 삼척하면 죽서루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태백산 준령의 냇물이 흐르고 흘러 동해로 들어가기 직전, 크게 휘어진 한 구비 벼랑 위에 아름다운 누각을 지었다. 그 누각에서 대자연을 바라보며 풍경과 시를 즐겼던 선인들의 혜안과 풍류가 참으로 대단하다. 더우기 자연을 ..
동해 추암 바닷가 바위 하나가 관광명소인 추암. 바늘처럼 뾰족하게 서있는 바위 하나가 주변 마을 사람들의 생업을 돕는 엄청난 혜택이다. 바위하나만이 뎅그라니 서있는 풍경은 아니지만, 풍화와 침식으로 바위산에서 떨어져 나가 온몸에 금이 간 모습으로, 꼿꼿이 선 추암은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은다. 몇 번을 보고 찾아온 곳이지만, 질리지 않고 새로운 감흥을 준다. 동해의 해안선 따라 개발붐이 불어 추암해변마을도 재개발을 하려는 듯, 오밀조밀하던 재래식 집들이 한두 집만 남겨두고 모두 사라졌다. 조금 아래 삼척해안 벼랑 위에도 호텔로 보이는 커다란 빌딩이 신축되고 있었다. 길이 없어 아쉽게 생각했던 추암해변과 삼척의 수로부인 공원 사이 벼랑에도 길을 잇는 계단공사를 하고 있었다. 동산과 바위는 변함이 없건만, 바..
눈 시린 동해바닷가, 정동진역 오랜만에 들렸던 정동진역, 6-70년대 여름엔 이곳 정동진 바다에서 물장구치며 수경 하나 쓰고 작살로 노래미나 뱀장어 좀 쏘며 자랐다. 주민들은 뱀장어는 징그럽다고 잡지도 않았지만 날래게 도망다니는 노래미는 쏘기 힘들었고, 수초 속에서 웅크리고 가만히 앉아있는 뱀장어는 아주 잡기 쉬운 표적이었었다. 정동진 뒷마을 산성우리의 탄광들은 한 달에 두 번을 쉬었는데, 쉬는 날이면 광부들과 그 가족들이 정동진 해변으로 놀러 나와 모래사장에 솥을 걸고 섶이랑 미역이랑 함께 넣어 국수도 삶고, 가져온 초고추장 도시락을 펼쳐 놓고 작살로 찔러내온 노래미를 안주삼아 됫병들이 막소주로 피로를 풀던 곳이었다. 시골의 작은 해변 마을과 동해의 푸른 물이 간이역과 맞닿아 있던 조용하고 예뻤던 정동진이었다. 80년대 들어서 드라..
주문진 친구와 함께 묵었던 숙소. 강원도 교직원 연수원인데, 모양이 예쁘고 깔끔했다. 친구덕에 나발분 격이 되었다. 연수원 솔밭 뒤는 푸르런 동해 바다, 태평양이었다. 날씨만 춥지 않았다면 좋았을 걸. 여름철이라면 대박이겠다. 숙소와 가까운 거리에 경치가 예쁜 소돌해변과 물고기가 많은 주문진 어항이 있어서 좋았다. 어항과 마트에서 구입해 온 식재료로 식사하며 따뜻하고 쾌적한 연수원에서 지냈다. 동해의 맑고 푸른 물과 해변을 따라 곧게 쭉 뻗은 도로, 깨끗하게 단장된 주변의 시설들이 보기에 좋았다. 춥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나갔던 동해안 바다여행은 즐겁고 재미있었다. 연수원 밖 기차 카페 동해 바다 삼각파도, 백두파였다. 파도의 머리가 앞으로 꺾여 바람에 날리면서 해안으로 몰려왔다. 바람에 날리는 파..
속초 아바이 마을 추운 날씨에 이곳저곳 돌아다니지 못하고 점심을 먹을겸 들렸던 아바이 마을, 몇년전 들렸을 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다만 주차장 앞에 아바이 동상이 하나 더 서있을 뿐이었다.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골목 안에서 추운 날씨에 몸을 꽁꽁 감싼 채 호객하는 아주머니 따라 들어가 차가운 몸을 잠시 녹였다. 아침이 늦은 탓에 간단한 모듬 순대와 막걸리 한 병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모듬 순대(소) 20000원. 아바이 순대, 오징어 순대, 가자미 식혜가 주메뉴. 순대는 깻잎 장아찌에 쌈싸서 먹으라는데, 장아찌가 너무 짰다. 집집마다 대동소이한 메뉴... 뭔가 특색있는 상품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음식값은 주문진보다는 다소 더한 것 같았고... 관광지는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제맛인데 너무 추워서 나다니는 사람들이 ..
겨울바다 소돌해변 하필이면 따뜻하고 포근했던 날들을 두고 여행길에 나섰을까. 영동으로 가는 길에 문막 부근에서부터 눈이 날리더니 대관령을 넘을 때까지 눈발이 계속되었다. 간간이 염화칼슘을 뿌리는 트럭을 만나 모래처럼 부딪히는 소금세례를 통째로 받기도 했다. 비상등을 켜며 눈길 속을 조심스레 달리는 차량들과 어울려 대관령을 넘자, 날씨는 변덕스럽게도 쾌청한 하늘을 보여주었다. 이 작은 나라에서 고개 하나 차이에 그토록 다른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푸른 하늘이어서 상쾌하긴 했으나, 매서운 바람이 매몰차게 불어 해변가에 서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바다엔 산맥 서편에서 불어대는 강풍에 맞서 동해로부터 사나운 백두파가 성난 독사처럼 하얀 머리를 빳빳이 들고 해안으로 몰려들었다. 파도의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서거차도 가을 6 가을이라서인지 낚시 넣기가 바쁘게 고기들이 낚시를 물고 줄줄이 달려 나왔다. 미끼 갈아끼기가 바쁠 정도였다. 오후 서너 시쯤에 한 시간 정도 낚시를 하면 10여 수 정도는 기본이었다. 자잘한 새끼들까지 합치면 20여 수는 문제도 아니었다. 초보낚시쟁이라 원투낚시를 주로 했으나, 갯바위에서 멀리 던지지 않고 주로 갯바위 끝에서 낚싯대 길이만큼의 바다에 선상낚시처럼 추를 바닥에 두드리듯 상하로 움직이며 낚았는데, 손맛이 아주 좋았다. 이따금 해초나 바위에 낚시가 걸려 끊기기도 했지만, 낚싯대를 통해 전해오는 물고기들의 힘센 저항이 매우 짜릿했다. 중간 크기의 노래미나 우럭은 시도 때도 없이 잡혀서 아침저녁 조림반찬으로 민생고를 해결해 주었다. 낚시 중 압권은 50cm가 넘는 광어를 낚은 것이었다. 서거차도 ..
서거차도 가을 5 오전엔 이슬을 털며 윗말 상수도원인 저수지 위쪽 산을 오르려 했으나, 반 길을 넘는 잡초들이 뒤엉켜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옛날 같으면 주민들이 땔감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산에 오르며 길을 내었을 텐데, 기름이나 전기로 난방하는 현대생활에서는 가을산이 주는 혜택은 별로 없었다. 봄철이라면 고사리 같은 산나물채취를 위해서라도 산에 오르내릴 텐데... 아쉬운 마음으로 되돌아와, 며칠 전 올랐던 섬의 동복 쪽으로 가서, 서쪽 방향으로 오르기로 했다. 애석하게도 이곳엔 애시당초 산길조차 없었다. 다행히도 북쪽 해안선을 끼고도는 산벼랑만이 거센 해풍 때문에 나무들이 없었다. 나무들이 없는 길도 없는 벼랑가로 조심스레 산에 올랐다. 갈대들이나 작은 잡목 사이로 수많은 거미줄을 만났다. 생존의 치열함은 사람이 살 수..
서거차도 가을 4 가을은 참으로 쓸쓸한 계절이다. 날마다 뚜렷이 줄어드는 낮 길이에 비례하여 날씨도 조금씩 쌀쌀해진다. 한반도 서남쪽 먼바다 섬인 이곳의 가을은 더욱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찬바람이 일면서 몸도 마음도 움츠려드는데, 섬 가장자리에 무성한 갈대들이 바람에 흐느적거리며 눈부시게 하얀 꽃잎들을 나부낀다. 떠오르는 햇살이나 섬 뒤로 떨어지는 낙조에, 때로는 물고기 비늘처럼, 또는 부서져 반짝이는 파도처럼 갈대꽃잎들이 물결져 출렁인다. 섬 동쪽으로 낚시를 나갔다. 서거차도와 상죽도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나갔는데, 물이 들어오고 빠져나갈 땐 물흐름이 장난이 아니었다. 홍수져서 범람하는 큰 강의 물결처럼 힘차게 동쪽으로 빠져나가기도 하고 서쪽으로 밀물져 탕탕히 몰려들기도 했다. 물때만큼 복잡한 것이 있을까? 내륙인으로..
서거차도 가을 3 밤새 거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아침에 창문을 여니 빗방울이 들이쳤다. 먼 바다 파랑주의보가 발령되었단다. 오늘부터 배가 뜨지 못한다. 이제 이 섬은 들어오는 배도 나가는 배도 없는 고립무원의 섬이 되는 것이다. 진도항과 가까운 조도까지는 배가 운행한다는데, 이곳은 먼 바다라 보니 내륙과 교통이 단절된 섬이 되고 말았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성글어질 때, 바다구경에 나섰다. 두터운 파카를 뒤집어 쓰고 밖에 나가니 비는 그쳤으나, 서북풍이 세차게 불었다. 이따금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방파제로 나가는 몸이 휘청거리기도 했다. 바람 소리가 하도 웅장해서 조금 공포스러운 분위기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바다에 나갈 때는 혼자 가지 않는단다. 행여 바닷가에서 낙상하거나 파도에 휩쓸리게 되면 도와..
서거차도 가을 2 오전 10시쯤 서거차 동북 끝, 산능선을 걸었다. 지난 봄에 날씨가 좋지 않아서 다시 올랐는데, 이번 역시 해무가 살짝 끼어 시계는 쾌청하지 않았다. 더구나 역광이라 부담은 있었지만 이만한 날씨도 보장받기 힘들 것 같았다. 다행히 가을철이라 무성했던 풀들이 말라붙어 길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적도 없는 길을 씽씽 불어오는 해풍을 벗 삼아 가파른 비탈길과 수십 길 벼랑길을 걷노라니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라 곳곳에 거미줄이 무성했다. 잡목가지들과 거미줄들을 헤치며, 동북 끝단까지 나아가 동북쪽 바다와 다도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면소재지인 조도와 관매도, 세월호의 슬픔을 안은 병풍도와 서쪽 끝의 맹골도까지 두루 바라보이는 풍경이 참으로 서글프면서도 고왔다. 서거차도 ..
서거차도 가을 1 야간열차로 새벽 4시 20분 목포역에 내렸다. 차창밖으로 아무런 풍경도 보이지 않는 밤기차여행은 무료하기 그지없었다. 무거운 배낭 때문에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어, 열차의자에 몸을 붙이고 졸아가며 간간 차창밖의 어둠을 바라보곤 했었다. 차창밖으론 지난 세월들이 불빛처럼 번지며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목포역 도착 시각이 너무 일러 대합실에서 시외버스터미널을 검색했으나 초행인 데다 어둠 속이라 방향을 몰라 당황하기도 했었다. 생각 끝에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걸었지만 보행자용으로는 젬병이었다. 알량한 내비 때문에 목포역 부근에서 20여분을 허비했으나 여전히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는 새벽이었다. 생각 끝에 지도검색으로 길 찾기를 해놓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이른 새벽 목포역 앞에서 청소를 하던 미화원에게 터..
구례포 캠핑 20년도 더 지난 낡은 캠핑도구를 꺼내 들고, 얼마 전에 봐두었던 구례포 해변으로 갔다. 밤공기가 차가워 추울까 봐 두꺼운 오리털 침낭과 전기요도 준비했다. 전기담요 덕분에 추운 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남쪽 해변에 텐트를 쳤는데, 관리하는 분이 친절해서 더 좋았다. 주말이라 솔숲에 캠핑객들이 많아 심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퇴물이 된 캠핑용 식탁, 2-30년 전에 대유행이었다. 구례포는 모래사장이 얕고 넓어 해수욕장으로 적격이었다. 게다가 솔숲이 에워싸고 있어서 아늑한 것이 보기에도 좋았다. 철이 지나 바다에 들어가진 못했으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버리고 대자연에 동화될 수 있었다. 바닷물은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첫째 날은 바람도 제법 세게 불어서 밀려오는 파도도 높았다. 파..
학암포와 구례포 태안반도 북서쪽 학암포, 아름다운 해변이래서 방문했는데, 백사장 지나 작은 산 너머에 매우 큰 화력발전소가 있었다. 아담한 포구에 고운 백사장, 아기자기한 여름 휴양지로 좋아보였으나, 커다란 굴뚝들이 늘어선 화력 발전소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석탄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서해안에 화력발전소가 많다. 굴뚝에서 솟아나는 이산화탄소와 발전소 주변에서 날리는 미세먼지는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우리나라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날아온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미세먼지도 대단하는 것을 알고 우리 스스로 개선해야 한다. 더구나 국립공원 안에 세운 화력 발전소,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공원관리소에서 운영하는 학암포 야영장은 제대로 잘 만들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하루 야영비 13000원 전기..
춘천 남이섬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는 섬, 겨울연가 이후로 널리 알려져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본디 이 섬은 1944년 청평댐이 생기기 이전엔 북한강변인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로 강물이 불면 섬이 되었던 땅이었다. 청평댐이 생기면서 춘천시에 붙었던 얕은 지대가 물에 잠기면서 사시사철 강물에 갇힌 섬이 되었다. 춘천의 남쪽에 있는 섬이라 남섬으로 불렸었는데, 1965년 민병도가 이 섬을 사들여 나무를 심고 잔디를 가꾸는등 조경에 힘써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남섬이란 이름이 조선초 젊은 나이에 역도로 몰려 28세로 처형된 남이장군의 이름과 유사한데 착안하여, 섬의 북쪽에 가묘를 만들고, 남이장군의 묘라 홍보하여 오늘날 남이섬으로 불리게 되었다. 초기에는 행락객들이 머물다 가는 섬이었으나..
진도군 조도 조도대교 아래를 지나 도착한 하조도는 서거차도에 비하면 거대한 섬이었다. 가히 주변의 작은 섬들을 거느릴만한 크기를 지녔다. 도로도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승용차들과 화물트럭들도 많이 보였다. 호수도 있고, 모내기를 끝낸 논과 경작주인 밭이 이곳저곳에 산재하여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창유항에 내려 아름답다는 하조도 등대로 가서 그곳 경치를 구경하다가 상조도 두리산 전망대까지 이동하여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면서 다도해 전경을 360도로 돌아보았다. 크고 작은 섬들이 망망대해 해무 속에 아련히 떠있었다. 북쪽 멀리 한켠으로 진도가 길게 누워있었는데, 이곳에선 진도만 해도 나가서 살고 싶은 대처일 듯싶었다. 하기사 진도는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었으니 섬이라 보기도 어렵겠지만... 저녁 때가 되어 식사를 ..
안녕! 서거차... 아침부터 해무는 남쪽바다로부터 끊임없이 몰려와 오후에 연락선이 올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으나, 햇살이 퍼지자 소강상태를 보였다. 점심식사 후 짐을 꾸려 부두로 나왔더니, 정기여객선 한림페리가 벌써 들어와 정박한 채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의 일로 서거차도 행정수부인 조도로 나갔다가 게서 1박 하기로 한 탓에 예정보다 하루 일찍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국토의 서남부 끝 먼바다 작은 섬, 높은 산 정상에 올라서면 한 눈아래 섬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50여 호의 주택 가운데 40여 호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어업에 종사하는 가구가 두서너 집, 미역양식하는 집이 두 집, 그 외 발전소와 관공서에 근무하는 직원들 몇 사람... 장년세대도 거의 없는 외로운 섬이다. 자연환경이 ..
서거차도 일기 10 매일같이 안개가 밀려왔다. 서거차중앙교회 목사님이 이 섬의 동북쪽 산정의 전망을 안내해주기로 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오후가 되자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그러나, 망망대해 위 조각배같은 대한민국 서남단, 이 끝섬의 날씨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해무때문에 시계가 제한적이어서 안타깝긴했지만 나에게 허락된 시간도 여유가 없어서 훗날을 기약할 수 없었다. 북동쪽 해안에서 가파른 비탈을 조심스럽게 오르기 시작했다. 비탈의 왼쪽발 아래론 수십길 낭떠러지여서 오를수록 간담이 서늘해졌다. 산정에 오르자, 서거차도는 물론 동거차도까지 한 눈에 조망되었다. 안타깝게도 해무때문에 주변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은 볼 수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만으로도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 ..
서거차도 일기 9 하루종일 안개가 몰려왔다. 가까운 남쪽바다로부터 끊임없이 밀려와서 그 앞뒤를 가늠해 보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안개는 비릿한 냄새를 풀어헤치고 바람소리를 내며 남쪽으로부터 상륙해서는 들판을 가로질러 산등성이를 타고 북쪽 바다로 떼 지어 몰려갔다. 온종일 그렇게 끊임없이 밀려왔다 떠나갔다. 그렇지 않아도 제한된 시계를 가진 이 작은 섬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몇 미터의 바다와 몇 척의 어선들과 마을의 작은 집들이었다. 안개 때문에 통통거리며 조업에 나서던 배들도 하릴없이 부두에 정박해 있고, 하루 한 번 들리는 정기여객선도 발이 묶여버렸다. 바쁠 것 없이 시간만 멈춰버린, 이 작은 섬엔 안개와 해풍과 파도만 부지런하게 하루종일 밀려오고 떠나갔다. 안개 때문에 산에도 가지 못하고 소일 삼아 항만에 붙은 마을..
서거차도 일기 8 일찍 잠든 탓으로 새벽 닭소리에 잠에서 깼다. 밖에 나가보니 아직 밝지 않았는데, 항만의 불빛만 가물거린다. 방안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더니 망망한 바다를 타고 올라온 해무가 지네처럼 엎드려 기어가고 있었다. 멀리 동편 하늘이 밝아오고.... 내륙엔 폭염과 가뭄이 극성이라는데, 이곳도 아침 안개 덕분에 제법 뜨거운 하루가 되리라 예상해 보았다. 그러나, 한낮이 되어도 뜨겁지 않았다. 하늘도 쾌청하지 않았고... 간간이 지나가는 구름 덕에 하늘의 색깔이 변화무쌍하기만 했다. 하릴없어 섬의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걸어서 움직이는 건 부두 광장을 가로질러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와 교회의 흰둥이, 그리고 우리 뿐이었다. 서쪽 해안으로 갔다가 성과가 없어 라면만 끓여 먹고 돌아와서 다시 북동쪽해안으로 가서 ..
서거차도 일기 7 어김없이 또 하루 섬의 일상은 아침이 밝으면서 어제처럼 반복되며 시작된다. 어제 그 사람이 오늘 또 내 곁에 있고 어제의 일이 또 오늘의 일이다. 단 날씨만 바뀌지 않는다면... 때로는 내륙에 출타하기도 하며 힘들게 찾아왔던 친지들도 힘들게 이곳을 떠나간다. 정기항로는 하루 한 번 진도 팽목에서 떠나는 9시 50분 연락선이 12시 50분경 들어왔다 나간다. 그 외에는 지나가는 연락선에 미리 전화로 연락해서 입항하도록 요청해서 배를 타고 떠나간다. 떠나간 사람은 몰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한동안 그만큼의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야 할 터이다. 좁은 섬 주변을 쳇바퀴 돌듯, 뺑뺑 돌고 나니, 벌써 무료해진다. 동네의 개들도 이미 낯이 익숙해진 듯 가까이 다가가도 이젠 쳐다보지도 않는다. 처음 영악스럽게 짖어대던 교..
서거차도 일기 6 그동안 벼르기만 하고 길을 찾지 못해 올라가지 못했던 서거차마을 뒷산에 올랐다. 날씨가 너무 맑아 멀리 있는 섬들이 눈앞에 있는 듯했다. 흔적만 희미한 산길이라 우거진 잡목과 숲을 헤치며 어렵게 올라갔다. 뱀에 물릴까 염려하여 등산 스틱으로 잡목들을 치면서 조심스레 올랐다. 오르는 중에 숲길 가장자리로 빠져나가는 뱀을 발견해서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산 등성이에서 잠시 길을 잃어 헤매다가, 능선을 타고 오르는 산길의 흔적을 찾아 더듬듯 숲을 뚫고 정상에 올랐다. 사자바위와 한반도 섬을 찾아보았으나, 한반도 형상의 돌섬만 발견했을 뿐이었다. 서쪽 끝으로는 맹골도가, 남쪽으로는 서거차마을과 항만, 병풍도가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다도해의 무수한 섬들이 막힘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었다. 서거차도 북쪽 해안은 거의..
서거차도 일기 5 넓지 않은 섬이라 동쪽 끝 산등성이로 걸어서 갔다. 우리가 통발을 놓던 동남쪽 해안에서 빤히 보이는 동쪽 산등성이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이곳 대부분의 산길이 그렇지만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어 도로의 흔적만 남아 있기 때문에 우거진 잡초 사이를 헤치고 걸어야 했다. 조심스러운 것은 곳곳에 살모사나 까치 독사들이 서식하고 있어 까딱하면 물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섬주민들처럼 장화 신고 산을 오를 수 없는 일이어서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동쪽 끝 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망망한 수평선 위에 크고 작은 무수한 섬들을 띄우고 있었다. 해무 때문에 시계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올망졸망 떠있는 검푸른 섬들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지도를 보며 익힌 섬이 눈앞의 상죽도와 동거차도, 감투 두 개가 산 꼭..
서거차도 일기 4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 예보에는 9시부터 12시 사이에 내린다더니,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조바심에 예보를 찾아보니 고맙게도 오전 9시 이전에 비가 그친단다.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강수량도 5mm 정도이고, 오늘은 물때가 좋아 입질을 맛볼 수 있으리란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긴 했으나 신통하게도 9시 넘어 비가 그쳤다. 낚싯대와 취사도구를 챙긴 후, 대웅이 아빠 봉고트럭을 타고 서거차 서쪽 끝지점인 커크래 해변으로 갔다. 커그래는 모래미 동네입구를 지나 해안의 비포장 도로 끝 지점에서 작은 고개 하나를 넘어, 거북처럼 생긴 섬 뒤의 바닷가에 있었다. 우리가 산 위에서 조망했던 거북 모양의 섬은 건너새끼섬으로 서거차도에서 통한의 맹골수로를 바라보며..
서거차도 일기 3 새벽녘, 닭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검푸른 하늘엔 별이 총총한데, 북두칠성과 북극성 카시오페아가 선명하게 빛났다. 이름 모를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새벽이슬이 비처럼 내렸다. 가랑비처럼 떨어지는 이슬의 촉촉한 감촉이 나쁘진 않았다. 이슬을 맞으며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새벽 공기로 심호흡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서거차에서 제일 높은 산에 오르기로 했다. 서거차항만을 타박타박 걸어서 이웃마을 모래미 동네길로 올라서며 산행을 시작했는데, 최고봉인 상마산에 레이더 기지가 있어서 길은 넓었지만, 통행이 없는 탓으로 숲이 우거져 원시림 속을 헤치고 가는 것 같았다. 지나는 길에 달래꽃, 찔레꽃, 산딸기, 싸리꽃들이 흐드러지고 있었다. 정상에 오르자 사방이 탁 트여 전망이 통쾌했다. 애석하게도 세월호 참사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