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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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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 봉은사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에 갔다가 여유가 있어서 봉은사에 들렸다. 모처럼 미세먼지에서 벗어난 듯, 날씨가 쾌청해서 하늘이 푸르렀다. 조석으로 쌀쌀한데 한낮엔 4월임에도 26도를 넘는 더위가 몰려왔다. 봄철 점퍼 차림으로 나갔는데, 더위를 주체 못 해 쩔쩔매었다. 행인들의 옷차림이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벌써 여름옷을 입었거나, 아직도 겨울 패딩조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차림새였는데, 봄옷을 입고 나간 나로서는 너무 더웠다. 봉은사는 벌써 초파일 준비에 바쁜 모습이었다. 봉은사 현판이 달린 큰 문을 지나자마자 법당으로 가는 길은 하늘에 붉은 연등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 덕에 그늘져서 나 같은 방문자들은 제법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예전 입구에서 봤던 보우대사 동상은 자취를 감추고, 내가 제..
해남 달마산 미황사 해남 땅끝마을에서 올라오며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미황사였다. 마치 금강산 능선 하나를 떼어놓은 듯이 북쪽 두륜산을 경유에서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지나가는 한반도 백두대간의 마지막 줄기 달마산 능선은 산수화를 그린 병풍만큼이나 아름답다. 그 아래 미황사는 동편에 석벽 병풍을 두르고 점잖게 서해를 굽어보고 앉아 있었다. 이곳에선 구태여 인위적인 멋을 부릴 필요가 없다. 빼어난 산수 한 자락에 자리 하나 빌려 여러 채의 절집들이 법당을 중심으로 정답게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을 뿐이다. 불교가 주를 이루는 대부분의 동남아 사찰들은 하늘을 찌를 듯 추녀를 치켜세우고, 화려하게 황금색으로 과장하여, 세속의 중심에서 사람들에게 호사를 부린다. 얼마전 라오스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사원들은 멀리서 볼 땐 크고 아름다웠는..
강화 정족산 전등사 강화의 마지막 여정은 전등사였다. 전등사는 강화도 대표적 사찰로 방문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세월이 흘러 기억이 가물거리다 보니 옛 시절 추억들이 그리울 뿐이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대로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파른 비탈길을 한참이나 올라갔는데, 비탈길 계단 위 식당 있는 곳에 주차장이 하나 더 있었다. 주차장이 여러 곳에 있다는 것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자신을 탓하는 수밖에... 우리가 주차한 곳은 이른바 동문 주차장이라는데, 동문 식당을 찍고 오면, 힘들이지 않고 전등사 동문으로 올 수 있겠다.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사찰이다보니 탐방객들이 많았다. 이곳도 템플스테이에 힘쓰고 있는 듯, 새로 지은 건물들도 많아서 낯선 풍경도 많았다. 향로전과 대웅전 사잇길로 오르니 삼성각과 정족산사고 이..
석모도 보문사 금년 6월 27일 개통된, 석모대교를 건너 석모도 보문사까지 쾌속 주행했다. 비가 온다던 날씨는 맑게 개어 푸른 하늘 아래 뜨거운 햇빛이 작렬했다. 배를 타고 건너 다녔던 석모도가 연륙교 덕택에 강화 본섬과 생활권을 함께 하게 되었다. 진작부터 가보고 싶었던 석모도였는데, 친구들과 함께 건너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다. 오후 4시경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보문사를 향해 올라갔다. 낙가산 남서쪽 비탈에 세운 절이라 경사가 보통이상이었다.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땅을 넓혀 종루 등의 절집들을 지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했다고 하나, 조선 후기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의 규모와 크기로 보면 현대에 이르러 불사를 크게 일으킨 듯, 그 규모가 보통 이상이었다. 낙가산 보문사 일주문 법고와 목어 옆에 있는..
내장산 백양사 내장산 깊이 겹겹이 접힌 산자락 속, 골짜기 안에 숨은 듯 자리한 백양사, 깎아 세운 듯 하늘을 찌르는 백학봉 흰 바위산을 뒤에 두고 호젓하게 앉았다. 김제에서 백양사까지는 한 시간 십여분 가량, 국도가 고속도로 못지않았다. 뜨거운 폭양 아래 인적조차 끊겼다. 내장산을 휘감은 애기 단풍들이 뜨거운 햇빛 아래 빨갛게 익어, 찬바람과 함께 이 산을 빨갛게 물들이면 단풍잎 만큼이나 많은 풍류객들이 이 골짜기를 메울 것이다. 무심한 뭉게구름만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시간까지 멈춘 것 같은 내장산 백양사였다. 백양사 쌍계루, 뒷산이 백학봉. 천왕문 종무소 청운당과 향적전 선불당, 템풀 스테이 주거지 극락보전과 대웅전 대웅전 앞뜰 대웅전 뒤 석탑 범종각 보리수와 범종루 설선당과 백학봉 대웅전 추녀 http://fal..
부안 내소사 격포에서 내소사로 가는 리아스식 해안은 너무 아름다워 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내소사는 여러 번 가 본 사찰이라 눈을 감고도 그 모습을 선연하게 떠올릴 수 있지만 아직 보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안내하기로 했다. 날은 흐렸지만 기울어가는 석양 속에 아름다운 변산 해변을 달려서 내소사에 도착했다, 겨울철에 흐린 날이라서인지 탐방객이 뜸하고 한산해서 입구의 상가들도 파장 후 장터처럼 대부분 문을 꼭꼭 닫고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전나무 숲길은 그동안 세월의 풍상을 견디지 못했는지 말라죽고 있었다. 부러지고 쓰러져 누운 나무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이대로라면 하늘을 가리던 그 울창한 전나무 숲은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천왕문 가까이 다가서자 처음 온다는 친구들은 명당답다고 탄성을 질렀다...
설악산 신흥사 철 지난 사진, 지난가을 설악산에 갔을 때, 신흥사에 들렸었다. 설악산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입장료 징수에 환장하던 군상들을 보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신흥사가 오래된 절집도 아니고 고색창연한 건축물도 아니면서 절집과 멀리 떨어진 주차장까지 내려와 진을 치고 신흥사 관람료를 받는 것이다. 절은 보지도 않는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관람료를 받는데 신흥사가 아닌 설악산 관람료를 어찌 신흥사에서 받는단 말인가. 과거 설악산 입구 신흥사 주변 오밀조밀 상업지구였던 설악동이 신흥사 소유란 말을 들었었다. 그곳에서 얻는 이권이 대단해서 설악산 주지 뽑는 날엔 폭력배들을 앞세운 각목 싸움이 꽤나 치열했었다. 지금은 정화되었는지 각목 싸움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다만 설악산 관람을 한다는데 절 관람료를 억지로 내라는 ..
금강산 화암사 속초에서 금강산을 본다는 거, 처음엔 농담인 줄만 알았었다. 미시령 너머 미시령 북쪽으로 신선봉이 있는데, 그 봉우리가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시작되는 제일봉이란다. 그래서 그 아래에 있는 이 절을 금강산 화암사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곳은 지리적으로 설악산과 금강산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 건봉사에 갔을 때, 화암사 얘기를 들었었다. 그래서 이번 속초 여행에서 첫번째로 찾았다. 금강산 화암사는 옛날 신라 승려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이곳에 화엄사(華嚴寺)를 창건하였다. 화엄사라 했으나 속세에서는 화암사(禾岩寺)라 불렀는데, 절 남쪽에 커다란 한 덩이 바위 모양이 벼낟가리 같았기 때문이다. 이 절은 창건이래 불에 타고 다시 중건하는 등 불사를 거듭하다가 1912년 건봉사(乾鳳寺)의 말사가 된 뒤부..
수원 봉녕사 남녘에선 벚꽃이 핀다는데 이곳엔 이제 겨우 매화꽃이 한창이다. 봄햇살은 따갑건만 바람이 아직 차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봄나들이 나왔다가 찬바람에 온몸이 스산해지기도 했다. 양지바른 봉녕사 뜰에 상춘객들이 몰려 들었다. 아직 바람이 차지만 형형색색의 매화꽃과 막 벌어지기 시작한 목련과 진달래에 상춘객들의 끼리끼리의 담소들이 봄기운을 흠뻑 먹은 듯했다. 경내를 한 바퀴 돌아야 20분 내외일텐데, 꽃향기와 봄풍경에 취해서 한 시간여를 머물렀었다.
양양 해변 휴휴암 휴휴암(休休庵)은 주문진에서 양양 가는 국도변, 작은 능선 너머 바닷가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절이다. 쉬고 쉬는 암자라는 의미로 1999년 창건되었다. 창건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널리 알려지지 않아 처음 방문했던 곳인데 경치가 수려하고 바닷가에 붙어있어 해맞이의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거센 바람이 불고 파고가 높아 몹시 춥고 위태로웠지만, 예쁜 풍경에 의외로 방문객이 많았다. 속초 가는 길에 들렸었는데, 날씨가 추웠어도 새로운 명소를 발견한 감동이 있었던 곳이었다. 입구 불이문 뒤에 있는 묘적전, 묘적전이 부처님을 모신 법당인듯... 바닷가에 세워진 관음범종과 지혜관음보살상. 애석하게 암자 한가운데 울타리가 쳐있고 그 안에 나무들을 심어놓았는데, 개인의 사유지라고 한다. 땅주인이 유명한 보험회사..
도비산 부석사 영주 부석사와 창건설화가 같은 서산 부석사. 이곳은 지명조차 부석면이다. 서산 부석사 방문은 두 번째라 낯설지 않았으나, 7-8년 만이라 예전의 느낌과 조금은 달라 보였다. 고풍 찬연한 영주 부석사의 절집 같은 예스러운 건축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비산 중턱에서 자연스러운 산비탈을 의지하여 두 단으로 조성한 절집들은 서쪽 부남호와 간척지를 향하고 고즈넉이 앉았다. 종무소 왼편으로 뚝 덜어져 템플스테이로 쓰인다는 예전 새 건물의 목재들이 그 사이 빛이 바래 제법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하는 듯하다. 극락전 옆에 있는 부석사 표지석 주차장 바로 위 사자문과 전통 찻집. 사자문으로 들어가면 계단이 제법 가팔라서 전통찻집 앞으로 들어갔다. 전통찻집 옆의 지붕이 날아간 휴게소. 위로 올려다본 회랑과 종루, 설법전 ..
양평 용문사 하루종일 이슬비 내린 다음날이라 날씨는 쾌청했다.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불었으나 전형적인 오월 날씨였다. 양평으로 가는 길은 맑고 시원했다. 남한강을 따라가며 먼 산을 바라보니, 이곳 저곳 소나무 숲에서 공사장 마른 먼지처럼 송화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처음보는 진풍경이었다. 문득 박목월의 시 윤사월이 떠올랐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윤사월은 아니더라도, 산 중의 외딴집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꾀꼬리 소리가 없었어도 송화가루 날리는 풍경 하나만으로도 무르익는 봄정취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용문산이 가까워지자 바람은 더 맑고 시원했다. 하늘은 더욱 청명했고 햇볕은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아이들 학교들이 단기방학중이어..
개심사 왕벚꽃 집을 나설 때는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피어올라 기분마저 상큼했으나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우중충한 날씨로 변해갔다. 개심사에 도착해서 인파에 놀랐다. 줄지은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상춘객들과 절 입구에 차려진 산나물 장터는 시골마을의 큰 오일장 이상이었다. 인파를 따라 꾸역꾸역 올라갔더니 아아 세속에서 이미 져버린 형형색색의 왕벚꽃들이 망울을 터트려 꽃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왕벚꽃답게 장미 송이 만한 꽃송이들을 나무마다 탐스럽게 매달고 있었다. 예전엔 인적이 뜸한 한적한 절이었다는데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 덕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단다. 그러나, 개심사는 충남도의 4대 사찰이며, 바로 이웃에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 삼존불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부터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유명 사찰이었음은 분명하..
남한강 신륵사 4대강 사업으로 어수선했던 여주 신륵사, 봄의 길목에서 휘몰아치는 꽃샘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둘러보았다. 녹음이 우거진 계절이라면 풍취가 한층 좋았으련만, 세찬 강바람에 앙상한 나목들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경내에 머물렀다. 4대강 사업이 끝난 터라 주변은 매우 안정되어 있었다. 강변에 조성된 공원 탓으로 신륵사의 경내는 과거보다 더 넓어졌다. 거기에 걸맞게 템플스테이를 위한 건물들도 들어섰고, 부분적으로 보수 개조한 절집들도 있었으며, 법당 뒤쪽으로 가림막을 한 채로 공사 중인 곳도 있었다. 그 공사 때문인지 컨테이너 건물도 경내에 들어서 있어서 옥의 티처럼 깔끔해 보이진 않았다. 경내로 들어가는 문, 예전에 없었던 문인데, 일주문도 아니고,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강변으로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영취산 흥국사 충민사에서 흥국사로 목적지를 정하고 길을 떠났다. 흥국사는 이순신대교를 거쳐 광양으로 나가는 길목 부근에 있기도 하지만, 왜란 당시 충무공을 도와 승병 300여 명이 활동한 호국사찰이기에 여수 방문의 마지막 방문지로 정했었다. 흥국사 가는 길은 여수산업단지여서 엄청난 산업시설들이 광양까지 이어져 있었다. 여수산단의 큰길에서 동쪽의 안쪽으로 샛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는 영취산이고, 그 초입에 흥국사가 있었다. 진달래 피는 계절에 찾아오면 아름다운 꽃들도 보고, 흥국사의 호국정신도 체득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철에는 흥국사 꽃무릇이 유명하다고 한다. 사전 지식 없이 불쑥 들려 미련감을 남기고 가는 여행이어서 아쉽지만, 다음 여정의 여운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 그것도 여행의 묘미라 싶다. ..
구례 화엄사 2월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눈이 오다가 비가 내리기도 하고, 봄날씨처럼 따뜻했다가 금새 돌변해서 강풍을 몰고 영하의 날씨로 바뀌곤 했다. 구름이 많은 날이었지만 햇빛은 참 따뜻했다. 햇빛 덕분에 차 안은 한여름이었는데, 창밖엔 차가운 강풍 때문에 귀와 뺨이 시렸다. 더구나 지리산 자락엔 골짜기 바람이 더욱 매몰차게 불어왔다. 지리산 노고단 올라가는 산자락 아래 초입에 있는 화엄사, 이곳은 그 동안 네 다섯 차례 방문한 곳이었다. 80년대 초 지리산 등산길에 처음 보았던 감동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제 다시 찾은 화엄사는 성벽처럼 쌓은 돌담 안에 새로 지은 거대한 절집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우리나라 절집들은 산세와 눈높이를 맞추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천등산 봉정사 우리나라 최고 목조 건축물이 있는 절,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들렸던 곳, 안동 천등산 봉정사. 십여 년 전에 들렸던 기억이 있다. 안동에 와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명한 곳이라 이곳을 들렸었는데, 옛날 생각이 나질 않아 대웅전 앞에 서서 최고(最古) 건축물의 생김새를 면밀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붕하며 추녀의 장식들이 다른 절의 대웅전과 상이하게 달라 보였다. 고려시대 지은 것이라 그런가 보다고 내 혼자 판단으로 지레짐작하고 있는데, 서너 명의 일행을 데리고 왔던 젊은이가 제일 오래된 고건축물은 대웅전이 아니라 극락전이라 일러 주었다. 극락전으로 다시 되돌아가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건축에 대해 식견이 없어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더 오래된 건축물이라니..
청량산 청량사 풍기에서 청량산까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으나, 잘 닦여진 국도에서 좁은 지방도로로 접어들면서 구불구불한 산길이 멀미를 일으킬 정도였다. 영월에서 영주로 넘어올 때보다 심하진 않았지만 굽이굽이 낙동강 줄기를 휘감고 도는 여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게다가 변화무쌍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안개도 운행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다행히 청량산 입구에 도달했을 때쯤엔 안개는 걷혀 있었다.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청량산 도립공원으로 들어서니 이미 많은 방문객들의 차량들이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주차장을 지나 좁은 도로 한편에 차를 세우고 주차장으로 되돌아와 가파른 청량사까지의 산길을 쉬엄쉬엄 걸어 올라갔다. 초행길이 아니었지만 구부러지고 비탈진 산길에 대부분의 등산객들도 힘들어했다. 청량산 ..
봉황산 부석사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찰로 유홍준은 조계산 선암사를 꼽았지만, 식견 없는 내 눈으론 영주 부석사가 최고로 보인다. 건축물의 구조적 미학으로 본다면 경주 불국사가 으뜸이겠으나,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자연친화적 절집은 아무래도 영주 부석사가 제일이 아닐까 한다. 그야말로 조금도 거슬림이 없는 소박하고 단정한 부잣집 정원 같은 절이다. 과거 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을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삼았으나 이젠 안동 봉정사 극락전에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부석사는 제일 오래된 고찰이 아니어도, 수백 년 묵은 나무의 뼈대가 겉으로 드러나 수백 년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듯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녹아있다. 수년전에 이곳에 들렸을 때, 소백산 부석사가 아니라 태백산 부석사라..
남해 금산 보리암 아마도 보리암과의 인연은 가깝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년 전 보리암을 방문했을 때도 안개비가 내려 주차장 입구에서 아예 올라가지 못하게 하더니, 이번에도 역시 안개가 내렸다. 날도 저물어 비라도 내릴세라 조바심을 내며 부랴부랴 서둘러 보리암 경내로 내려섰으나, 짙은 안개로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기암괴석을 병풍처럼 둘렀다는 절 뒤의 암벽들도, 암자 앞의 망망한 한려수도 푸른 바다도, 안갯속에 모두 빠져 버렸다. 결국 안갯속에서 희미한 눈앞의 암자들만 바라보다 되돌아 타박타박 내려왔다. 이곳을 보려고 그 먼 곳으로부터 달려왔건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탓으로 헛수고만 한 셈이었다. 또다시 다음을 기약하며 쓸쓸히 남해읍으로 들어섰는데, 숙박비도 음식값도 생각보다 비싼 편이었다. 식당 주인에게 왜 이리 ..
조계산 선암사 수년 전 무르팍 도사에 출연했던 유홍준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추천했던 선암사. 그 선암사를 보려고 송광사 유람을 마친 후, 송광사 조계산 너머에 있는 선암사가 가까울 것으로 생각해서 별생각 없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로 입력한 후 출발했었다. 그러나, 네비가 안내한 여정은 불행하게도 송광사 아래쪽 길로 낙안읍성을 지나가는 길이었다. 게다가 우리 경로는 도중에 작은 삼거리에서 왕복 2차선 좁은 길로 접어들더니 산자락 아래에서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1차선 산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산길 초입에서 고심하다가 아니다 싶어 차를 돌려 마을로 나왔다. 마을에서 하교하는 어린이에게 물었더니 퉁명스레 모른다며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하는 수 없이 좁은 길을 막고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석유배달 ..
조계산 송광사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라는 순천 조계산 송광사. 두 번째 방문이었으나 지기들과 여행이라 재미있었다. 메마른 세상에서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긴 여정을 달려도 세상만사 잡다한 얘기 거리에 지루한 줄 몰랐다. 간혹 정치적 견해가 달라 격론이 오가도 그 역시 세상사의 한 부분일 뿐 감정을 상할 이유가 없다. 견해가 달라서 오히려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 또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날씨가 흐려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덥지 않아 좋았다. 입구로부터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는 길도 운치 있었다. 다만 상류에서 박물관 공사에 동원된 포클레인이 공사를 하고 있어서 물이 탁한 것이 흠이었다. 길가에 편백나무 숲도 있어 반가웠다. 요즘 유행..
모악산 금산사 명산으로 이름난 모악산에 있는 금산사, 두 번째 방문이었다. 곧게 뻗은 4차선 국도에서 2차선의 옛길로 접어들면서 금산사까지 아기자기한 여정이 한층 운치 있었다. 태풍으로 흐린 덕에 덥지 않은 날씨가 오히려 여행에 도움을 주었다. 마음 맞는 벗들과 함께하는 여행, 꽃보다 청춘은 아니어도 즐겁고 유쾌했다.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대표적 사찰로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과 비슷한 형태의 목조 삼층 미륵전에 미륵장존육상을 모셨다. 백제 법왕의 자복사찰로 창건하였고, 이후 통일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에 의한 6년여의 중창으로 사찰다운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하여, 당시 신라 불교의 주류였던 교종 계통 법상종의 중심 사찰로 역할을 했는데, 법상종이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
사자산 법흥사 휴일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이 돼버렸다. 가다 서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 문막에서 국도로 나갔다. 요즘 국도는 고속도로 못지않게 직선화 되어 있다. 앞만 보고 냅다 달리는 황량한 시멘트 고속도로보다 아기자기한 시골 풍경들을 즐길 수 있고 승차감도 좋은 아스팔트 국도가 오히려 더 여행에 적격이겠다. 될 수 있는 대로 앞으로 국도 여행을 할 참이다. 황둔을 지나며 유명하다는 찐빵도 사 먹으며, 강원도 산간 골짜기 법흥계곡을 구불구불 따라 들어갔다. 골짜기 왼쪽엔 수많은 캠핑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직 날씨가 추워 야영하기엔 어려울 터인데도 야영객들이 제법 많았다. 오지로 이름난 이곳 영월군 주천 수주 마을의 땅값이 캠핑 붐을 타고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니 참으로 천지가 개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사..
덕숭산 수덕사 온천으로 유명한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에 봄볕이 찾아들었다. 따스한 햇살 따라 행락객들도 따라 들어 봄기운이 넘치고 있었다. 70년대 후반, 직장 동료 따라 처음 들렸던 수덕사였는데, 그간 수차례의 변신을 거듭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한 때 거대한 돌계단을 쌓아 빈축을 샀었는데, 세속의 배금주의 상징 같던 돌계단이 없어지고 옛 모습으로 회귀했지만, 초입 거대한 황하정사 전각이 가로막고 있어 그때를 완전 벗지는 못한 듯싶었다. 다행히도 입구까지 늘어섰던 여관들과 식당들을 한 곳에 모아 보기에 좋았다. 90년대쯤에 스리랑카에서 모셔 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처음 친견한 곳이 이곳이기도 했다. 그때 임시로 황하정사 안에 부처님 사리를 모셔놓고 참배객들에게 공개했었다. 유리잔에 담긴 부처님의 빨강 빛 진신사리가 어..
삼성동 봉은사 강남 1번지 삼성역에서 한 블럭 건너 있는 봉은사.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땅에 있는 절이다. 강남을 개발하던 시절, 이 절에 들렸던 기억이 있어서 잠깐 방문했는데, 과거의 기억은 흔적도 없고 그 사이 불사를 크게 일으켜 높은 빌딩 사이에서 큰 몸체를 자랑하며 비싼 땅값에 겋맞는 자본주의의 상징이 된 것 처럼 보였다. 사찰 본연의 아늑하고 고풍스런 느낌보다는 건물이 크고 금물로 외벽을 치장하는 등 재력을 과시하고 있어, 천박함을 지울 수 없었다. 본디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시절,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하여 견성사(見性寺)라 했는데, 조선조 연산군 때에 부왕인 성종의 능 선릉(宣陵)을 위하여 능의 동편에 있던 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절 이름을 봉은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게다가 명종 때는 이 절을 선종..
속리산 법주사 오랜만에 찾은 법주사였다. 기나긴 겨울이 끝나는 것을 조금은 아쉬워하는 듯 쌀쌀한 바람이 불었으나, 봄기운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산사를 찾았다. 따스한 햇볕에 밤새 얼었던 땅이 녹아 조금은 질척거렸으나, 다가오는 봄기운이라 생각하면 그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경내를 돌아보고 있는데, 문화해설사가 입구 쪽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로 가서 설명을 들으면서 처음부터 다시 관람을 시작했다. 설명을 듣다 보니 건축물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전각마다 앞에 놓은 설명문이 있지만 해설사의 설명이 더 쉽게 들리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지... 어린 시절 방문까지 포함하면 수차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문이 법주사의 유래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553년(진..
서산 개심사 "開心寺" - 마음을 씻고 여는 절 겨울철 歲暮에 개심사 가는 길에는 하얀 눈이 살짝 뿌려져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녹지 않아 도로는 눈이 덮여 미끄러웠으나, 차량의 왕래가 많지 않아 순백색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일주문 근처 주민들의 노점에는 산골 냄새 물씬 나는 농산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마수걸이하라며 듬뿍 쥐어주는 갓 볶은 땅콩 한 줌만큼이나 투박한 충청도 사투리가 정겨웠다. 개심사 방문은 수차례였지만 눈 덮인 풍경은 처음이었다. 일주문을 지나 구불구불한 돌계단을 지나 개심사로 오르는데, 맑고 서늘한 산속의 공기에 뼛속까지 상쾌해졌다. 도시에서 찌든 공해의 흔적들이 맑고 깨끗한 상왕산의 차가운 정기에 정화되는 듯했다. 개심사는 650년 경 백제 의자왕 때 개원사로 창건되었으나 고려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