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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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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봉선사 수양대군 세조의 능인 광릉을 위한 사찰로 본디 '운악사'였던 것을 '봉선사'라 개명하여 오늘에 이른다. 수양대군 세조는 아버지 세종(世宗)과 어머니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둘째 아들로 1417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 태종을 닮아 어려서부터 무예(武藝)를 좋아하고 병서(兵書)에 밝았다고 한다. 세종의 장자였던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승하하고, 12세의 어린 나이로 단종이 즉위하였다. 수양대군은 권람(權擥)·한명회(韓明澮)·홍달손(洪達孫)·양정(楊汀) 등 30여 인의 무인 세력을 휘하에 두고 야망의 기회를 엿보다가, 37세 때인 1453년(단종 1) 10월 이른바 계유정란을 일으켜 이끌고 김종서를 살해한 뒤, 사후에 왕에게 알리고 왕명으로 중신들을 소집,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趙克寬)·찬성(..
치악산 상원사 꿩의 보은 설화로 유명한 치악산 상원사. 몇 년 전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날, 이 산을 넘은 적이 있었다. 하얗게 흰 눈으로 뒤덮인 상원사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하얀 적막 속에 묻힌 백색의 산사는 치악산의 9부 능선으로 병풍을 친 속에 앉아 있어서 어디선가 금방 꿩이라도 날아와 범종루의 육중한 종을 울릴 것만 같았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녹음 속의 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천천히 올라갔다. 휴일임에도 등산객의 발길은 매우 성글었다. 지리산 천왕봉길에 있는 법계사(1,450m)와 설악산 대청봉 가는 길의 봉정암(1,244m) 다음으로 상원사는 치악산 남대봉 아래 해발 1,084m 높은 곳에 자리한 절이란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無着) 대사가 창건했다는 설..
남양주 봉선사 수양대군(세조)의 명복을 빌었던, 광릉의 원찰 남양주 봉선사(奉先寺)는 세조의 능인 광릉 초입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인 광종 20년(969년)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운악사(雲岳寺)였다. 그 후 조선시대로 들어와 세조가 승하한 후 예종이 광릉에 세조의 능을 조성하고, 이 운악사를 광릉의 원찰로 삼고 이름을 봉선사로 바꾸었다. 봉선사(奉先寺)라는 이름 자체가 ‘선왕을 모신다’라는 의미이다. 광릉의 원찰이 되면서 봉선사는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사세가 위축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의 봉선사는 그리 큰 절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되고 또 광릉의 원찰이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만큼 많은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
금강산 건봉사 작년에 갔던 그 길을 또 찾아갔다. 갈 곳도 마땅하지 않았지만, 작년에 갔을 때 찬찬치 못해 부처님 치아 사리를 친견하지 못한 아쉬움 탓이었다. 또한 아름다운 경관들을 가족들에게도 보여주고 싶기도 했었고... 북적이던 속초 길보다 그 이북 도로는 적막감이 들 정도로 한적했다. 큰길에서 벗어나 호젓한 산길을 달리며 차창을 열고 싱그런 신록으로 심호흡했다. 인적 드문 산사였지만 도착해서 보니 내방객들이 더러 있어 심심하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불이문 기둥 돌 받침대에 새겨진 글자로 사방의 악귀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엔 천왕문이 없다. 대웅전으로 건너가는 무지개 돌다리 능파교. 개울을 건너기 전 돌다리 앞에서 돌아본 범종루 대웅전 대웅전 왼 편에 있는 종무소 겸 부처님 치아사리 친견실 친견실 안의 보살님..
설악산 백담사 40여 년 만에 다시 가 본 백담사였다. 과거의 희미한 기억은 세월 저 편에서만 가물거리는 탓으로 모든 것이 그저 새로웠다. 옛날 설악동에서 텐트까지 짊어지고 대청봉을 넘어 봉정암을 지나 수렴동에서 백담사로, 그리고 용대리 큰길까지 타박타박 걸어 지나던 기억만 남았을 뿐, 흐릿한 영상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그동안 몇 번, 용대리를 지나면서 백담사에 들려보려 했으나, 버스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번엔 작정하고 용대리에서 민박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 승차장 부근에서 해장국으로 요기하고 8시 첫 버스로 백담사에 갔다. 일요일이라 등산객들이 많아 승차장이 북새통이었지만 일찍 서두른 탓에 첫차를 탈 수 있었다. 버스에 사람이 차면 떠났기 때문에 서두..
양양 낙산사 중부지방은 32도를 오르내리는 불볕 더위라는데, 영동지방은 어딜 가나 잔뜩 흐린 날씨에, 한낮에도 22도가 제일 높아 저녁 무렵에는 오히려 춥기까지 했다. 몇 해전에도 6월에 강릉해변에 왔다가 푸른 하늘은 보지도 못하고 쌀쌀한 날씨에 연무 속에 되돌아간 적이 있었다. 선자령 오를 때의 쾌청한 하늘이 그리웠다. 그때 동쪽에서 구름 안개가 계속 밀려오더니만, 그 구름 안개 때문에 날이 흐리고 기온도 낮은가 보았다. 그 덕에 움직이는데 덥지 않아 좋았으나 바다에는 이미 사람들이 몰려들고, 성급한 아이들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낙산사 주차장이 만원이라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 바닷가 도로 옆에 차를 세워두고 낙산비치호텔 방면으로 걸어서 낙산사를 찾아갔다. 비치호텔 앞 낙산사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어서, 그..
고창 선운사 선운사 앞을 흐르는 검은 계곡물, 그 이름이 도솔천(兜率川)이란다. 아마도 도솔천(兜率天)의 미륵부처님이 물줄기를 타고 내려오신다는 이야기는 아닐는지... 화려한 단풍잎은 아니더라도 연록의 새잎들이 미륵보살님의 숨결처럼이나 고왔다. 냇물 따라 선운사로 올라가는 도중에 물빛에 취한 어느 분이 탄성을 질렀다. 그 탄성을 듣고 내려가 수면 가까이에서 도솔천을 올려다보았다. 물빛이 유난히 검게 보였다. 도솔천, 미륵만을 고대하던 옛사람들의 애환이 그려진다. 그 동안 선운사는 몇 번 들렸던 절집이었으나, 도솔천 냇물을 바라본 것은 처음의 일이었다. 초파일을 준비하는 연등 그림자가 여울처럼 흐르는 물살에 흔들리고 있었다. 도솔천을 따라 들어간 선운사엔 아직까지 동백꽃이 계절의 흐름을 아쉬워하듯이 빠알갛게 맺혀 있었..
화성시 신흥사 평소 제부도 갈 때, 제부도 초입 구봉 터널을 지나면서 바로 우측방향에 큰 절이 있어서 궁금했던 차에, 당성을 찾라 갔다가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다. 교육관과 큰법당 등 대표적 건축물들이 시멘트 철골구조들이어서 전통미 넘치는 전통 절집들의 분위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이 신흥사는 1934년 덕인 스님이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작년 10월에 오른쪽 산비탈에 불교 교화공원을 조성하여 불교 포교에 힘쓰고 있었다. 이 교화공원은 황톳길 위에 11분의 부처님상을 세우고, 각 장소마다 센서를 달아 사람들이 다가서면 자동으로 부처님의 교화 사례를 음향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신흥사에서는 템플스테이와 불교대학, 어린이 불교학교 등을 운영하면서 일반 대중들의 교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대법당 ..
수원 봉녕사 1. 2.
토함산 석굴암 두 번째 방문이었다.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아내와 두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왔었다. 그때 애들은 천방지축 순진하게 뛰노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했었는데, 그동안의 세월에 이젠 대놓고 어른 행세를 한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어렸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코밑이 꺼메지고 목소리가 변성기에 접어들면 벌써 대하는 태도부터가 다르고, 부모하곤 함께 여행도 하지 않으려 하니, 재미가 반감되고 오히려 긴장감만 커간다. 독립해 나간 큰 녀석이 그립긴 하지만 품에서 이미 벗어나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비치는 것도 어려워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순하디 순한 막내만 부모 따라나섰으나, 말수가 없어져 무뚝뚝하고 행동이 기계적이라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부모 싫다 하지 않고 따라나서 준 것이 고맙고 대..
불국사 오랜만에 다시 본 불국사였다. 석가탑 보수 소식을 보도를 통해서 익히 알았지만 현장에서 그 모습을 보니 서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석가탑 보수를 위해 지은 가림막 때문에 아름다운 불국사 지붕의 스카이라인에 단절감이 생기고 말았다. 게다가 모아놓은 눈들이 녹아 질척거리기까지 했다. 날자를 잘못 잡았다는 실망감도 있었으나, 불국사의 대표성만큼이나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었다. 카메라를 지녔다는 것 하나로 불국사 경내를 구석구석 돌며 두루 살펴보았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와서 처음 대했고, 그 후에도 서너 번 들렸었으나 대부분이 주마간산 격이었다. 고교시절엔 변변한 카메라조차 없어 기념사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했었다. 이젠 물질문명의 풍요로움 속에 널린 것이 카메라이지만, 그 카메라로 아름다운 풍..
영천 은해사(銀海寺) 여행을 하다 보면 절을 많이 찾게 된다. 불교신자도 아니면서 절을 즐겨 찾는 것은 아무래도 사찰이 위치한 빼어난 지세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찰은 아름다운 명승지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목조 건축물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목조 건축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궁궐이나 사찰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볼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역시나 이번 여행에서도 팔공산을 스쳐 지나면서 이 지역의 대표적 사찰에 들리기로 했는데, 그곳이 바로 은해사였다. 법당 뒤에 금괴를 묻었다는 인근의 동화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다음 기회에 동화사와 모든 기원을 다 이루게 해 준다는 팔공산 갓바위를 찾아보기로 했다. 절 주변이 잘 정리되어 ..
군위 인각사(麟角寺)-삼국유사의 산실 인각사를 만난다는 설레임에 잠조차 설쳤다. 그러기에 한 걸음에 달려갈 듯, 차를 몰아서 길고 지루한 고속도로를 지나 군위군 국도로 들어서니, 아뿔싸 도로엔 눈이 가득했다. 국도에는 일손이 미치지 않는 듯,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에다 그늘진 산 아래 응달은 아주 빙판이었다. 그 좁은 길에 웬 덤프트럭은 그리 많이 다니는지, 반대편 차선의 덤프트럭과 교행할 때는 공포까지 느끼곤 했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인각사 앞에 도착했는데, 온통 흰 눈이 덮여 있어서 지나치고 말았다. 차를 돌릴 공간이 없어 한참을 지나간 뒤에야 U턴해서 인각사 경내로 들어섰다. 흰 눈이 가득한 마당에 절집 두세 채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일연스님을 생각나게 해 준 것은 정면의 경량철골구조 전시관이었다. 불원천리 멀다 않고 달려왔기에..
서산 간월암 만조가 되면 섬이 되고, 물 빠지면 육지가 되는 서산 천수만의 작은 섬 간월도. 그 섬을 다 채우고 섰는 간월암은 지난번 방문 때보다도 더 퇴락해진 모습이었다. 주변에 포구나 식당들은 산뜻하고 예쁘게 치장했는데, 정작 주인공격인 간월암엔 풍상이 몰아쳤는지 예전보다 더 낡고 쓸쓸해 보였다. 추운 날이었지만 하늘빛이 너무 고와 집을 나섰었는데 바닷가엔 내륙과 달리 엷은 해무가 번져 쾌청하지 않았다. 큰맘 먹고 멀리까지 찾아간 발품이 아까웠다. 암자 옆에 바다를 향한 작은 건물은 갓 부화된 새처럼이나 볼품없이 기와 한 장 없는 맨머리로 해풍을 맞고 있었다. 조선조 창업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무학대사가 이 암자에서 달을 보며 도를 깨우쳤다고 해서 간월암이라는데, 해 떠오른 오전보다 오후 시간이나, 아니면 달 ..
산사에서의 커피공양, 죽산 국사암의 궁예 미륵 쌍미륵사에서 내려오며 바로 좌회전하여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맞은편에서 차라도 나오면 그야말로 낭패였을 것이다. 그 산길을 구불구불 지나 국사암 바로 아래에선 30도 이상 가파른 시멘트 길을 박차며 암자에 올랐다. 막바지 오르막길에선 경사가 급해 자동차가 뒤로 뒤집어질 것 같았다. 나는 두 번째 방문이라 큰 감동은 없었으나, 가을빛이 무르익어 풍광이 아름다웠다. 때마침 작업복을 입은 스님이 설풍기를 등에 지고 바람으로 낙엽들을 치우고 있었다. 싸리비로 낙엽들을 쓸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날려 버리니, 문명의 이기가 이곳 암자까지 들어와 스님의 노고를 덜고 있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 경내를 두루 돌아 관람을 마친 뒤,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낙엽을 날리던 스님이 우리..
미륵불의 용화세상, 죽산 쌍미륵사 올해 단풍은 유난히 색깔이 곱고 길다. 도심에서 만나는 가로수들도 한 해를 화려한 잎새들로 마무리하고 있다. 햇빛 좋은 토요일 가까운 산사를 찾았다. 여름에 갔었던 안성 죽산의 쌍미륵사. 그곳에서 궁예왕이 세웠다는 두 미륵불을 만났다. 미륵불들은 화려하게 형형 색색을 내뿜는 가을 산에 둘러싸여 오늘도 변함없이 사바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예로부터 안성 죽산은 미륵 마을이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그만큼, 이 지역은 한반도의 중원에서 세력다툼에 시달렸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죽산 곳곳에 미륵불이 산재해 있다는데, 한 번쯤은 그 미륵만을 찾는 나들이를 해보고 싶다. 1980년대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의 열풍 속에 억압받던 백성들의 희망처였다는 화순의 운주사를 갔던 적이 있었다. 산 등성이에 벌..
안성 석남사 안성에서 진천으로 넘어가는 차령산맥 줄기의 배티 고갯길 직전, 깊은 골짜기 속의 아담한 사찰이었다. 배티는 국도에서 오른쪽 샛길로 일 차선의 좁은 길을 따라 쭈욱 올라가면 서운산 오르는 길목의 작은 사찰을 만나게 되는데 이 절이 바로 석남사였다. 당초에 석남사를 알고 찾은 것이 아니라 안성에서 진천으로 가다가 길가에 서있는 천년사찰이라는 안내판을 보고는 가던 길을 멈추고 샛길로 접어들어 방문한 곳이었다. 석남사 아래 작은 공터에는 등산객들의 승용차들이 몇 자리를 남겨두었다. 석남사는 통일신라시대인 680년(문무왕 20)에 담화 또는 석선이 창건하였단다. 876년(문성왕 18) 염거가 중수하고, 고려 때에는 광종(光宗)의 왕사였던 혜거 국사가 중창하여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 숭유..
용인 와우정사 대한불교 열반종의 총본산으로 1970년 실향민인 김해근(법명 해곡 삼장법사)이 부처의 공덕으로 민족 화합을 이루기 위해 세운 호국 사찰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열반 전·대각전·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열반 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통 향나무를 다듬어 만든 길이 12m, 높이 3m의 열반상(와불상: 누워 있는 불상)이 봉안되어 있어 와불전이라고도 한다. 이 열반상은 인도네시아 향나무로 조성한 세계 최대의 목불상으로 기네스북에 기록이 올라 있다. 대각전에는 석가모니가 고행 끝에 해탈의 경지에 달함을 표현한 석가모니의 고행상이 있고, 범종각에는 제24회 올림픽 경기대회 때 타종했던 무게 12톤에 이르는 통일의 종이 있다.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세계 만불전에는 한국 불상을 비롯하여 중국·인도·미얀마·스리랑카..
능가산 내소사 오랜 지기들과의 여름 여행은 무더위 때문에 빛을 잃었다. 본디 목적지도 없이 길을 가다가 풍광 좋은 명승지를 탐승하는 것이었지만, 더위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해변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35도를 넘는 처음 겪는 이 무더위에 높은 산 계곡을 찾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 몇 번이고 다녀온 곳을 또 찾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는 곳이 그저 절집이었다. 수년 전 겨울 격포항에서 하루 묵으며 조반으로 백합죽을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었다. 그 맛 때문에 이번에 변산으로 또 갔다. 그런데, 휴가철이라서인지 격포항엔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들로 가득했고, 그 주변이 리조트 단지로 개발되어 상전벽해되었다. 할 수 없이 그늘을 찾는다는 것..
계룡산 산신당, 신원사 갑사에서 멀지 않은 곳, 시골냄새 물씬 나는 마을 끝자락에 있는 신원사를 찾았다. 신원사 주변에는 계룡산을 기반으로 한 토속 신앙촌이 형성되어 무속인들이 상당히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는 도중 무속 간판들이 많이 보였다. 입구 매표소에서 표를 사면서 관리인에게 말을 하고 경내까지 차를 타고 들어갔다. 경내에 차량들이 아무렇게나 주차되어 있는 것이 무질서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너무 더워서 걷기가 힘든 날이니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신원사는 웅장하게 외형만 키운 절집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게 아담한 절집들을 아름다운 공간에 조화롭게 배치한 그런 사찰이었다. 더구나 조선시대 나라에서 산신께 제사 지내던 중악단까지 있는 곳이면, 그 산세나 지형이 예사롭지 않은 곳으로 생각되었다. 신원사는 계..
계룡산 갑사 35년 만에 다시 찾아본 계룡산 갑사였다. 예전엔 버스 타고 털털거리며 찾아갔었는데, 이젠 여유롭게 차창밖의 전경을 바라보며 갑사로 향했다. 갑사가 있는 계룡산이 차창 밖으로 펼쳐졌다. 산 모양이 닭 볏을 닮았대서 계룡산이란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보이는 계룡산 능선이 닭 볏 같기도 하다. 뜨거운 여름철이라 절을 찾는 손님들도 거의 없는 듯했다. 한적한 숲길 속을 매미소리 친구 삼아 갑사에 들어섰다. 천왕문을 지나니 돌축대 위에 범종각이 우뚝 시야를 막아섰다. 석축 위의 대웅전 오르는 계단, 강당과 범종각. 계단 옆의 약수에서 물 한잔으로 목을 축였으나, 날씨가 더운 탓인지 시원하진 않았다. 대웅전 주변 관음전 삼성각 대웅전 앞뜰 산세가 좋아 많은 기를 품고있다는 계룡산을 배경으로 서쪽을 향해 앉은 갑사..
춘천 청평사 아침에 안개 때문에 불투명했던 시야가 한낮이 되면서 화창한 날씨로 바뀌었다. 오랜만에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을 보는 날이었다. 모처럼 어린 시절 죽마고우들과 나들이를 함께 했다. 세월은 지났지만, 말투나 성격은 변함없어 희희낙락 떠들다 보면 지나간 세월들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문득문득 집안 얘기들이 스쳐 지나갈 때는 수십 년의 세월들이 번갯불처럼, 주름진 시간들을 현실로 돌려주었다. 만나면 그저 유쾌하게 떠들며, 한 잔 술에 과거의 추억들을 떠올리고, 우리 곁에 머물렀던 시간의 파편들을 퍼즐 조각 맞추듯 재구성하는 일들이 그저 즐겁기만 했다. 간혹 우리 곁을 떠나간 친구와 흰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또 다른 친구들을 볼 때면,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 퍽이나 길게 생각되었다. 한낮의 햇볕은 정말로 따가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