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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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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샤프란 볼루까지 톱 카프 궁전 투어를 마치고 10시 30분경 수도인 앙카라를 향해 이스탄불에서 출발했다. 날씨는 흐려 이따금 가랑비가 내렸으나 옷을 적실 정도는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가랑비의 영향은 조금도 받지 않았다. 터키는 지금이 우기란다. 행여 우산을 준비하기는 했으나, 빗속을 여행한다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어서 내심 걱정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후 날씨는 조금 흐렸거나 매우 화창해서 관광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덥지도 않고 선선한 날씨여서 걷기에도 좋았다. 다만, 아침과 저녁은 좀 쌀쌀하다가, 낮이 되면 더웠다. 또, 해가 일찍 저물어 투어하는 시간이 짧았다. 버스 안에서 시간에 따라 난방과 냉방을 교대로 해서인지 건조한 탓으로 예민한 내 코가 자주 빡빡해졌다. 샤프란 볼루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톱카프 궁전 블루 모스크 관람 후 성소피아 사원 뒤편에 있는 톱카프 궁전으로 이동했다. 톱카프 궁전은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한 궁전이다. 이 궁전은 유럽의 다른 궁전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은 것이 특색이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에 의해 건설을 시작하여 1467년인 메흐메드 2세 때 완공되었다. 오스만 제국 때 술탄들의 거처로 쓰인 톱카프 궁전은 거주하는 시종과 군사, 관료의 수만 5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톱카프 궁전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보스포루스 해협의 높은 평지에 위치해 있으며 그 내부는 4개의 정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정원에는 바그다드 코슈큐, 이레네 교회 등이 들어서 있고 술탄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시실도 갖추어져 있다. 예전에 주방으로 ..
블루 모스크 1616년 오스만 터키의 14번째 술탄 아흐멧 1세가 성소피아 사원 옆에 세운 이슬람 사원이란다. 우리나라 교회만큼이나 무수한 이슬람 사원 가운데 큰 사원은 미나르가 네 개, 작은 사원은 한 개를 세우는데, 이 블루 모스크는 유일하게 미나르가 여섯 개이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술탄 아흐멧 1세는 이 사원의 건축가에게 황금 미나르를 세우라고 했는데, 돈이 부족했던 당시 건축가는 숫자 여섯과 황금의 발음이 유사한 것을 핑계로 여섯 개의 미나르 첨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여섯 개의 미나르가 있는 사원은 메카에 있는 것이 유일했는데, 블루 모스크가 여섯 개를 가짐으로써 메카의 권위에 도전하는 형국이 되어 메카의 사원에 미나르 한 개를 더 세워줬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대단한 규모의 사원이었다. 소피아 사원과 사..
성 소피아 사원 점심식사후 몇 걸음 걸어서 블루모스크 주차장을 지나 도착한 곳이 그 유명한 성 소피아 사원이었다. 사진에서 익히 보아왔기에 눈에 익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성 소피아 사원은 건물의 중심 돔 지붕 아래 지지대를 세우고 보수하는 중이었다. 이탈리아 곳곳의 웅장한 듀우모 성당이나 파리의 노틀담 성당 앞에서는 절로 탄성이 나왔었는데, 이곳에서는 이상하게도 놀라움이 없었다. 입장 후 X선 검색대까지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서야 그 웅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구불구불한 대리석 경사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 그 유명한 성모자상 등 모자이크 그림들을 보았다. 성모자상은 얼굴부분 이외의 부분이 대부분 훼손되어 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돔의 내부로 들어가니 사원의 웅장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만 왼쪽으로부..
터키 이스탄불까지 엉겁결에 다녀온 터키 여행이었다. 직항 편이었다면 수월했을 것을, 경제성을 고려해서 선택한 것이 ETIHAD(UAE) 항공 여행상품이었다. 아부다비에서 환승하는 것이었는데, 비행기 타는 시간만 총 15시간 정도였다. 환승 대기 시간 3시간을 고려하면 18시간, 인천공항 대기시간까지 합산하면, 결국 이스탄불까지 하루 종일 달려간 셈이었다. 싼 값으로 비행기를 탄다고 환승했는데, 피곤함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랍에미리트 항공기라 영화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국영화는 달랑 두 편, 그것도 아부다비행 비행기는 내 좌석의 오디오가 망가져 보지도 못하고, 10시간여를 버스보다도 좁은 기내 좌석에서 에서 뒤척거리며 갔다. UAE와 시차는 5시간, 그곳에서 이스탄불과는 또 2시간의 시차, 도합 우리와는 7시간의 시차..
산월풍정원 황산 여행의 마지막 날, 산속에서 원주민들이 산다는 산월풍정원에 갔다. 외진 저수지 옆, 산속에서 그들끼리 살아간다고 하는데, 자연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산월이란 말에 행여 오월 시대 월나라의 풍속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으나, 전혀 무관한 곳으로, 원주민의 풍속이란 이름으로 관광사업을 하는 곳이었다. 엉성하게 지어놓은 목조 건물 몇 채와 많아야 20여 명 정도의 산월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간단한 무대에서 보여준 몇 개의 춤과 불쑈, 엽기적인 차력 몇 가지 등을 보고 마을을 돌아 나왔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개인이 사유지에 민속마을을 만들고, 주민들에게 월급을 주며 운영하는 곳이라 하는데,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곳에서 주민들의 옛 풍속을 조금이라도 보았겠다는 위로로 아쉬운 ..
휘운가무 저녁 식사 후, 호텔에서 쉬다가 8 시 공연을 보기 위해 7 시 30 분 경 로비에 모여 호텔 후관으로 이동했다. 중국엔 지역마다 이런 공연이 활성화되어 있다. 관광 수익을 높이려는 정책으로 생각되는데, 많은 등장인물들을 동원하고, 화려한 무대장치에, 첨단 장비를 활용해서 관객들을 압도한다. 수년 전 상해에 갔을 때, 항주에서 송나라 시대를 재현한 송성 가무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공산주의 국가마다 정책적으로 집단 무용과 서커스 곡예를 장려했기에 그저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작년 서안에서 본 '장한가'는 그들의 자연까지 끌어들인 기발한 무대장치와 조명으로 웅장한 쇼를 연출하여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랐었다. 양귀비와 당 현종의 휴양지였던 화청궁 연못에 무대를 만들고, 뒷산을 배경으..
잠구민댁과 당월패방군 황산 등산 후 관광명소를 돌아다녔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땀을 많이 흘렸다. 게다가 등산 후유증으로 모두 뻗정다리가 되어 걸음걸이가 신통치 않았다. 옛날 휘주로 불렸던 안휘성 황산시는 인구 20여만의 작은 도시로 우리나라 신도시처럼 새롭게 발전하는 중이었다. 곳곳에 아파트와 상가를 지으며 분양하고 있었다. 또한 중국의 경제력을 보여주듯 외곽으로 뻗어가는 고속도로 건설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가는 대체로 깨끗하고 깔끔해 보였다. 시내를 오가며 창밖을 내다보다가 발견한 탑, 가이드에게 물으니 과부탑이라고 하는데, 그 유래는 잘 모르겠다. 잠구민댁 전경도, 잠구민댁은 일종의 집성촌인데, 휘주 지방의 전통적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마을이었다. 사람이 살지 않아 영화 세트장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건축물을 ..
황산 등정 3 황산등정(3) 천해에서 옥병역까지 모노레일로 천해에 올라 천해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가까이 있는 황산의 2봉인 광명정에 오르려 했으나 누적된 다리 피로 때문에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연화봉에 오르기 위해서 다리의 힘을 아껴야 할 것 같았다. 일행 중 광명정 등정을 희망하는 사람만 오르기로 하고 우리는 식당 앞에서 20여분의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광명정에 올랐던 사람들과 합류하여 다시 타박타박 산길을 걸었다. 다녀온 젊은이 말에 의하면 광명정까지는 왕복 10여분이면 가능한 거리란다. 오르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이 살짝 들었으나 앞으로의 여정이 구만리라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남은 것은 연화봉을 거쳐 옥병 케이블로 하산하는 여정이다. 오른쪽 가운데가 연화봉, 그 옆의 둥근 바위봉우리가 오..
황산 등정 2 황산 등정(2) - 서해 대협곡 입구에서 천해까지 서해 대협곡에서 모노레일 승차장까지의 등산로는 매우 가파르고 위태로운 길이었다. 바위를 뚫은 터널과 가파른 계단을 지나며 깎아지른 수많은 벼랑들과 기괴한 암봉들을 마주하며 내려갔다. 그리고는 협곡 아래에서 모노레일 카를 타고 순식간에 건너편 산정인 천해로 올라갔다. 바위를 뚫어 만든 터널, 암벽 허리에 붙여 만든 콘크리트 길과 계단들... 이 험한 산에 등산로를 만든 인민들의 노고가 대단해 보였다. 우리나라였다면 수많은 환경단체들이 필사적으로 반대하며 개발을 막았을 텐데, 중화인민공화국은 관광지마다 곤돌라에 엘리베이터에 산꼭대기 호텔까지 건설하는 것을 보면, 관광사업을 위해서라면 성역이 없어 보였다. 개발이 되지 않았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
황산 등정 1 황산 등정(1) - 운곡에서 서해 대협곡 입구까지 아침 6시에 조반을 먹고 7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8시에 황산 운곡 곤돌라 승차장에 도착했다. 우리의 등산 여정은 운곡 케이블로 등산하여 북해- 서해 대협곡으로 내려갔다가 모노레일을 타고 천해로 올라 연화봉을 거처 옥병 케이블을 타고 하산하는 것이었다. 서해 대협곡 아래 모노레일은 이번 7월에 처음 개통되어 새로운 등반 경로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아침부터 벌써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인산인해였다. 곤돌라를 타기까지 한 시간여 소요되었다. 날씨는 아침부터 뜨거워 기다리는 동안 땀이 줄줄 흘렀다. 부모 손을 잡고 따라온 어린아이들까지 있어서 몹시 시끄럽고 요란스러웠다. 목소리 큰 중국 사람들은 사람들이 있건 없건 거침이 없었다. 황산 등반지도 황산 입구..
明淸시대 휘주시장 老街 한 달 이상 지속되는 우기에다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하천이 범람하고 산사태로 도로가 끊어지거나 집들이 매몰되었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여름만 되면 피해 갈 수 없는 통과의례가 되려는지 피해가 심상치 않다. 집안 곳곳이 습기 때문에 음습하다. 비가 오니 마땅히 어디 나갈 데도 없고... 얼마전 남북 대화로 금강산 관광 이야기가 오르내리길래 금년 여름을 잔뜩 기대했으나, 통일 이전엔 아무래도 갈 수 없는 곳이 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진작부터 중국 황산을 가보고 싶었기에 금강산보다 더 장엄할 것 같은 황산행을 작정했다. 비만 오는 우기에 카메라 들고 외출해 본 기억도 가물거려서, 카메라와 렌즈에 햇볕도 쏘일 참이었다. 그러나,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지금 우리나라 날씨처럼 일 년의 삼분의 이가 흐려있다는 황..
서안 잡경 베이찡이나 상하이, 충찡, 난찡 등의 현대의 거대한 도시들의 규모는 익히 들어왔지만 진, 한, 당나라 시대의 수도였던 고대 도시 서안은 한갓 조그만 시골 도시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인구 1000만이 넘는 거대 도시였다. 다운타운엔 고층 건물들과 백화점들이 즐비하고 1미터만 땅을 파도 유물이 나온다는 시내의 곳곳은 재개발로 요동치고 있었다. 서안의 도시 개발은 외곽에 신도시를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도심 재개발처럼 옛날의 건물들을 허물고 그 터에 고층 건물을 새로 짓는 형식이었기에 곳곳에 누더기처럼 안전망을 두르고 치솟는 고층건물들이 많았다. 시안 외곽의 유명 관광지도 마찬가지였는데, 당나라 때 휴양지로 유명한 화청지 주변은 완전 공사판이었다. 어수선한 공사판이 끝나면 한결 좋은 환경의 관광지가..
대흥선사 시안 최고(最古)의 사찰로 265년부터 289년까지 축조되었다. 수나라 때 확장공사를 하고 현재의 이름을 얻었으며, 당나라 때에 이르러 크게 번성하였다. 다싱산쓰(大兴善寺)에서 처음으로 중국에 밀교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불교는 만인에게 불법을 설파하지만, 밀교는 은밀하게 가르침을 전한다. 당대에 크게 유행하였으나 주술적이고 은폐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당이 멸망한 이후 탄압 1순위로 낙인찍혔으며 점점 사라져 갔다. 지금도 절 자체는 중국 밀교의 본산으로 유명하지만 종파는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다싱산쓰는 중국에 밀교를 처음 전파한 금강지와 불공화상의 제자이자 이란 명문을 남긴 신라의 혜초스님이 불경을 번역한 곳이기도 하여 한국인 여행자에게는 더욱 의미가 깊다. 절밖은 재개..
흥경궁 공원 당 현종과 양귀비의 휴양지이다. 당나라의 최성기를 이룩한 현종이 즉위 전에 살았던 싱칭궁을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현종은 즉위 2년 만인 714년 저택을 개축하여 싱칭궁이라 이름 붙이고, 양귀비와 더불어 살았다. 현재 당대의 건물은 거의 없고 궁 건물의 초석 부분만 남아 있으며, 이백의 시로 유명한 모란정원 선샹팅[深香亭, 침향정]이 복원되어 있다. 귀국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쉬러 들어간 곳이었는데, 호수를 둘러싼 주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웠다. 놀이공원으로 꾸며져 호수 주변 곳곳에 어린이용 위락시설들이 산재해 있었다. 연못가엔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들이 머리결을 날리는 가운데, 고풍스러운 옛 건물들이 있어 볼거리도 많았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은 느린 걸음으로 대략 40분 정도로 바람을 쐬며 ..
한양릉 한양릉(汉阳陵은 한(漢)의 네 번째 황제인 경제(景帝) 유계(刘启)와 황후가 합장된 능원(陵园)이다. 센양시[咸阳市] 웨이청취[渭城区] 정양전[正阳镇] 장자완[张家湾]에 위치하며, 시안시[西安市]의 북쪽에 있다. 능원(陵园)의 면적은 약 12㎢이다. 제릉능원(帝陵陵园), 후릉능원(后陵陵园), 능묘(陵庙), 배장묘원(陪葬墓园), 형도목지(刑徒墓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우천례팅[文物陈列厅]을 참관할 수 있으며, 현재 한양링[汉阳陵]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새로 세워진 디링와이짱캉바오 후잔스팅[帝陵外葬坑保护展示厅]이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현대화된 제왕릉(帝王陵)에 위치한 지하박물관(地下博物馆)으로서 총 건축면적이 7,865㎡이며, 중점적으로 전시되고 있는 81개의 외장갱(外葬坑) 중 10개가 이곳에 ..
진시황릉 통일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의 능묘. 즉위 직후부터 대대적으로 공사를 시작해 높이 79m, 동서 475m, 남북 384m에 둘레가 무려 25㎞에 이르는 거대 무덤, 진시황릉(秦始皇陵)이 축조되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무덤으로는 세계 최대 크기로, 1987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장 37년이라는 시간과 70만 명에 이르는 장인의 노동력이 투입된 능묘는 살아생전 진시황의 야심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다. 당시 수도였던 셴양을 축소한 묘의 내부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하며 수은으로 된 시내가 흐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영생을 꿈꾸던 진시황의 소망을 담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인어기름(고래나 바다표범의 기름으로 추측됨)으로 만든 초가 불을 밝히고 있다. 도굴꾼의 잠입을 막기 위해 진입을 시도하..
화청궁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동교(東郊)의 린퉁현[臨潼縣] 남쪽, 리산[驪山]에 있는 온천이다. 중국 시안. 시안에서 35㎞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온천수가 풍부하여 주나라 때부터 무려 3천여 년 간 온천 휴양지로서 유명하다. 서주(西周) 말기에 주유왕(周幽王)은 지금의 화칭츠[华清池]에 리궁[骊宫]을 세웠다. 당(唐) 때인 644년에는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탕취안궁[汤泉宫]을 지었고 현종(玄宗)이 이를 증축한 뒤 화칭궁[华清宫]이라 개칭하였다.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杨贵妃)의 연애시절에는 이곳이 매우 번성하였고, 당시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가, 안사의 난(安史之乱) 이후로 화칭츠[华清池]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화칭츠 온천수의 수온은 43℃ 이다. 풍부한 광물질과 미량의 원소가 ..
장안성 중국 당대(唐代)의 국도였으며 현재의 서안을 포함하는 지역. 수의 개황 2~4년(582~584)에 건설한 대흥성을 당이 계승하고 충실하게 완비하여 장안성이라 개칭했다. 성벽은 북 9570m, 서 8470m의 장방형이고 동남 모서리 만이 남으로 돌출, 동은 부용원, 서는 곡강지. 북성벽에 연하여 중앙부에는 궁성이 있고, 그 남쪽에 황성(정부관청)이 있었다. 궁성은 태극궁(수에서는 대흥궁), 중앙 부분의 전전(前殿)을 태극전(수에서는 대흥전)이라 칭하고 농부에 동궁, 서쪽의 남북에 액정궁과 태창을 배치했다. 태종 때, 동북의 성 밖에 대명궁(東內), 현종 때 성안의 동쪽에 흥경궁(南內)이 설치되고 태극궁(西內)과 합하여 ‘3대내’라 부른다. 황성에서 남으로 달리는 주작대로에 의하여 서쪽의 장안현과 동쪽의 함..
대명궁 대명궁은 당나라 3대 궁전인 태극궁, 흥경궁, 대명궁 가운데서 가장 크고 웅장한 궁전으로 원명은 영안궁이란다. 당태종은 아버지인 당고조에게 효도를 하기 위하여 공사를 시작했는데, 대명궁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연의 죽고말자 대명궁의 공사는 중지되었다. 그 후 당고종이 공사를 계속하여 이듬해에 대명궁에 입주하고 집정하였다. 이로써 대명궁은 대당제국의 새로운 정치중심으로 되었다가 건녕 3년(896년)에 전란으로 인하여 훼손되었다. 대명궁의 둘레의 길이는 7.6 킬로미터, 면적은 3.2 평방키로메타로서 북경 자금성의 4 배, 축구장 500개의 면적이란다. 대명궁은 총 11개의 성문이 있고 동, 서, 북에는 협성이 있다. 남쪽에는 세 겹의 성벽이 있고 성밖의 단봉문거리는 넓이가 176미터로서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제..
대안탑 광장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 허핑먼[和平門] 밖의 대자은사(慈恩寺) 경내에 있는 전탑(塼塔). 원래 명칭은 자은사탑(慈恩寺塔)이다. 652년 당(唐)나라 고종(高宗) 때 건립된 4각형의 누각식 탑이며, 명(明)나라 때 외벽에 한 겹의 벽돌을 더 둘러쌓았다. 모두 7층이며, 전체 높이는 64m이다. 천축(天竺)을 다녀온 삼장법사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관하기 위하여 석탑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자재와 비용을 구하기 어려워 표면만 벽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채운 토심전탑(土心塼塔)을 세웠다. 이 탑은 견고하지 못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졌고, 701년에서 704년 사이에 측천무후의 명으로 허물고 다시 건립되었다. 탑신(塔身)은 1층 이상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둘레가 급격히 줄어든다. 탑..
아방궁과 대당부용원 아방궁은 西安 서쪽에 있었다는 진시황의 궁전으로 아방촌(阿房村)이라는 한촌(寒村)에 있다. 시황제는 함양궁(咸陽宮)을 비롯하여, 그의 손으로 멸망시킨 육국(六國)의 궁전을 본뜬 육국궁 등 많은 궁전을 지어 미인과 즐겼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셴양[咸陽]의 대안(對岸)에 더 큰 궁전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전에 지은 궁전이 아방궁으로, 규모에는 여러 설이 있으나 동서 약 700m, 남북 약 120m에 이르는 2층 건물로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건설에는 죄수 70만이 동원되었으나 시황제의 생전에는 완성되지 않아 2세 황제에 의해 나머지 공사가 진행되었다. 셴양 부근에 세워진 수백에 달하는 궁전군(宮殿群)은 2층으로 지은 복도와 담장 때문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길로 종횡으로 이어져 아방궁에서 위..
섬서성 역사 박물관 무더위 절정기에 지치고 지친 몸으로 서안행 야간 비행기를 탔다. 중국 동방항공의 자그마한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서안에 도착했는데, 그곳도 더운 건 마찬 가지였다. 중국 내륙의 한 복판이라 날씨는 우리나라보다 더 엉망이었다. 4일 밤을 머무는 내내 푸른 하늘은 하루도 보지 못했다. 뿌연 먼지에 뒤덮여 안개 낀 것처럼 탁한 하늘빛만 바라보았다. 그나마 저녁 무렵에만 약한 푸른빛이 하늘가에 감돌 뿐이었다.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의 수도로 고도로만 알고 있었던 서안은 예상과 달리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져 꿈틀거리는 거대한 도시였다. 거대한 성벽들과 치솟은 고층 빌딩... 여기저기 곳곳에서 진행되는 빌딩 신축 공사는 서안이 과거의 도시가 아니라 젊은 도시로 발돋움하는 신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