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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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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에서 무한까지 날씨가 참 얄궂었다. 장가계를 떠나는 날, 비가 그치고 구름이 높게 덮인 흐린 날이었다. 멀리 보이는 천문산 위에도 구름이 활짝 높이 떠 있어 산 전체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하루 더 머물러 천자산에 다시 오르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장가계에서 무한까지 일곱 시간을 버스 창밖으로 농촌 풍경을 감상하며 갔다. 여정의 전 지역이 노오란 유채꽃이 만발하여 아름답고 평화스러웠다. 때로는 도시의 솟아오르는 고층 아파트들을 보며 중국의 현대화를 느낄 수도 있었다. 이제는 자전거가 아닌 수많은 자동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운 시가와 고층빌딩들이 즐비한 현대의 도시들이었다. 장가계에서 무한에 이르는 논밭엔 3모작이 가능하다는데, 가는 곳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우리를 태우고 다녔던 ..
천자산과 원가계 보봉호 뱃놀이 이후 점심을 먹었다. 오후엔 다행히도 비가 그쳤다. 그런데, 불길하게 산봉우리 위엔 구름이 감돌고 있어서 천자산 등정이 염려스러워졌다. 셔틀버스 환승장에서 천자산 케이블카 승강장까지는 그리 먼 길이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데 산 정상에는 구름이 뒤덮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가이드 말대로 신선놀음이나 할밖에... 천자산 위에서는 안개만 바라보며 셔틀버스를 타고 원가계까지 40여분 이동했다. 좁은 2차선 벼랑길을 안갯속에 달리는 것이 위태로워 보였으나, 운전기사는 노련하게 맑은 날 평지를 달리 듯 안갯속을 뚫고 나갔다. 차창 안에 김이 서려 수시로 창문을 닦으며 창밖을 보았지만, 벼랑길을 지나다가 밭뙈기도 지나쳤는데 구름 안개 때문에 지형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보봉호 유람 새벽에 창밖을 보니 어제보다 더 굵은 비가 내렸다. 구름이 많았어도 서운할 판인데 세찬 비가 내리니, 이번 장가계 여행은 아쉬움만 안고 돌아갈 것 같다. 늦가을 동유럽에 갔을 때 여행기간 내내 햇볕 한 번 구경 못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던 기억이 새로웠다. 투어의 시작은 어김없이 7시 30분에 시작했는데, 오전 탐방지는 보봉 호수였다. 산정 호수인 보홍호 입구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구불구불 위태로워 보이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들어갔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산정의 모습을 보고 인공호수를 만들어 관광지로 개발했다고 하는데, TV 프로그램에서 배를 타고 한 바퀴 돌며 노래자랑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보봉호 입구 셔틀버스 환승장 부근 보봉호 선착장 유람선이 가까이 다가서면 오른쪽 기슭에서 원주민 총각이..
십리화랑 오전 황룡동굴 투어 후, 점심을 먹고 천자산 지역의 십리화랑을 찾았다. 천자산이 있는 곳은 장가계 무릉원인데 이곳에 가기 위해서 셔틀버스 터미널에서 카드를 구입하여 지문을 입력시켜야 했다. 무릉원 안에는 셔틀버스만 운행한다. 십리화랑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이었는데 터미널 부근 계곡에 둑을 쌓아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차창 밖으로 기묘한 산봉우리들이 구름과 숨바꼭질하며 기이한 자태들을 뽐내고 있었다. 모노레일을 타고 십리화랑 안으로 들어서자, 기암 봉우리들이 모노레일을 따라 마치 중국 산수화를 보는 듯 운무에 휩싸여 늘어서 있었다. 신비한 풍경들을 보며, 그치지 않는 비 때문에 빗물이 카메라와 렌즈 경통에 떨어져 스며들었다. 빗물을 피하려 애써보았지만 내리는 빗물을 모두 막을 순 없었다. 맑은 날이었다면,..
황룡동굴 새벽녘 잠이 깨어 호텔 창밖을 보니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일정이 염려스러웠다. 아침 식사 후 7시 30분 출발해서 비가 와도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황룡동굴로 갔다. 우산을 쓰고, 혹은 우비를 입고 나섰는데, 입구에서 셔틀전동차를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많아 걸어서 동굴 입구까지 갔다. 통로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중국인들이 어찌나 담배를 피워대는지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다. 길거리든 번화가 광장이든 끊임없이 올라오는 담배연기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20여 년 전 우리나라도 버스 안에서까지 담배를 피웠으니, 골초였던 내가 흉볼 처지는 아니나, 담배의 유해성이 널리 알려진 오늘날 중국 정부차원에서 삼가도록 계몽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황룡동굴은 크고 넓었다. 영월과 삼척, 그리고 제주의 만장굴 ..
장가계 천문산 천문산은 장가계 시내 어디에서나 빤히 올려다 보이는 해발 1300m의 높은 산이다. 수백 년 전 지진으로 산 꼭대기가 무너져 산의 어깨를 관통하는 높이 131m, 폭 50m, 깊이 60m의 구멍이 생겨 천문산으로 불린다. 천문산 정상까지는 2005년 8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세계 최장 길이의 7.45km 케이블카를 타고 35분 정도 올라간다. 천문산 투어는 케이블카 종점역으로부터 벼랑 곁에 붙여 만든 잔도를 따라 서쪽으로부터 동편으로 한 바퀴 걸어 돌아오는 것인데, 천문산이 가장 높기 때문에 잔도밖에 고개 숙인 주변의 빼어난 봉우리들을 보는 것이 투어의 압권이다. 공교롭게 우리가 오른 날은 산 정상에 구름이 감돌고 있었다. 산정에 오르는 것은 케이블카를 타고 가기 때문에 힘든 등정은 아니었다. 케이블카 승..
장가계 대협곡 오전 7시 30분 출발, 장가계 대협곡 탐방. 날이 잔뜩 흐렸다. 3월부터 11월까지 우기라나. 산행 중 가장 염려스러운 것이 비와 구름이다. 산정에 올라섰을 때 구름만 만나면, 등정의 보람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산 위에 오르는 것은 평지에서 보지 못하던 아랫 세상을 조감하며 성취감을 맛보기 때문인데 구름 안갯속에 갇히다 보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안갯속에서 등정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동안 산을 오르며 산정에서 구름과 안개 때문에 허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자연 조바심이 일게 된다. 더구나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올랐던 기대감이 한순간에 헛수고가 되기 때문에 실망감이 보통 큰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역만리 이곳에서 또 허망함만을 느끼고 돌아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기어들었다..
장가계 가는 길 아바타를 보고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장가계였다. 장가계 풍경과 유사하다는 산수천하제일갑이라던 계림의 여운이 아직까지 삼삼했는데, "뭉쳐야 뜬다"는 TV 프로에 보여준 기이한 산봉우리들의 풍경을 보고는 마음이 돌아섰다. 대부분의 한국인들 중국 여행 첫출발이 장가계라는데, 늦기는 했지만 TV 풍경들을 상상하며, 깜깜한 새벽 네시 반에 집을 나섰다. 비행기 타는 과정은 너무 지루하다. 간식거리로 아침을 때우고 공항에서 두 시간여를 기다리다 9시경 비행기에 올랐다. 단체비자라 비자발급번호대로 줄을 서서 탑승했는데, 초등학생도 아니고 기분이 묘했다. 더구나 사드 배치 문제로 반한감정이 고조되고 있다는 중국 소식에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장가계 예약 후 중국의 유치한 짓거리에 여행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예약금 때문에..
계림잡경(桂林雜景) 계림에서 들렸던 몇 개의 공원들, 공원마다 매표소가 있어서 입장료를 구입해서 들어간다. 그 덕인지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계림의 특징은 바위산이라 바위산 아래 주로 공원이 형성되어 있었다. 바위산 꼭대기에 대부분 정자나 탑을 지어 올렸다. 바위산 아래엔 동굴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 자연 동굴 속에는 불상들을 모셔 놓았다. 무엇보다도 계림을 제대로 즐기려면 자연 속에서 수려한 산수들을 마주 대하며 호연지기를 느껴보는 트레킹이 제격일 것 같다. 우산공원- 우제묘(우황제를 제사하는 묘당)가 있는 공원으로, 우제묘에서 발원하면 영험이 좋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제 묘당 옆의 5층목탑 우제묘당 입구 묘당 주변 곳곳에 걸린 소망성취 염원을 담은 빨간 부적들... 목탑 위에서 보는 풍경 목탑 안의 ..
복파산 전망대 사방에 널린 것이 삐죽삐죽 제멋대로 솟은 산봉우리들이었다. 대부분이 끼리끼리 모여서 연봉들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따금 독불장군처럼 외따로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것도 있었다. 도심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공원들을 만들었다. 복파산도 그중 하나였는데, 옛날 복파란 장군이 무예를 연마했다고 해서 복파산이었다. 이강가 도시의 한가운데 외봉으로 서있기 때문에 도시의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높지 않은 산정의 전망대에서 계림 시가의 풍경을 한 바퀴 비잉 돌아볼 수 있었는데, 서편에서 북쪽까지 도시의 반을 계림 특유의 산봉우리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있어 산수화처럼 아름다웠다. 겹겹이 둘러친 뒤쪽 연봉들은 마치 앞선 봉우리의 그림자처럼 보여서 농담이 절로 그려진 중국 산수화 그 자체였다. '계림이강국가풍..
요산풍경(堯山風景) 기이한 산과 맑은 물의 離江(이강)이 흐르는 광서성 계림시, 그 기묘한 산수 속에 사람들이 모여 살며, 그 산자락 아래에 묻혀 영면하고 있었다. 수려한 산수 속 대숲 근처에서 무림의 고수라도 불쑥 나타날 것 같은 기이한 풍경들에 내내 압도되며 신세계를 경험하는 듯했다. 계림 시내에서 동쪽으로 10여 km 거리의 요산은 해발 900여 미터가 넘어, 계림 부근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계림지역의 산들은 대부분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인데, 요산만은 특이하게도 흙이 주성분인 토산인 것도 특이하다. 주나라 때 산 위에 요제 묘를 만들었다고 해서 요산이라 한단다. 가이드 말로는 옛날 요임금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해서 요산이라는데 가이드 설명은 언제나 믿거나 말거나였다. 요산을 방문하기로 한 날 비가 내렸기 때문에 ..
요족 마을과 龍勝(룽성) 온천 양삭에서 계림으로 돌아와 동포 식당에서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었다. 모처럼 콩나물과 무채 등 나물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비벼서 밥을 먹으니 기운이 돋는 것 같았다. 반주로 계림의 전통주라는 50도짜리 삼화주를 한 잔 했는데, 맑고 깨끗했다.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계림에서 북쪽에 있다는 용승 온천지구로 출발했다. 예전 강원도 산골 못지않은 험한 길이었다. 구불구불한 왕복 2 차선 길에서 아슬아슬한 추월을 반복하며 세 시간 이상을 달려 온천지구 가가운 곳의 요족 마을에 들렀다. 씨족촌이라는 요족 마을은 큰 길가에 가까웠다. 마을은 개방된 관광마을로 원주민들은 이미 낯가림이나 쑥스러움이 없었다. 요족 여자들은 간단하게 그들의 공연을 여행 그룹마다 보여 주었다. 그리고 관광객들과 섞여 손을 잡..
양삭 거리와 공연 풍경 하루종일 비가 끊이지 않고 내렸다. 우산을 썼음에도 옷이 축축하게 젖어 한기가 스며들었다. 우리나라 7-80년대처럼 곳곳이 공사판이었다. 양삭은 계림 남쪽에 있는 도시이다. 산수의 아름다움은 계림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그러나 수려하다는 산수풍경도 공사 중인 크레인과 가림막, 공사 중장비들 때문에 빛이 바랜다는 느낌이었다. 모든 게 우중충한 가운데 길가에 무질서하게 세워진 상가의 보수용 버팀목까지 난립하고 있어서 그 사이를 헤집으며 번화가인 서가시장까지 걸었다. 비 때문인지 시장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진열된 상품들은 만두, 두부 등 먹거리들과 잡화 중심이어서 눈으로 구경만 하며 시장 끝부분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마침 산수화 파는 가게가 있어 들어가 한참 구경을 했더니 주인이..
상공산 풍경 양삭을 떠나 계림으로 떠나는 길에도 간간이 비가 내렸다. 양삭 시내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는데, 구불구불한 산길에다 좁은 농로라 뒷자리에 앉았던 나는 차멀미에 시달렸다. 차창에 서린 뿌연 김 때문에 풍경도 볼 수 없어 더욱 답답했던 것도 원인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가파른 산 경사 면마다 다랭이밭을 일구어 낑깡을 심었는데, 냉해를 방지하기 위해 나무마다 비닐을 덮어 씌웠다. 골짜기를 넘고 넘으며 도착한 곳이 상공산. 주차장으로부터 높이 50여 미터 정도 되는 가파른 산이었는데 꼭대기까지 계단을 통해서 올라갔다. 한국인들이 개발한 관광명소라는데, 유명한 탓인지 계단 입구에 매표소까지 만들었다. 우리나라 도립공원쯤 될라나, 아무튼 인민들이 평등하고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할 공산주의 국가임에도 중국인들의 상업..
양삭 우룡하 뗏목 체험하러 간다고 해서 여울진 냇가 정도로만 생각했던 우룡하(遇龍河)였다. 용들이 만나는 하천이란 뜻인데, 두 개의 하천이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두 하천가의 신비롭고 기이한 산맥 아래로 냇물을 따라 용들이 꿈틀거리며 내려올 듯한 형상이었다. 더구나 비가 내리는 가운데 구름 안개들이 산 중턱에 걸려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신비로움은 더했다. 굵은 대나무들을 엮은 뗏목은 지붕까지 씌우고 간이 의자를 들여, 비와 햇볕까지 가릴 수 있었다. 올해 63세라는 뱃사공 영감님은 능숙한 솜씨로 힘들이지 않고 굵은 대나무로 강바닥을 긁으며 1km 정도의 거리를 다녀왔다. 바깥 풍경의 아름다움에 잠시도 한눈을 팔 틈이 없었다. 짧은 거리의 물길이었지만 수려한 풍경들로부터 떠나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한 뿌리에서 나..
양삭 세외도원 계림에서 양삭으로 가는 길은 시멘트 포장이었는데, 이음새마다 깨지고 파여서 비포장도로와 진배없었다. 비까지 내려 어수선한 풍경에 흔들리는 10인승 RV는 몹시 불편했다. 작은 차창에다 김까지 서려 바깥 풍경마저 볼 수 없어 더 답답했었다. 이윽고 세외도원에 도착했는데,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세외도원(世外桃源)이란 세상밖에 있는 무릉도원이란 뜻으로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흉내 낸 유료 테마공원이었다. 아름다운 산수를 배경으로 작은 거룻배를 타고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로 테마공원을 만든 것까지는 발상이 좋았는데, 요상한 복장을 한 소수민족들을 내세워 리엑션하는 모습들은 유치해 보였다. 인위적인 장치 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보는 사람 마음이 편할 듯했다.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는 ..
계림 관암동굴 유람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 관암 동굴을 찾았다. 석회암 지대답게 동굴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영월 정선 삼척 지방에 동굴이 발달한 이치와 같다. 관암 동굴은 그 크기가 대단해서 동굴이 깊고 길뿐만 아니라 그 안에 폭포와 하천까지 갖추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동굴 입구 좌우엔 술동이들을 벌여두고 상인들이 작은 빼갈 잔에 한 잔씩 시음을 권하며 술을 팔고 있었다. 사회주의 나라답지 않게 모든 게 상업화되어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이윽고 모노레일을 타고 5분여 진입했는데, 구불구불한 계단을 돌아 내려가니 작은 거룻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거룻배를 타고 깜깜한 동굴을 뱃전에 비치된 작은 LED 전등으로 전방을 비추며 전진해 갔다. 어둠 속에 배를 타고 지나는 동굴 관람은..
계림 이강유람(離江遊覽) 70년대 이연걸의 "소림사"를 보고 그의 화려한 액션보다는 수려한 계림의 풍경에 흠뻑 반했었다. 줄거리와 등장인물들은 거의 생각도 나지 않지만, 아름다운 산들이 이어지는 강변을 무대로 이연걸과 어린이들이 뛰노는 모습은 지금까지 내 눈에 삼삼하다. 그동안 벼르고 벼르었던 그 계림을 친한 벗들과 함께 방문했다. 여행사의 4박 6일 상품에 계약하고 출발일을 기다리는데 다섯 명이 함께 가게 됐다는 말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었다. 이합집산으로 복작되는 패키지여행이 다섯 명으로 출발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 명도 가능하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이동할 때 작은 차로 움직였기에 불편하긴 했지만 기다리거나 대기하는 시간이 없어 편했고, 여행 내내 가족 같은 분위기여서 오히려 ..
암스텔담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투어 후 한국 식당에서 곰탕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무늬만 곰탕이었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온전한 우리 음식을 기대한 것이 애시당초 잘못된 것이었지만 명색이 한국식당이라 실망이 컸다. 점심 후, 암스텔담 중앙역과 담락 거리를 관광하고 암스텔담 중앙역 부근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탔다. 방조제를 만들어 건설한 암스텔담은 육지가 해수면보다 낮고 사방이 수로로 얽혀 있는 운하의 도시이다. 2차 대전 당시 방조제를 파괴하겠다는 히틀러의 협박에 그만 싸울 생각도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단다. 베니스만큼이나 많은 운하가 있지만, 베니스보다 육상교통이 발달한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운하 승선요금은 성인 9유로였는데, 우리는 가이드에게 30유로씩 지불했다. 그도 남는 게 있어야 움직이는 거니까, 선택..
잔세스칸스 퀼른에서 서둘러 일찍 출발했다. 아침식사하러 나올 때, 짐을 꾸려 체크아웃까지하고 7시에 호텔을 떠났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 다른 때였다면 아쉬웠을 텐데, 이번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루하게 버스만 타고 다닌데다가, 비맞고 추위 속에 떨며, 밤풍경을 많이 본 여행이라, 뇌리 속에 각인된 인상들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친절하지 않은 가이드의 퉁명스러움이 시종일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인천부터 우리를 인솔했던 가이드는 친절하게 답변하는 때가 없었다. 잦은 해외 인솔자로 유럽시간으로 산다는 중년의 가이드. 추위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행들을 위해 수고하기도 했지만, 생활에 지친듯한 그녀의 무표정과 퉁명스러움이 귀국할 때까지 부담스러웠다. 네들란드 국경으로 접어들면서 차창밖으로 파란 하늘과 태양을 보았다..
쾰른대성당 로렐라이 언덕에서 내려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박지인 쾰른으로 갔다. 오후 네 시 사십여분 경 쾰른에 도착했는데 사방이 벌써 사방이 어두워졌다. 마지막 숙박지라며 가이드가 대성당 부근의 귀국선물 상점으로 안내했다. 가이드 말로는 쌍둥이표 칼이나 휘슬러 압력솥 등이 좋은 제품으로 추천할 만하단다. 여행지에서 선물 구입은 거의 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큰맘 먹고 밥솥 하나 장만하려고 종업원에게 휘슬러 제품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중국인 상점이어서인지 북적이는 손님들도 대부분 중국인들로, 한국인보다 많았다. 나는 해외에 나갔을 때, 이런 면세 상점이라는 선물가게를 신뢰하지 못한다. 더구나 한국인도 아닌 중국인 상점은 더더욱 그랬다. 밥솥 값도 국내 시세보다 싼 것이 아니어서 모처럼 밥솥 ..
라인강과 로렐라이 이른 아침 버스는 로렐라이 언덕을 향했다. 안개처럼 뿌리던 비는 눈으로 변해, 도로변 나뭇가지에 눈꽃이 활짝 피었다. 달리는 차속이었지만 유럽의 설경을 살짝 맛본 성싶었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국도 중간쯤에서 길 따라 이어진 라인강을 만났다. 강폭은 그리 넓지 않으나 골짜기 사이를 흐르고 있어서 깊어 보였다. 강 따라 배들이 끊임없이 다녔는데, 바로 라인 운하였다. 강의 양편에 도로와 철로가 있었고, 철로를 통한 화물의 물동량이 매우 많은 듯했다. 꼬리를 물고 화물차들이 쾌속으로 달려 다녔다. 이따금 승용차들을 가득 실은 화물기차들이 지나가기도 해서, 비싼 독일차들을 떼로 보는 눈호강을 누리기도 했다. 독일 운하를 본떠 우리나라에서 4대 강, 대운하 토목공사를 벌여 수십조를 쏟아부었다는 것인데, 참으로 ..
뉘른베르크 레겐스부르크에서 뉘른베르크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시간은 5시 20분경. 이미 사방을 어두웠다. 버스에서 내려 가이드를 따라 어두운 밤길을 걸어 프라우엔 성당 광장으로 갔다. 이곳 성당 광장에도 역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흥청거리고 있었다. 광장의 인파들이 뒤엉켜 있어서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켓에 전시된 상품들은 먹을 것, 크리스마스 장식용품, 의류, 모자와 같은 잡화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장사가 되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추운 날씨에 간간이 비까지 내려, 흥청거리는 풍경도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더러는 신명 난 것처럼, 기념품을 사며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따뜻한 곳이 더 간절했을 뿐이었다. 성당 광장을 떠나 ..
레겐스부르크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같은 나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의 주범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다. 오스트리아 언어 역시 독일어이다. 오스트리아 짤즈킴머굿에서 두 시간 삼십 분여 거리의 레겐스부르크, 독일 지명에 부르크가 붙는 지역은 성이 있는 도시이다. 우리나라가 산성의 나라인 것처럼 독일 역시 수많은 성들이 산재해 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성으로 된 곳도 많다. 이곳으로 가는 도중, 가이드는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전했다. 레겐스부르크는 인구 10여만으로 중세기 건물들이 많은 민속촌 같은 작은 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습을 받았음에도 별다른 손상을 입지 않았단다. 지금은 가림막으로 가려져 보수 중이었지만,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라는 슈타이네르가 있다. 이 다리..
잘츠부르크 어둠이 내린 후에 볼프강 호수의 짤즈캄머굿 할슈타트를 떠나 오후 6시경 깜깜한 어둠 속에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시내투어를 시작했는데, 어둠 속에 낯선 길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에 인상적으로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다. 철 늦어 떠난 겨울여행을 후회하면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눈앞에 펼쳐진 모습들을 담아보려 했지만 너무 어두워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름답다는 잘츠부르크 시가지도,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라는 미라벨 정원도 꿈속의 장면들처럼 어둠 속에 스쳐 지나고 말았다. 동유럽의 겨울은 어둡고 지루하다. 4월까지 우기(雨期)라 햇빛 보기 어렵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하얀 피부는 햇빛을 보지 못한 환경의 결과라 싶다. 북유럽의 경우엔 겨울 동안 햇빛보기가 더 어렵겠지만....
짤츠캄머굿 동유럽의 오후는 너무 짧았다. 알프스의 물이 담긴 볼프강 호수를 돌고 돌아 짤츠캄머굿에 가장 아름답다는 할슈타트에 도착했으나 오후 네시임에도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할슈타트 나루가에서 호수의 경치를 감상하며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산 아래 마을들은 고즈넉한 풍경 속에 작은 등불들이 켜지면서 어둠 속에 묻혀갔다. 마을의 골목 길가의 아기자기한 풍경들을 구경하다 시간에 쫓겨 버스에 올라, 왔던 길을 되돌아 잘츠부르크로 갔다. 짤쯔부르크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아침 다시 짤츠캄머굿으로 돌아와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은 볼프강 호숫가 마을들을 스치면서 운항하다가 호수 건너편 장크트 길겐 선착장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장크트 길겐은 모차르트 어머니가 살던 마을로, 마을이 소박하고 아담하며 아름..
비엔나 브라티슬라바에서 비엔나까지는 가까운 거리로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비엔나 중국식당에서 흰밥과 제육볶음, 김치찌개로 저녁식사를 했는데, 제법 입맛에 맞았다. 중국사람들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세계 곳곳 구석구석까지 중국식당이 없는 곳이 없다. 일행들의 일부는 비엔나 음악회 관람을 위해 중간에 내리고 우리는 호텔에 들어와 곧바로 취침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지만 새벽에 깨는 패턴은 여전했다. 피로감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본격적인 비엔나 투어를 하는 다음날에도 연일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투어길에 나섰는데, 음악의 도시 비엔나임에도 화려한 도시 이미지와는 달리, 비 내리는 겨울 날씨라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여서 그리 흥이 나지 않았다. 비엔나의 밤거리 첫코스로 방문했던 쉔브룬 궁전. 합스부르크 왕가의..
브라티슬라바 빗속이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부다페스트를 떠났다. 생전에 다시 돌아볼 기약은 없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유서 깊은 도시를 불과 몇 시간 훑어보고 떠나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야말로 점만 콕콕 찍고 다니는 장거리 여행에 회의감이 들었다. 경제적이고 편하긴 하지만, 떠나고 보면 그저 미련감만 잔뜩 떨구고 오기 때문에 여행의 감동이 반감되고 만다. 게다가 행여 친절하지 않은 가이드를 만나게 되면 여행이 즐겁지 않고 불쾌하고 지루해지기도 한다. 연일 계속되는 장거리 버스 이동에 종아리와 발등이 부어오른다. 시차에 적응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숙소에 도착하면 그냥 쓰러져 코를 골며 잠드는 것은 그만큼 피곤하다는 것일 게다. 새벽녘에 깨어 뒤척이다 버스 안에서 잠들기도 하지만, 점차 익숙한 여행자의 모습이 되어 가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