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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이 흘러 만든 협곡,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추워진 날씨덕에 하늘이 쾌청하다. 부지런히 배낭을 챙겨 강원도 철원으로 떠났다. 2021년 개장한 한탄강주상절리길을 비롯해, 주변의 명소를 돌아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서울 순환도로에서 차가 엄청 막혔다. 순환도로를 지나 토평 TG를 나갈 무렵 우회전 길에서 승용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앞을 스쳐 지나갔다. 자칫 대형 사고가 날 뻔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난폭 운전자, 음주 운전자들이 늘어간다. 조심 운전을 함에도 점점 운전이 힘들어진다. 내비의 도움을 받으며 포천 고속도로를 타고 신북 톨게이트까지 막힘없이 달려갔다. 신철원에 접어들어 삼부연 폭포를 들려 신철원 읍내로 나오니 어느새 열두 시가 넘었다. 식당을 수소문해서 국..
낙엽의 계절 영흥공원 주변으로 동네 산책을 나섰다가 나뭇잎 색깔이 고와 핸드폰으로 저무는 가을 풍경들을 몇 장 찍었다. 나무마다 잎이 지는 모양새가 각양각색이다. 어떤 나무는 변색도 제대로 못한 채 시들어 쭈그러져 잎사귀조차 떨구지 못하고 있었고, 또 어떤 것은 제대로 예쁘게 물든 나무 틈에서 아직까지 시퍼런 잎을 바보처럼 지니고 있었다. 나무들도 계절을 변화에 적응하는 모습이 제멋대로인 걸 보면 우리네 인생사와 다를 바 없나 보다. 길고 더웠던 2024년도 막바지로 치닫는다. 더워서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여름을 씁쓸히 기억하며 금년 겨울과 내년 여름의 변화를 상상해 본다. photo by samsung galaxy ultra s21
동구릉의 깊은 가을 흐린 듯하더니 햇살이 퍼지자 청명한 가을 하늘이 펼쳐졌다. 금년 8월 10일 동구릉역이 개통되었단 소식에 8호선 전철을 이용하여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터라 바삐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간 동구릉은 3-4차례 방문한 터라 그 풍경들이 눈에 선했지만, 아홉 능이나 있다 보니, 헷갈려 모두 기억되지 않았다. 조선 태조의 건원릉과 문종의 현릉, 선조의 목릉, 영조의 원릉 정도였다.  지도 검색 결과 동구릉역에서 동구릉까지는 800여m로  걸어서 10여분 정도 거리였다. 3번 출구로 나와 직선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차량들의 통행량이 대단했다. 동구릉 안에 들어서자 시내에서 볼 수 없는 가을빛이 수려했다. 떨어져 날리는 나뭇잎 사이로 숲길을 걸으며 복잡한 세속의 시간들을 잊을 수 있었다. 왕릉을 세며 가다가 건원릉을..
수원 팔달산 성신사와 정조대왕상, 화서문 주변 오랜만에 팔달산 순환도로를 걸었다.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시조의  구절은 맞는 말이 아닌 듯싶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란 말엔 수긍이 간다. 십 년은 길고 요즘은 오 년 정도로 시간을 줄여야 할 것 같다. 십 년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이다. 20대 일이 엊그제 같이 생생한데, 세월은 무심하다. 옛날의 모습을 반추하며 그 길을 걸었다. 팔달문에서 성벽을 따라 오를 때 중턱에서 만나던 홍난파 노래비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친일 행적이 거론된 후, 옛날보다 덜 감동스러웠지만 그런대로 반가웠다.   순환로를 따라가다 행궁 뒤 팔달산 약수터 부근에서 강감찬 장군 동상을 찾았으나 볼 수가 없다. 옆 벤치에서 쉬고 있는 노인께 물으니 모르겠단..
아직도 푸른 수원 향교 은행나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팔달산 남쪽 자락 아래 자리한 수원 향교에 갔다. 가로수 은행나무들은 이미 노랗게 물들어 낙엽 지고 있었으나, 수원 향교의 은행나무 이파리들은 아직도 푸르렀다. 향교마다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다. 공자께서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연유로 향교에서는 은행나무를 상징적으로 심어 이를 행단이라 한다.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진 유학은 조선 시대 국시가 되어 전국 방방곡곡에 공자를 모시는 향교가 설립되었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은 공산화 이후 본토에서 공맹사상이 완전 사라졌음에도 아직 공맹을 숭상하며 가르치는 우리나라 유림들의 정성은 대단하다. 유학 탓에 조선이 망했다지만, 동양사상의 중심인 유학의 인의예지 사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철학이 되어 우리 문화의 뿌리가..
가을에 물든 공주 태화산 마곡사 더웠던 여름 탓인지 마곡사에는 이제 가을이 농익고 있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참나무 느티나무 이파리들도 색깔이 고왔다. 단풍잎은 이제 물들기 시작하고...    모처럼 찾았던 마곡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곤 이내 나왔다. 자주 본 풍경들이 익숙한 탓이기도 했고, 입구부터 극락교 건너기 전까지 담장 안 전각 마당엔 금줄을 치고 공사가 한창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가을이 익어가는 산사의 경내에서  바라보는 울긋불긋한 풍경들이 그저 곱기만 했다.  해탈문 천왕문 극락교, 냇물 하나의 경계로 속세와 극락을 나눌 수 있을까. 다리 건너에 부처님을 모셨으니 그러려니, 다리를 건넜다.   범종각 오층석탑과 대광보전, 그리고 그 뒤 언덕 위에 있는 대웅보전.오층석탑은 10월 31일 국가보물로 지정예고 되었다..
계룡산 장군봉 암릉 가을 산행 거리 가로수 이파리들은 대부분 떨어져 가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고르지 않은 날씨에 비만 내리다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반가워 산행에 나섰다. 금년 가을엔 도봉산에 다시 오르려 마음먹었으나, 행선지는 동학사 입구에 있는 장군봉이었다. 장군봉 공영 주차장(무료)에 차를 두고 모텔촌 앞길을 지나 야영장 뒷길을 걸어 병사골을 들머리 삼았다. 장군봉은 해발 500여 m로 높지 않으나 거대한 바위산 봉우리들이 장군처럼 위풍당당하게 머리를 들고 있다. 작년 봄에 오른 적이 있어서 쉽게 생각하고 산에 올랐으나, 계룡산 구간 중 최고로 거친 바위능선이라 가파른 오르막길부터 무릎에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대로 장군봉 정상까진 어렵지 않게 올랐으나, 장군봉을 지나면서부터 뾰족뾰족 솟은 닭볏 같은 산봉들..
나뭇잎은 떨어지고... 가을 국립 세종 수목원 가을 바깥 바람이 찼다. 구름 많은 하늘 탓에 햇빛과 숨바꼭질하듯 명암이 오갔다. 무더웠던 지난여름의 열기 때문인지 나무들의 생육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들이 많았다. 넓은 수목원을 산책 삼아 거닐며 모처럼 다양한 수목들을 보고 즐길 수 있었다.  온실 속에서 말로만 듣던 풍란을 보고 놀랐다. 난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어린 시절에 벌써 멸종되어 간다는 풍란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사라져 가는 생물의 종을 지킨다는 것에 감사했다.    다양한 나무와 꽃을 보고 안내문을 읽고 기억하려 했지만 스치고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망가져가는 기억력을 회복하기엔 벌써 늦었다. 사람을 봐도 이름이 깜빡깜빡 떠오르지 않는 괴이한 현상이 이젠 놀랍지도 않다. 유한한 생명력에..
대전 현충원의 가을 일교차가 심한 탓에 코끝이 찡하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비염에 마리까지 지끈거린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자 안개가 자욱하여 구름 속에 있는 듯 사방이 어두워 외출을 망설였다. 오후가 되서야 따가운 햇살 아래 티없이 곱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흐린 아침 탓에 산행을 하지 못한 탓을 하며 밖으로 나가 호젓한 숲길을 걸었다.  현충원에 가을 햇살이 따갑다. 그늘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며 국가를 위해 순국하신 영령들께 감사드렸다. 인생은 유한한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더구나 젊은 나이에 꽃도 피우지 못하고 순국한 젊은이들의 희생이 눈물겹다. 눈이 시도록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줄지어 선, 묘비들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
공주 금강변과 미르섬, 공산성 미디어 아트 축제 공주에서는 공산성 축제가 한창 열리는 중이다. 9월 13일부터 10월 10일까지 공산성을 중심으로 수변 공원, 미르섬, 금강, 공산성 등에서 공주 문화제가 열린다. "2024 공산성 미디어 아트"가 축제의 타이틀이라 곳곳에 LED등과 대형 스크린들을 설치했다. '미디어 아트'축제라 야간에 집중된 탓에 한낮에 들린 나로서는 그저 변죽만 울리고 스쳐 지날 수밖에. 수변공원 넓은 4개의 주차장이 모두 만차일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수변공원에서는 주로 토속 농공산품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야와 대형 공연장과 시름장, 먹거리 장터들이 설치되어 난장을 이루었다. 수변공원을 지나 미르섬으로 가려니 입장료를 받았다. 일반인 7000원, 가격이 비싸다. 작년까지만 해도 무료로 건너 다니던 곳이었는데, 축제 기간임에도 ..
세상에나, 아까워라! 공주 고불산 성곡사(聖谷寺) 공주의 명소를 검색하던 중, 거대한 불상들이 있는 성곡사를 찾게 되었다. 천불상과 국내 최대의 높이 18m의 청동좌불을 보기 위해 공주 시내를 지나 산골길 끝에서 가파른 외길을 등판하여 성곡사에 올랐다. 군데군데 보이는 우람한 크기의 불상과 달리 주변의 절집들이 왜색풍을 띠고 있어서 어수선해 보였다. 허름해보이는 종무소와 넓은 주차장은 바닥이 거칠었다. 주변의 건물들도 가건물같아서 인적 끊긴 폐가처럼 을씨년스러운 것이 첫인상이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산길들도 정리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험했다.   성곡사는 1982년 주지 관묵이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 종각, 삼성각, 명부전, 나한전, 천불전, 지장전, 명부전, 와불전, 약사전에 이어 2006년 관음전을 건립하여 현재에 이른다. 대한불교 관음종으로..
춘향이 일편단심 사랑을 엮은 남원시 광한루 그동안 광한루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으라. 주차장부터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까만 흑룡 주변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분수부터 생소했다. 분수 뒤의 담장에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지고 그 앞에 춘향이와 이몽룡의 동상이 서있었다. 흑룡과 일월오봉도 춘향과 몽룡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곰곰 생각해 봐도 쉽게 연상되는 것이 없다. 설치한 사람의 의도는 분명할 텐데... 광한루 안에는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눈 익은 오작교와 광한루, 삼산산을 상징한 연못 안의 섬과 그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광한루 주차장의 분수 일월오봉도처럼 그려진 담장 앞에 선 이몽룡과 성춘향, 춘향의 표정이 앵돌아진 듯하다. 혹시 이별할 때 한 장면은 아닐까. 일월오봉도는 궁궐 안 임금이 앉는 용상 뒤에 병풍처럼 쓰이는그림인데 생뚱맞아 어울려 ..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과 사사자 3층석탑 수년 전 화엄사를 찾았을 때 각황전 뒤 언덕 위에 있는 사사자삼층석탑을 보수하는 중이라 보지 못해 마음에 걸렸었다. 화엄사를 대표하는 것은 뭐라 해도 각황전과 사사자삼층석탑이 아닌가 나름 생각한다. 몇 년 사이 약간의 변화가 있었나 보다. 젊었던 시절 화엄사 오른쪽 계곡을 따라 노고단에 몇 번 올랐었다. 그때의 화엄사를 떠올리면 현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해졌다. 거대한 전각들이 들어서고 찬란한 단청색에 눈이 부시다.   화려한 외형보다 내면이 더 소중할 터인데, 절집들도 빌딩처럼 솟아나는 오늘의 교회처럼 거대한 건물들과 석조물, 화려한 단청빛이 오히려 세속의 어지러움을 부추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불교신자가 아니면서도 절집의 목조건축물들이 찾곤 하지만 크고 화려하여 오히려 세속적인 모..
벼랑 위의 공중 암자, 구례 오산 사성암(四聖庵) CNN에서 한국 관광명소 100 중 하나로 선정했다는 사성암이다. 일찍이 찾아보고자 했으나 이제야 들린 것에 만시지탄이 든다. 그동안 사진들과 영상들을 통해 기암절벽에 암자를 지은 모습이 경이로웠다. 예전에는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두고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암자에 올랐으나, 이제 암자 아래 주차장을 만들어 셔틀버스의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날씨가 선선해졌지만, 한낮의 땡볕은 매우 뜨거웠다. 금년은 더워도 너무 더웠었다. 사성암이 있는 산은 그 모양이 자라를 닮아 자라 '오(鰲)'자를 써서 오산(鰲山)이다. 그런 연유로 백제 성왕 때 오산암으로 창건하였으나 이후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한 곳이라 하여 사성암(四聖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한다. 사성암에 오르며..
수원 화성 갈꽃의 계절 장안문에서 성곽 아래길을 통해 화서문으로 이동했다. 장안 공원은 화성축제 준비관계로 여러 가지 기물들이 쌓여 어수선했다. 내 보기에는 축제 준비도 필요하겠지만 화성 보존을 위해 좀 더 힘써야 할 것 같다. 예를 들면 화서문에 걸린 깃발들이 기의 바탕과 깃발 테두리 천이 떨어져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돈 몇 푼 들지 않을 테지만 무관심하다 보니 담당자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게으른 공직자의 안일함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화서문에서 성벽 아래 조성한 갈꽃의 무리를 보며 팔달산길을 걸어 화성장대에 올랐다. 화성의 제일 높은 곳에서 화성 전역의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화성장대는 언제 보아도 장쾌했다. 화성장대 주변을 돌아보며, 눈 아래 수원시가부터 멀리 관악산까지 조망했다. 장대 안 마루에 한..
수원 화성, 그리고 눈부신 가을 하늘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지만 금년 여름처럼 더운 적은 없었다. 7월 말부터 9월 추석 때까지 한낮에는 감히 외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추석 뒤, 큰 비가 내린 후 비로소 기온이 뚝 떨어지고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가을 하늘이 보였다.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무더위 덕분에 태풍이 올라오지 못했다는 뉴스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서늘한 기온에 모처럼 몇 달 동안 처박아 두었던 카메라를 꺼내서 버스를 타고 수원 화성으로 나들이 나갔다. 한 동안 보지 않았던 풍경들이 궁금하기도 했고...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화성 전체 구간 중 유일하게 성벽이 끊어진 곳이다. 외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고자 옹성을 둘렀다. 팔달문의 뒷면, 이른바 성안 지역이다. 행궁으로 가는 골목 안의 한 풍경 행궁 주차장 옆 건물과 벽화...
서인들의 성전 논산 돈암서원 유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그것은 조선왕조의 통치철학이었던 만큼 그 영향은 컸었다. 현대에 이르러서 유학은 탁상공론으로 평가절하되곤 하지만, 당대에는 목숨을 걸고 논쟁하던 사상이었다. 인조반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서인의 학문적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로 추앙되는 김장생 선생의 평가는 논외로 하고 싶다. 서인세력들은 임진왜란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임에도 명분 없는 쿠데타를 일으켜 실리 없는 외교로 어려웠던 백성들을 참혹한 정묘 병자호란에 빠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인 세력들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이어졌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돈암서원은 그야말로 서인들의 거룩한 성전같은 곳이어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대전 논산간 국도변에 있는 탓에 지나는 길에 자주 들려 보지만, 서..
망국의 설움이 서린 부여 정림사지 정림사지 역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과거 박물관은 정림사 건축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이 가득했었다. 이번 방문한 정림사 박물관은 부여박물관처럼 멀티미디어화 되어 아름다운 영상미로 방문객들을 황홀경에 빠트렸다. 정림사 오 층 석탑 모형 유리벽에 비추는 아름다운 영상들과 복도의 벽과 바닥까지 삼면을 비추는 영롱한 영상들은 별다른 세상에 온 듯 감동을 주었다. 게다가 박물관 내부에 만든 작은 돔 영화관은 10여 개가 넘는 액정 영상기로 관객석을 제외한 돔 내부 전체의 둥근 벽과 천장 바닥, 관객석 뒷면까지 영상을 비추어 마치 관객들이 영상의 한가운데 앉아 있는 느낌을 주었다. 비록 15분짜리 애니메이션이긴 했지만 처음 보는 시설에 영상미가 뛰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넓은 주차장과 영상미가..
국립 부여박물관 부여박물관은 이전에 여러 번 방문해서 한동안 가지 않았었다. 그간의 변화가 궁금해서 오랜만에 들렸는데, 변화한 모습이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디지털 영상매체와 결합된 유물 전시가 그야말로 상전벽해 격으로 아름다웠다. 시각적 이해도 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형 로비를 둘러싼 전시실 동선도 깔끔하고, 쉼터도 많아서 남녀노소 관람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전시기술이 놀라울 정도여서 백제의 슬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유물관람에 감격할 정도였다. 주차장도 여유 있었고 박물관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경치도 아름다웠다. 또 정림사지가 근처에 있어서 연계하여 관람하기에 좋았다.  부여국립박물관 박물관 내부 원형 로비, 중앙엔 백제 시대 석조 대형 스크린을 보며 참선 따라 할 수 있는 공간  유물 전시관..
부여 서동공원 궁남지 연밭으로 유명한 부여 궁남지. 아직 연꽃은 피지 않았지만 연밭마다 연잎이 싱그럽다. 7월 6일부터 이곳에서 연꽃축제를 한다고 벌써부터 준비에 바쁘다. 백제의 마직 수도였던 부여. 유감스럽게 패전국가인 탓에 유물이 많지 않아 안타깝다. 백제 무왕이 땅을 파 호수를 만들고 물을 끌어들여 만들었다는 궁남지는 이름 그대로 궁궐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다. 궁남지를 둘러싸고 왕이 되기 전, 마를 파는 총각으로 변장한 서동과 궁궐에서 쫓겨난 선화공주의 연애담이 낭만적인 전설로 이곳에 전해져,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을 만들고 정자를 만들었다. 정자 이름은 '포룡정' 용을 안은 정자란 뜻이다. 선화공주와 무왕의 옛이야기를 생각하며 연못 주변을 산책 삼아 한 바퀴 돌았다. 다행히 날씨가 흐려 햇볕은 그리 따갑지 않았다.  궁..
오산 맑음터 공원 인터넷 뉴스에 오산 맑음터 공원 장미꽃이 볼 만하다 해서 찾아갔는데, 기대했던 장미는 넝쿨장미로 아직 자라는 중이었다. 발로 뛰지 않은 기자에게 완전 낚이고 말았다. 하수종말처리장에 만든 공원은 부지가 매우 넓었다. 넓은 부지를 이용하여 인라인 스케이트 장, 조각 공원, 어린이 야외 수영장, 산책 코스, 캠핑장 등을 조성하여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었다. 서편 주차장 인근에 있는 에코리움은 생태계와 관련된 동식물들을 보여주는 체험학습장이었고, 4층의 높은 전망대는 오산의 인근 지역을 두루 조망할 수 있어서 보기에 좋았다.  아름답고 탐스런 장미꽃들은 보지 못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의 도보 산책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다만 주변에 공장이 많아서 소음이 심했고, 동쪽 장미터널 인근 개울에서는 악취가 올라..
공자의 후손이 일으킨 오산 궐리사 지난 겨울에 들렸던 오산 궐리사를 녹음기에 재방문했다. 궐리사는 논산시 노성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제 2대 궐리사 중 하나로서 1792년 정조(16)에 창건되어 사액 되었으며 대성 공자를 봉안하고 있다. 오산 궐리사는 상시 개방을 하여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살아있는 교육현장이 되고 있으나, 논산 노성면에 있는 궐리사는 사유재산이라며 상시개방을 하지 않고 지역 행사 때 지역 유림들이 모여 제향을 받드는 폐쇄된 공간이다.   이곳은 공자의 64세손인 공서린(중종때 도승지, 경기 황해감사, 대사헌 등 역임)선생이 낙향하여 서재를 짓고 서재 아래 은행나무를 심은 후 북을 걸고 두드려 제자들의 학업을 독려하며,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선생 별세후 자연 폐허가 되고 은행나무 역시 말라 주었다. 200여 년이..
석촌 호수 둘레길 잠실역 남쪽 석촌호수 주변은 아예 롯데 왕국이다. 롯데는 1960년대 '햇님이 주신 선물 롯데 껌'이란 광고카피로 해태제과와 쌍벽을 이루며 주로 껌과 과자류를 파는 제과업체였다. 1980년대 초, 우민화 정책으로 출범한 프로 야구 경기에서도 광주의 해태 타이거즈와 부산 롯데 자이언츠는 서로 맞짱 뜨는 용호상박의 라이벌이었다. 그 당시 광주사람은 롯데껌은 쳐다보지도 않고 부산 사람들도 해태껌은 결코 씹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이제 토종 기업 해태제과는 존재감조차 없어져 과자류 생산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고, 본사를 일본에 둔 롯데그룹은 제과부터 호텔, 백화점, 대형 쇼핑마켓, 건설, 유통산업에 이르기까지 거느리지 않은 영역이 없을 정도로 잘 나가는 굴지의 재벌회사가 되었다. 초창기 삼양..
병자호란과 송파나루 삼전도비 삼전도비는 석촌호수 서호, 롯데월드 앞 모서리에 있는 비석으로서 병자호란때 조선의 항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치욕적인 비석이다. 고종은 청일전쟁 직후인 1895년 그 치욕을 지우고자 땅 속에 묻었으나 ,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역사를 폄하하기 위해 1917년 다시 세웠다.   광복 후인 1956년 이를 다시 땅에 묻었으나 홍수로 흙이 쓸려나가 다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나게 되었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하여 자리를 옮겨 다시 세웠다가 2010년 본디 위치(석촌호수 안)와 가까운 현재의 이곳으로 이전하여 비각을 짓고 비석을 세워 공개하였다. 치욕적인 비석도 우리 역사의 일부이겠다. 오랜 세월에 글씨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비석 하나 땅 속에 묻는다고 우리의 역사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
화산(花山) 용주사(龍珠寺) 전날의 강풍과 전일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내린 비 때문인지 날씨가 오월의 하늘 그대로 화창했다. 예전 푸른 초원으로 목가적이었던 용주사부터 융건릉까지 아름다운 시골풍경은 주변 도시개발로 사라졌다. 도로마저 끊고 주변을 재구성하여 아파트와 상가주택, 공원을 건설함으로써 일대가 상전벽해로 변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된 융건릉 때문인지 신도시마다 들어서는 죽순 같은 고층 아파트는 절제했다는 것이다. 과거 고려시대와 옛 수원성의 유물이 발견되어 개발이 지체되기도 했었는데, 유물발굴은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다. 국민을 위하는 옛 토지개발공사의 무분별한 주거지 개발의 참화가 이곳을 피해 가지 못했다.  새로 만든 도로를 통과해서 용주사에 갔는데, 초파일이 가까운 탓에 방문객들이 많았다.  ..
한국 근현대사 사진 몇 점 모처럼 광화문 앞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견학했다. 평소 접하지 못했던 전시된 사진들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이를 기억하고자 핸드폰에 몇 장을 옮겼다. 예로부터 무수한 중국의 침략과 견제로 한반도에 밀려와 살며, 숱한 왜구들의 살육과 약탈을 물리치고 살아온 우리나라 반만 년의 역사가 참으로 슬프게 각인되었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일제의 국권침탈과 만행이 임진, 정유란과 오버랩되어 고통스러웠다. 옛날을 잊고 더불어 잘 살아보자는 요즘의 한일관계도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는 북한과의 관계처럼 참으로 복잡 미묘하다. 오늘날에도 침략전쟁을 일삼는 러시아의 패권주의와 세계를 무대로 일대일로를 주장하며 확장만을 꾀하는 중국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 평소 별 생각없이 일상을 보내다가도 뉴스를 보면 대륙과 해양세력이 충돌하..
오월의 경복궁 오랜만에 광화문에 나갔다가 경복궁에 들렀다. 다양한 피부색의 외국인들이 내국인들보다 더 많은 듯했다. 체험학습 나온 학생들도 많았고...  광화문에서 일직선으로 흥례문을 통과해서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 - 경회루 - 향원정 - 건청궁으로 돌아 나왔다.   오월의 신록과 따사로운 햇살이 걷기 좋은 날씨였다. 이따금 찾아보는 경복궁이지만 오월의 햇살 아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무하나 없는 자금성의 광대함은 없으나, 대륙의 삭막함 대신 아기자기한 숲과 단정하고 우아한 우리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껴본 하루였다.   초파일 행사 준비에 바쁜 광화문 광장 자리를 옮긴 해태와 복원한 월대 우연히 보게 된 월대 위 수문장 교대식(오후 1시) 흥례문 근정문으로 건너는 영제교와 다리를 지키는 석물 ..
훼손 119년 만에 완전 복원된 화성 행궁 수원시는 일제가 훼손됐던 수원 화성행궁을 119년 만에 완전하게 제 모습으로 복원하여 며칠 전인 4월 24일 일반에 공개했다. 수원 화성 행궁은 1789년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화산 아래 수원읍치에 모시고 새로운 수원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신축한 수원 화성의 관청으로 쓰였다.  임금의 행차 시 국왕과 수행원들이 사용했던 궁궐로 사용하여 조선시대 지방에 건립했던 행궁 가운데 그 규모가 제일 컸다. 정조대왕은 1789년부터 1800년까지 13차례나 화성 행궁에 머물렀으며, 특히 즉위 20년째 되던 1795년. 정조대왕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하여 이곳에서 회갑연을 차리기도 했다. 화성 행궁은 크게 행궁권역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아권역을 두고 행궁 앞에 군영권역으로 나누어 건립하여 운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