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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 모처럼 맑은 날, 바람도 없다. 흐드러진 살구꽃잎이 눈꽃잎처럼 하나 둘 떨어지고 있다. 꽃이 지기 전에 하나쯤은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뜰앞으로 내려갔다. 살구나무에서 꿀을 빨던 찍박구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거닐며 이웃 아파트 정원까지 갔다가 옆산자락에 있는 절에 들렸다. 스님들이 부지런하시기도 했다. 벌써 초파일 연등을 내걸렸다. 멀리서 보는 연등 색깔이 곱기도 했다. 연등 숫자에 따라 절의 빈부를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 연등을 볼 때마다 연등이 세속적인 지폐로 보이니 속세의 눈이 삐뚤어져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이제 따스한 봄기운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오늘처럼 맑고 포근한 날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살구꽃 공원에 핀 명자꽃 홍매화 벚꽃이 망울져 터지..
그래도 봄은 오는구나! 유난히 눈이 많았던 이번 겨울, 춥기도 추웠었다. 3월 들어 갑자기 20도가 넘는 날이 며칠간 이어지자 일부 젊은이들이 반팔티를 입고 다니는 진풍경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갑자기 눈이 내리고 겨울 칼바람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불어오자 모두들 두꺼운 패딩 외투를 입고 거리로 나왔다. 나 역시 성급히 겨울옷을 다시 찾아 입었다. 그 와중에도 양지 녘엔 제비꽃들이 올망졸망 피어나고, 뜰앞 살구나무에 꽃이 피었다. 이리저리 산책 중 봄꽃들이 너무 고와서 핸드폰으로 몇 컷 찍어 보았다.  국제정세가 조변석개하는 마당에 국내 정국도 어수선해서 전전반측 잠을 이룰 수 없다. 게다가 건조한 날씨에 산불까지 번져,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되어 가슴 아프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성공했다는 우리나라 산림녹화가 봄철이면 ..
칼바람 부는 입춘날, 화성 창룡문(동문)에서 장안문(북문)까지 세월이 하수상하니 가벼운 외출도 버거운 일상이 되었다. 설날 연휴엔 웬 눈이 그리 내리던지, 산책 삼아 걷던 동네길도 눈 쌓여 빙판길이 되어 동네 나들이조차 용이하지 않다. 다행히 며칠간 날씨가 따뜻해 양지녘엔 눈이 녹았는데, 음지엔 여전히 빙판길이다. 날씨가 따뜻하면 스모그가 극성이다. 희뿌연 하늘 아래 왕래하는 자동차 매연가스에 코가 따가웠다.  입춘날 아침 커튼을 제쳤더니, 하늘이 푸르다. 모처럼 외출준비를 하고 현관 밖에 나오자 매서운 칼바람이 큰 소리를 내며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로 들어가려다가 내친 김에 차를 타고 수원화성에 나갔다.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소리가 대단하다. 날이 추운 탓에 성곽길을 걷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 홀로 동일치부터 연무대를 거쳐 방화수류정을 지나 장안문까지 ..
청양의 명소, 천장호 출렁다리 천장호로 출발하기 직전에 속보로 전해진 무안공항의 여객기 추락 참사 소식을 들었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국내 항공기 참사 사고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확률적으로 항공기 사고가 자동차보다 안전하다지만 하늘을 나는 쇳덩이가 추락하면 그야말로 대책이 있을 수 없다. 어쩌다 비행기를 탔을 땐 비좁은 좌석에서 불편을 감내하며 지상에 착륙을 한 뒤에야 비로소 안심이 되곤 했다. 사고소식처럼 날씨가 음산하게 흐려지고 눈발도 조금 비쳤다. 천장호 출렁다리 입구엔 주차장이 여럿이었는데, 대부분 만차여서 어쩔 수 없이 자리가 비어있는 대형 주차장에 차를 댔다. 주말인 탓인지 난장처럼 사람들이 붐볐다. 뛰어난 명승지도 아니건만 사람들이 붐비는 것이 놀랍다. 하기야 생소한 이곳에 내가 구경거리 찾아왔으니 그들과 동류이겠지만....
신라시대 철조 약사불 좌상(국보)이 있는, 칠갑산 장곡사 "콩바앝 매애는 아나악네야아~ 베적삼이 흠뻐억 저엊누나아아~~ "  주병선이 부른 칠갑산 노래이다. 예전엔 청양군이 있다는 것도 몰랐었는데, 칠갑산 노래로 충남도 청양군을 알았다. 산이 많고 공기가 맑아 살기 좋대서 몇 번 그곳에 정착하러 답사도 가보았었다. 실제로 거처를 옮기진 못했지만, 왠지 백제의 옛 수도 부여와 그곳에 인접한 마을들에 정감이 간다.  청양 고추를 두고 이곳 청양군 원조설에 대응하여 경북도 청송군과 영양군이 연합하여 지역 연고권을 주장한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청양군의 상징물은 고추이다. 무료하던 차에 청양군의 볼거리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로 낙점한 곳이 장곡사였다. 입구에 장승마을도 있고 주차장 조성이 잘 되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단다.  대부분의 큰 도로..
족욕의 천국, 대전 유성 온천 거리 대전에 갔다가 유성 온천거리를 둘러보았다. 평소 온천욕을 즐기는 편이라 주로 온양 온천에서 묶음 티켓을 끊어 다니곤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수년 동안 온천욕을 할 수 없어 아쉬웠었다. 대전 오는 길에 온양 온천에 들려 오랜만에 따뜻한 온천욕에 잠시 행복할 수 있었다. 온양 온천 못지않게 이곳 유성도 유명한 곳이라 모처럼 온천거리 구경에 나섰다. 예로부터 유명한 곳이지만 조선조에 이르러 태종 이방원이 이곳을 즐겨 찾았었다고 한다.   며칠 전, 이 온천 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축제도 했다. 온천 지역에 공원을 조성하고 휴식공간으로 족욕을 할 수 있도록 족욕탕을 여러 군데 만들었다. 공원을 걷다 잠시 족욕탕에 앉아 따뜻한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었다. 수년 전 일본 유후인 온천 마을에서 이런 족욕을 해본 적..
눈 폭탄 맞은 듯, 폭설 내린 수원 화성 115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는 27일, 다음 날인 28일 오전, 화성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렸는데 광역버스 이외 시내 버스 노선이 결행되었다. 이틀 지나 29일에는 밤새 날씨가 추워져 질척거리던 눈길이 빙판길로 변해 있었다. 등산화를 단단히 조여맨 후, 운행을 재개한 버스를 타고 화성 동문인 창룡문으로 갔다. 애석하게 창룡문 주변은 보수공사하느라고 어수선하게 그물 울타리를 둘러치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충 얽어놓은 보수 구조물들이 볼썽 사나웠다. 창룡문을 지나 동장대로 불리는 연무대로 이동했다가 화성 성곽을 따라 팔달산 끝자락까지 걸었다.  곳곳에 육중한 나무들이 폭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폭탄 맞은 듯 쓰러져 있었다. 자연재해라 어쩔 수 없지만 곱게 가꿔온 나무들이라 보기에 안타까웠다. 정강..
115 년 만에 내린 11월 폭설 아침부터 하염없이 내리던 눈은 저녁까지 쉬지 않고 내렸다. 중간중간에 간헐적으로 조금씩 쉬어가긴 했지만, 삽시간에 이리 많이 내린 눈은 아마도 처음 보는 것 같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아 자동차 통행이 많은 큰길만 녹았다. 녹아 흐르는 눈물이 쌓인 눈아래로 흘러 도로 건널목을 건널 때마다 발이 풍덩 빠져 신발이 젖었다. 보도엔 밟힌 눈이 다져져서 얼음판이 되어 매우 미끄러웠다.   창밖으로 눈 내리는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폭설이 잠시 쉬어갈 무렵 집밖으로 나왔으나,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곳곳에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 부러지고 부러진 나뭇가지들의 잔해가 눈 위에 쌓여 덮여 갔다.  오전에 외출을 하려고 밖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렸으나, 대부분의 시내버스들을 결행이었다. 광역 버스들만 넓은 차..
새 개의 가마솥탕을 휘돌아 떨어지는 삼부연 폭포 목적지인 한탄강 주성절리길 입구 드르니에 가기 전에 인근에 있는 삼부연 폭포에 들렸다. 정오가 가까웠음에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온몸이 으스스 떨려왔다. 폭포 위쪽 용화터널 위에 주차장이 새로 마련되어, 그곳에 차를 세워 두고 보행자용 터널로 폭포까지 내려왔다. 터널 안을 지날 때 차갑고 음산한 바람이 불어 한겨울 한기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았다.  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폭포가 있는 골짜기 그늘과 폭포 위 양지의 명암차이가 너무 커서,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늘에 초점을 맞추고 찍으면, 햇빛을 받는 양지쪽 풍경이 하얗게 날아갔다. 반셔터를 이용해 몇 컷 찍었지만 마찬가지였다. 핸드폰을 꺼내 광각으로 찍었더니 양지와 음지가 선명하게 살아나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핸드폰 사진엔 깊이가 없고..
용암이 흘러 만든 협곡,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추워진 날씨덕에 하늘이 쾌청했다. 부지런히 배낭을 챙겨 강원도 철원으로 떠났다. 2021년 개장한 한탄강주상절리길을 비롯해, 주변의 명소를 돌아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서울 순환도로에서 차가 엄청 막혔다. 순환도로를 지나 토평 TG를 나갈 무렵 우회전 길에서 승용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앞을 스쳐 지나갔다. 자칫 대형 사고가 날 뻔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난폭 운전자, 음주 운전자들이 늘어간다. 조심 운전을 함에도 점점 운전이 힘들어진다. 내비의 도움을 받으며 포천 고속도로를 타고 신북 톨게이트까지 막힘없이 달려갔다. 신철원에 접어들어 삼부연 폭포를 들려 신철원 읍내로 나오니 어느새 열두 시가 넘었다. 식당을 수소문해서 국..
낙엽의 계절 영흥공원 주변으로 동네 산책을 나섰다가 나뭇잎 색깔이 고와 핸드폰으로 저무는 가을 풍경들을 몇 장 찍었다. 나무마다 잎이 지는 모양새가 각양각색이다. 어떤 나무는 변색도 제대로 못한 채 시들어 쭈그러져 잎사귀조차 떨구지 못하고 있었고, 또 어떤 것은 제대로 예쁘게 물든 나무 틈에서 아직까지 시퍼런 잎을 바보처럼 지니고 있었다. 나무들도 계절을 변화에 적응하는 모습이 제멋대로인 걸 보면 우리네 인생사와 다를 바 없다. 길고 더웠던 2024년도 막바지로 치닫는다. 더워서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여름을 씁쓸히 기억하며 금년 겨울과 내년 여름의 변화를 상상해 본다. photo by samsung galaxy ultra s21
동구릉의 깊은 가을 흐린 듯하더니 햇살이 퍼지자 청명한 가을 하늘이 펼쳐졌다. 금년 8월 10일 동구릉역이 개통되었단 소식에 8호선 전철을 이용하여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터라 바삐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간 동구릉은 3-4차례 방문한 터라 그 풍경들이 눈에 선했지만, 아홉 능이나 있다 보니, 헷갈려 모두 기억되지 않았다. 생각나는 것은 조선 태조의 건원릉과 문종의 현릉, 선조의 목릉, 영조의 원릉 정도였다.  지도 검색 결과 동구릉역에서 동구릉까지는 800여m로  걸어서 10여분 정도 거리였다. 3번 출구로 나와 직선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자동차 통행량이 대단히 많았다. 동구릉 안에 들어서자 시내에서 볼 수 없는 가을빛이 수려했다. 파문지듯 떨어져 날리는 나뭇잎 사이로 숲길을 걸으며 복잡한 세속의 시간들을 잊을 수 있었다. ..
수원시의 유래, 팔달산 성신사와 정조대왕상, 화서문 주변 오랜만에 수원 팔달산 순환도로를 걸었다.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시조의  구절은 맞는 말이 아닌 듯싶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란 말엔 수긍이 간다. 십 년은 길고 요즘은 오 년 정도로 시간을 줄여야 할 것 같다. 십 년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이다. 20대 일이 엊그제 같이 생생한데, 세월은 무심하다. 옛날의 모습을 반추하며 그 길을 걸었다. 팔달문에서 성벽을 따라 오를 때 중턱에서 만나던 홍난파 노래비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친일 행적이 거론된 후, 옛날보다 덜 감동스러웠지만 그런대로 반가웠다.   순환로를 따라가다 행궁 뒤 팔달산 약수터 부근에서 강감찬 장군 동상을 찾았으나 볼 수가 없다. 옆 벤치에서 쉬고 있는 노인께 물으니 모..
11월에도 푸른 수원 향교 은행나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팔달산 남쪽 자락 아래 자리한 수원 향교에 갔다. 가로수 은행나무들은 이미 노랗게 물들어 낙엽 지고 있었으나, 수원 향교의 은행나무 이파리들은 아직도 푸르렀다. 향교마다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다. 공자께서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연유로 향교에서는 은행나무를 상징적으로 심어 이를 행단이라 한다.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진 유학은 조선 시대 국시가 되어 전국 방방곡곡에 공자를 모시는 향교가 설립되었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은 공산화 이후 본토에서 공맹사상이 완전 사라졌음에도 아직 공맹을 숭상하며 가르치는 우리나라 유림들의 정성은 대단하다. 유학 탓에 조선이 망했다지만, 동양사상의 중심인 유학의 인의예지 사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철학이 되어 우리 문화의 뿌리가..
가을에 물든 공주 태화산 마곡사 더웠던 여름 탓인지 마곡사에는 이제 가을이 농익고 있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참나무 느티나무 이파리들도 색깔이 고왔다. 단풍잎은 이제 물들기 시작하고...    모처럼 찾았던 마곡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보곤 이내 나왔다. 자주 본 풍경들이 익숙한 탓이기도 했고, 입구부터 극락교 건너기 전까지 담장 안 전각 마당엔 금줄을 치고 공사가 한창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가을이 익어가는 산사의 경내에서  바라보는 울긋불긋한 풍경들이 그저 곱기만 했다.  해탈문 천왕문 극락교, 냇물 하나의 경계로 속세와 극락을 나눌 수 있을까. 다리 건너에 부처님을 모셨으니 그러려니, 다리를 건넜다.   범종각 오층석탑과 대광보전, 그리고 그 뒤 언덕 위에 있는 대웅보전.오층석탑은 10월 31일 국가보물로 지정예고 되었다..
계룡산 장군봉 암릉 가을 산행 거리 가로수 이파리들은 대부분 떨어져 가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고르지 않은 날씨에 비만 내리다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반가워 산행에 나섰다. 금년 가을엔 도봉산에 다시 오르려 마음먹었으나, 행선지는 동학사 입구에 있는 장군봉이었다. 장군봉 공영 주차장(무료)에 차를 두고 모텔촌 앞길을 지나 야영장 뒷길을 걸어 병사골을 들머리 삼았다. 장군봉은 해발 500여 m로 높지 않으나 거대한 바위산 봉우리들이 장군처럼 위풍당당하게 머리를 들고 있다. 작년 봄에 오른 적이 있어서 쉽게 생각하고 산에 올랐으나, 계룡산 구간 중 최고로 거친 바위능선이라 가파른 오르막길부터 무릎에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대로 장군봉 정상까진 어렵지 않게 올랐으나, 장군봉을 지나면서부터 뾰족뾰족 솟은 닭볏 같은 산봉들..
나뭇잎은 떨어지고... 가을 국립 세종 수목원 가을 바깥 바람이 찼다. 구름 많은 하늘 탓에 햇빛과 숨바꼭질하듯 명암이 오갔다. 무더웠던 지난여름의 열기 때문인지 나무들의 생육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들이 많았다. 넓은 수목원을 산책 삼아 거닐며 모처럼 다양한 수목들을 보고 즐길 수 있었다.  온실 속에서 말로만 듣던 풍란을 보고 놀랐다. 난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어린 시절에 벌써 멸종되어 간다는 풍란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사라져 가는 생물의 종을 지킨다는 것에 감사했다.    다양한 나무와 꽃을 보고 안내문을 읽고 기억하려 했지만 스치고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망가져가는 기억력을 회복하기엔 벌써 늦었다. 사람을 봐도 이름이 깜빡깜빡 떠오르지 않는 괴이한 현상이 이젠 놀랍지도 않다. 유한한 생명력에..
대전 현충원의 가을 일교차가 심한 탓에 코끝이 찡하다.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비염에 머리까지 지끈거린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자 안개가 자욱하여 구름 속에 있는 듯 사방이 어두웠다. 오후가 되서야 따가운 햇살 아래 티없이 곱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흐린 아침 탓에 산행을 포기했기에 오후 맑은 하늘을 이기지 못하고 호젓한 숲길을 걸으며 산책을 했다.  현충원에 가을 햇살이 따갑다. 그늘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며 국가를 위해 순국하신 영령들께 감사드렸다. 인생은 유한한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숭고하다. 더구나 젊은 나이에 꽃도 피우지 못하고 순국한 젊은이들의 희생이 눈물겹다. 눈이 시도록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줄지어 선, 묘비들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
공주 금강변과 미르섬, 공산성 미디어 아트 축제 공주에서는 공산성 축제가 한창 열리는 중이다. 9월 13일부터 10월 10일까지 공산성을 중심으로 수변 공원, 미르섬, 금강, 공산성 등에서 공주 문화제가 열린다. "2024 공산성 미디어 아트"가 축제의 타이틀이라 곳곳에 LED등과 대형 스크린들을 설치했다. '미디어 아트'축제라 야간에 집중된 탓에 한낮에 들린 나로서는 그저 변죽만 울리고 스쳐 지날 수밖에. 수변공원 넓은 4개의 주차장이 모두 만차일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수변공원에서는 주로 토속 농공산품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야와 대형 공연장과 시름장, 먹거리 장터들이 설치되어 난장을 이루었다. 수변공원을 지나 미르섬으로 가려니 입장료를 받았다. 일반인 7000원, 가격이 비싸다. 작년까지만 해도 무료로 건너 다니던 곳이었는데, 축제 기간임에도 ..
세상에나, 아까워라! 공주 고불산 성곡사(聖谷寺) 공주의 명소를 검색하던 중, 거대한 불상들이 있는 성곡사를 찾게 되었다. 천불상과 국내 최대의 높이 18m의 청동좌불을 보기 위해 공주 시내를 지나 산골길 끝에서 가파른 외길을 등판하여 성곡사에 올랐다. 군데군데 보이는 우람한 크기의 불상과 달리 주변의 절집들이 왜색풍을 띠고 있어서 어수선해 보였다. 허름해보이는 종무소와 넓은 주차장은 바닥이 거칠었다. 주변의 건물들도 가건물같아서 인적 끊긴 폐가처럼 을씨년스러운 것이 첫인상이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산길들도 정리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험했다.   성곡사는 1982년 주지 관묵이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 종각, 삼성각, 명부전, 나한전, 천불전, 지장전, 명부전, 와불전, 약사전에 이어 2006년 관음전을 건립하여 현재에 이른다. 대한불교 관음종으로..
춘향이 일편단심 사랑을 엮은 남원시 광한루 그동안 광한루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으라. 주차장부터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까만 흑룡 주변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분수부터 생소했다. 분수 뒤의 담장에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지고 그 앞에 춘향이와 이몽룡의 동상이 서있었다. 흑룡과 일월오봉도 춘향과 몽룡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곰곰 생각해 봐도 쉽게 연상되는 것이 없다. 설치한 사람의 의도는 분명할 텐데... 광한루 안에는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눈 익은 오작교와 광한루, 삼산산을 상징한 연못 안의 섬과 그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광한루 주차장의 분수 일월오봉도처럼 그려진 담장 앞에 선 이몽룡과 성춘향, 춘향의 표정이 앵돌아진 듯하다. 혹시 이별할 때 한 장면은 아닐까. 일월오봉도는 궁궐 안 임금이 앉는 용상 뒤에 병풍처럼 쓰이는그림인데 생뚱맞아 어울려 ..
지리산 화엄사 각황전과 사사자 3층석탑 수년 전 화엄사를 찾았을 때 각황전 뒤 언덕 위에 있는 사사자삼층석탑을 보수하는 중이라 보지 못해 마음에 걸렸었다. 화엄사를 대표하는 것은 뭐라 해도 각황전과 사사자삼층석탑이 아닌가 나름 생각한다. 몇 년 사이 약간의 변화가 있었나 보다. 젊었던 시절 화엄사 오른쪽 계곡을 따라 노고단에 몇 번 올랐었다. 그때의 화엄사를 떠올리면 현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해졌다. 거대한 전각들이 들어서고 찬란한 단청색에 눈이 부시다.   화려한 외형보다 내면이 더 소중할 터인데, 절집들도 빌딩처럼 솟아나는 오늘의 교회처럼 거대한 건물들과 석조물, 화려한 단청빛이 오히려 세속의 어지러움을 부추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불교신자가 아니면서도 절집의 목조건축물들이 찾곤 하지만 크고 화려하여 오히려 세속적인 모..
벼랑 위의 공중 암자, 구례 오산 사성암(四聖庵) CNN에서 한국 관광명소 100 중 하나로 선정했다는 사성암이다. 일찍이 찾아보고자 했으나 이제야 들린 것에 만시지탄이 든다. 그동안 사진들과 영상들을 통해 기암절벽에 암자를 지은 모습이 경이로웠다. 예전에는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두고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암자에 올랐으나, 이제 암자 아래 주차장을 만들어 셔틀버스의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날씨가 선선해졌지만, 한낮의 땡볕은 매우 뜨거웠다. 금년은 더워도 너무 더웠었다. 사성암이 있는 산은 그 모양이 자라를 닮아 자라 '오(鰲)'자를 써서 오산(鰲山)이다. 그런 연유로 백제 성왕 때 오산암으로 창건하였으나 이후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한 곳이라 하여 사성암(四聖庵)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한다. 사성암에 오르며..
수원 화성 갈꽃의 계절 장안문에서 성곽 아래길을 통해 화서문으로 이동했다. 장안 공원은 화성축제 준비관계로 여러 가지 기물들이 쌓여 어수선했다. 내 보기에는 축제 준비도 필요하겠지만 화성 보존을 위해 좀 더 힘써야 할 것 같다. 예를 들면 화서문에 걸린 깃발들이 기의 바탕과 깃발 테두리 천이 떨어져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돈 몇 푼 들지 않을 테지만 무관심하다 보니 담당자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게으른 공직자의 안일함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화서문에서 성벽 아래 조성한 갈꽃의 무리를 보며 팔달산길을 걸어 화성장대에 올랐다. 화성의 제일 높은 곳에서 화성 전역의 군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화성장대는 언제 보아도 장쾌했다. 화성장대 주변을 돌아보며, 눈 아래 수원시가부터 멀리 관악산까지 조망했다. 장대 안 마루에 한..
수원 화성, 그리고 눈부신 가을 하늘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지만 금년 여름처럼 더운 적은 없었다. 7월 말부터 9월 추석 때까지 한낮에는 감히 외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추석 뒤, 큰 비가 내린 후 비로소 기온이 뚝 떨어지고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가을 하늘이 보였다.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무더위 덕분에 태풍이 올라오지 못했다는 뉴스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서늘한 기온에 모처럼 몇 달 동안 처박아 두었던 카메라를 꺼내서 버스를 타고 수원 화성으로 나들이 나갔다. 한 동안 보지 않았던 풍경들이 궁금하기도 했고...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화성 전체 구간 중 유일하게 성벽이 끊어진 곳이다. 외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고자 옹성을 둘렀다. 팔달문의 뒷면, 이른바 성안 지역이다. 행궁으로 가는 골목 안의 한 풍경 행궁 주차장 옆 건물과 벽화...
서인들의 성전 논산 돈암서원 유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그것은 조선왕조의 통치철학이었던 만큼 그 영향은 컸었다. 현대에 이르러서 유학은 탁상공론으로 평가절하되곤 하지만, 당대에는 목숨을 걸고 논쟁하던 사상이었다. 인조반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서인의 학문적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로 추앙되는 김장생 선생의 평가는 논외로 하고 싶다. 서인세력들은 임진왜란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임에도 명분 없는 쿠데타를 일으켜 실리 없는 외교로 어려웠던 백성들을 참혹한 정묘 병자호란에 빠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인 세력들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이어졌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돈암서원은 그야말로 서인들의 거룩한 성전같은 곳이어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았다. 대전 논산간 국도변에 있는 탓에 지나는 길에 자주 들려 보지만, 서..
망국의 설움이 서린 부여 정림사지 정림사지 역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과거 박물관은 정림사 건축 모습을 재현한 전시물이 가득했었다. 이번 방문한 정림사 박물관은 부여박물관처럼 멀티미디어화 되어 아름다운 영상미로 방문객들을 황홀경에 빠트렸다. 정림사 오 층 석탑 모형 유리벽에 비추는 아름다운 영상들과 복도의 벽과 바닥까지 삼면을 비추는 영롱한 영상들은 별다른 세상에 온 듯 감동을 주었다. 게다가 박물관 내부에 만든 작은 돔 영화관은 10여 개가 넘는 액정 영상기로 관객석을 제외한 돔 내부 전체의 둥근 벽과 천장 바닥, 관객석 뒷면까지 영상을 비추어 마치 관객들이 영상의 한가운데 앉아 있는 느낌을 주었다. 비록 15분짜리 애니메이션이긴 했지만 처음 보는 시설에 영상미가 뛰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넓은 주차장과 영상미가..
국립 부여박물관 부여박물관은 이전에 여러 번 방문해서 한동안 가지 않았었다. 그간의 변화가 궁금해서 오랜만에 들렸는데, 변화한 모습이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디지털 영상매체와 결합된 유물 전시가 매우 아름다웠다. 시각적 이해도 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형 로비를 둘러싼 전시실 동선도 깔끔하고, 쉼터도 많아서 남녀노소 관람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전시기술이 놀라워서 백제의 슬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유물관람에 감격했다. 주차장도 여유 있었고 박물관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경치도 아름다웠다. 또 정림사지가 근처에 있어서 연계하여 관람하기에 좋았다.  부여국립박물관 박물관 내부 원형 로비, 중앙엔 백제 시대 석조 대형 스크린을 보며 참선 따라 할 수 있는 공간  유물 전시관 불교문화전시관의 왕흥사 영상관 '..